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코패스 연쇄살인마 변신, 첫 악역 도전…“다음엔 ‘조커’처럼 사연 있는 악역 해보고파”
“제가 다니는 교회 목사님께 영화 홍보를 부탁 드렸거든요. 목사님께서 영화가 잘되길 바란다며 기도해주시면서 ‘그런데 어떤 영화니?’하고 물어보시기에 ‘제가 연쇄살인마로 나오는 영화예요’ 그랬어요. 그랬더니 목사님이 나중에 설교에서 이 얘길 하셨대요. 흥행 잘되라고 열심히 기도해줬는데 연쇄살인마 역할이었다고(웃음).”
서울 종로구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일요신문과 만난 장동윤은 필모(필모그래피) 첫 악역을 맡은 소감에 대해 “부담이 전혀 없을 순 없었다”고 운을 뗐다. 그냥 악역도 아닌 그럴 수밖에 없었다는 서사나 그래야만 하는 이유도 딱히 없는 사이코패스적인 악역이었다. 이전까지 순해 보이는 배우의 인상에 걸맞은 비슷한 부류의 캐릭터를 연기해 온 그에게 있어 ‘악마들’을 선택한다는 것은 도전 그 이상의 무언가였음이 분명해 보였다.
“아무래도 첫 악역이니까요. 그래도 감독님께서 명확하게 캐릭터에 대한 콘셉트와 색깔을 잡고 알려주셨어요. 처음에 제가 감독님께 여쭤본 것도 이 인물이 냉정하고 차가운 살인마인지, 광기를 가진 뜨거운 살인마였는지였거든요. 제가 맡은 진혁은 기존에 했던 캐릭터와 톤 자체가 완전히 다른, 광기에 항상 사로잡혀 있는 캐릭터예요. 그래서 제가 잘 연기할 수 있을지 촬영 전부터 걱정이 많았는데, 진혁의 의상을 입고 분장을 한 뒤에 계속 촬영하다 보니 그런 염려는 사라지고 집중이 되기 시작하더라고요(웃음).”
영화 ‘악마들’은 아무런 동기도, 흔적도 없이 이어지는 연쇄살인의 범인 진혁과 그의 손에 소중한 동료이자 가족을 잃고 증오에 휩싸여 그를 뒤쫓는데 몰두하던 형사 재환(오대환 분)이 서로 몸이 뒤바뀌면서 일어나는 추격 스릴러다. 장동윤은 이 작품에서 연쇄살인마 진혁으로서 한 번, 그리고 형사 재환의 혼이 들어간 진혁으로서 또 한 번의 연기 변신을 보여준다. 독특한 형태의 1인 2역인 셈이다.
“형사 재환과 살인마 진혁을 왔다갔다 연기할 땐 서로를 너무 따라 하면 재미가 없을 거란 생각이 들더라고요. 말투부터 행동까지 모든 걸 다 따라 해 버린다면 진부할 수도 있잖아요. 물론 너무 잘한다면 매력 있게 승화시킬 수도 있었겠지만요. 그래서 재환을 연기할 땐 제 스타일대로 연기했고, 진혁을 할 땐 또 의식적으로 힘을 주지 않으면 그 에너지와 캐릭터가 관객들에게 느껴지지 않을까봐 그런 부분에 집중했죠.”
장동윤이 이제까지 연기해온 캐릭터, 특히 가장 최근 개봉작인 ‘롱디’에서의 캐릭터와 백팔십도 다른 모습을 찾아내 연쇄살인마 진혁을 꺼내놓은 김재환 감독의 안목에도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앞서 개봉한 범죄 누아르 영화 ‘늑대사냥’(2022)이 도움닫기였다는 게 장동윤과 김재환 감독의 공통적인 이야기였다. 이런 장르에서도 존재감을 잃지 않고 연기한 장동윤을 보고 이전과는 또 다른 캐릭터를 기대해볼 법하다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저는 (캐릭터가) 너무 겹치는 걸 반복해서 하는 게 배우들에겐 유리하지 않다고 생각해요. 이미 했던 걸 다시 답습하는 게 너무 재미없기도 하고요. 사실 저한테 악역 제안이 잘 오지 않거든요(웃음). 그런데 다행히 ‘늑대사냥’에서 제 액션이나 다른 모습들을 제작사에서 흥미롭게 보시고 ‘얘가 악역도 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에 제게 제안을 주신 거예요. 시나리오도 너무 재미있는데 심지어 제 캐릭터도 이전에 연기했던 것보다 훨씬 파격적이다 보니 이 역할을 맡는다면 내겐 배우로서도 재산이 되고, 연기 영역을 확장하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생각했죠.”
그럼에도 배우와 제작진 모두 고민에 빠져야 했던 건 진혁을 맡기에 장동윤의 눈빛이 너무 ‘순둥’했다는 점이었다. 타고 난 눈동자를 갈아 끼울 수 없으니 눈빛으로 승부를 걸어야 했다는 장동윤의 눈빛 연기는 실제로도 시사회에서 큰 호평을 받기도 했다. 이제까지 그에게서 본 적 없었던 살기와 광기를 기대 이상으로 표현해냈다는 것이다.
“‘늑대사냥’ 때도 그랬는데 이런 장르물에서 감독님들이 제게 가장 걱정하는 부분이 ‘눈망울이 너무 똘망똘망하다’는 거였어요(웃음). 장난기나 인간미가 묻어난다면서요. 하지만 그래서 저는 더 욕심이 나더라고요. 이런 장르물을 내가 하지 못한다면 배우로서 불만족스러울 수밖에 없잖아요. 또 콤플렉스가 될 것 같기도 하고. 그래서 ‘악마들’을 찍을 때 제가 할 수 있는 가장 큰 변화, 눈빛과 목소리 톤을 바꾸는 데 가장 노력했어요. 살인마의 광기를 보여주려고 계속 눈에 힘을 주고 있었죠(웃음).”
외모로 굳어지는 이미지는 비슷한 캐릭터나 작품에 안주하지 않고 꾸준히 변화를 추구해야 하는 배우들에겐 분명 아킬레스건이 될 수밖에 없다. 익숙한 이미지로 대중들에게 안정적인 사랑을 받을 수 있다는 장점도 물론 있지만 배우 자신조차 매너리즘에 빠지게 된다는 치명적인 단점도 무시할 수 없다는 것이다. 장동윤 역시 이전까지의 순둥한 자신에게서 탈피하기 위해 과감한 변신을 선택한 만큼 ‘악마들’을 발판으로 더 많은 ‘악한 얼굴’을 보여줄 준비를 마쳤다고 자신했다.
“저는 앞으로도 악역을 거듭해서 하고 싶어요. 제가 할 수 있는 하나의 길을 개척한 건데 한 번 하고 그치면 아쉽잖아요. 그렇다고 어떤 특정한 것을 하나만 잡고 그걸 엄청나게 많이 하는, 그런 게 아니라 선한 캐릭터나 악역이나 제가 연기하는 빈도가 비슷했으면 좋겠어요. 악역 같은 경우는 이제 한 번 해본 거라서 제 연기 리스트에 빈틈이 많거든요. 그걸 채워나갈 수 있으면 좋을 것 같아요. 이번에 사연 없는 악역을 해 봤으니, 언젠간 호아킨 피닉스의 ‘조커’처럼 사연 있는 악역도 해보고 싶어요.”
김태원 기자 deja@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