변호사인 나는 정보기관을 개혁하려는 TF(태스크포스)팀에서 일한 적이 있다. 당시 정보기관장은 사기결재를 당했다고 했다. 보고하는 말이 맞는 것 같아서 서명을 했는데 나중에 보면 아닐 때가 있다고 했다. 이번에 재가를 번복한 대통령도 그 비슷한 게 아닐까. 나 같은 변호사 출신을 참여시킨 것은 외부의 참신한 시각으로 정보기관을 보아 달라는 의도였다.
나는 그 팀에서 정보기관 전체를 살펴볼 수 있는 권한을 받았었다. 우리의 정보기관은 태생부터 기형아였다. 박정희 대통령은 의회정치를 좋아하지 않았다. 대통령의 눈과 귀가 되는 동시에 양치기 개 노릇을 할 기관을 만든 것이다. 그곳은 권력의 비자금을 몰래 숨겨두는 금고이기도 했다. 애초부터 미국이나 영국 이스라엘 등의 정보기관과는 달랐다. 형식적 법기능과 본질이 달랐다. 본질은 정치고 여당보다 큰 여당이었다. 권력자에게 그 기관의 기능은 마약 같은 존재였던 것 같다. 정적을 감시하고 물어뜯고 정치의 힘인 돈이 그곳에 저장되어 있기 때문이다.
전두환 노태우의 정보기관이 중앙정보부와 다르지 않았다. 김영삼 대통령은 자신의 자금을 정보기관의 곳간에 숨겨두고 세탁을 했다. 김대중 대통령 때도 크게 달라지지는 않았다. 해외순방 때 국정원 돈이 사용되고 국정원에서 노벨평화상 공작금을 만들기도 했다는 소리를 들었다. 이명박 대통령 때도 국정원은 정치공작의 산실이기도 했다. 당시 국정원장이 끝없이 감옥생활을 하는 게 그 표징이기도 하다.
박근혜 대통령 역시 국정원의 돈을 개념 없이 썼다가 감옥생활을 했다. 나는 진실로 민주화가 되려면 정보기관이 정치오염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생각한다. 어떻게 그 기관이 정치에 오염되는지 봤다. 대통령 선거캠프에서 가장 공을 세운 사람이 정보기관의 책임자로 왔다. 전문성과는 전혀 관계가 없다. 권력에 정치적으로 얼마나 공을 세웠느냐가 기준이었다. 그렇다면 그는 부하직원을 어떻게 다룰까. 조직 전체를 선거의 도구나 권력의 친위대로 만들고 싶지 않을까.
정보조직이라는 성 안에서 일생을 살아가는 요원의 꿈은 승진이었다. 좁은 조직 안에서 살다 보니 독 속의 게들처럼 경쟁이 치열했다. 다른 사람을 끌어내려야 내가 살 수 있는 것 같았다. 정보기관장이 요구하는 정치정보나 공작을 잘해야 승진이라는 먹이를 얻을 수 있었다. 나는 그곳에서 순수 정보관으로 오랜 세월을 보낸 서울대 출신 간부의 솔직한 얘기를 듣기도 했었다.
“법적으로 우리는 대공 정보만 수집하도록 되어 있어요. 비유하자면 멸치잡이를 하는 게 임무죠. 그런데 가끔 문어나 광어 같은 선주의 입맛에 맞는 것들이 어망에 걸려들기도 해요. 선주가 본래 잡는 멸치에는 관심이 없고 자기 입맛에 맞는 것만 요구하니까 할 수 없이 그렇게 하는 겁니다. 솔직히 우리들은 정치에 관여하고 싶지 않습니다. 자식들에게 이 직장을 자랑스러운 곳으로 말하고 싶어요. 그런데 정권만 바뀌면 우리만 나쁜 놈으로 때려잡는다니까요.”
그곳에서 일탈한 요원들의 모습도 보았다. 정권교체기에 유력한 대통령 후보에게 비밀서류들을 빼돌리는 요원들이 있었다. 정권이 바뀐 후 그들이 정보기관의 실세가 되어 인사권을 장악했다. 우직하게 북한의 노동신문을 분석하는 순수한 직원들은 평생 그 밥에 그 나물 같은 인생을 살고 있었다. 정보기관장의 또 다른 하소연을 들은 적도 있다. 대통령이 특정 간부를 차장으로 진급시키라고 하더라는 것이다.
알아보니까 그 간부는 정보를 빼돌려 직접 수석비서관과 대통령에게 보고해 왔다는 것이다. 정보관 중에는 정치인의 비선 정보조직 역할을 하는 사람들도 있는 것 같았다. 정치에 오염되다 보니까 핵심부서의 아래 자리까지 권력이나 힘 있는 정치인이 영향력을 미치고 있었다. 비밀 정보기관이 되려면 정치적 논공행상의 도구가 되는 관료주의 구도가 바뀌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본질적으로는 정치적 논공행상에 따라 인사를 하지 말아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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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상익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