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웨덴 기업 네오노드와 특허침해 소송 진행…미 법원 ‘고의성 기각’으로 패소 시 손배액 크게 줄인 셈
#재판부 "고의로 침해? 추측에 불과"
지난 6월 28일(현지시간) 미국 텍사스 서부연방지방법원 재판부는 삼성전자와 네오노드 사이의 ‘밀어서 잠금해제’ 특허 침해 소송에서 쟁점이 되는 ‘8,095,879(879)’와 ‘8,812,993(993)’ 특허를 삼성전자가 소송 전부터 고의로 침해했다고 볼 만한 증거가 없다고 판단했다. 879 특허는 모바일 핸드헬드 컴퓨터 장치용 사용자 인터페이스 특허이며, 993 특허는 사용자 인터페이스 특허다. 두 특허 모두 네오노드가 특허 권리를 갖고 있다.
앞서 2020년 6월 네오노드는 삼성전자와 애플을 상대로 879 특허와 993 특허를 침해했다며 특허권 침해금지 및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현재 네오노드와 애플의 소송은 북부 캘리포니아법원으로 옮겨졌다. 네오노드와 삼성 사이의 소송은 텍사스 서부연방지방법원에서 그대로 진행되고 있다.
네오노드가 제기한 소송은 2012년 애플이 삼성을 대상으로 소송을 제기한 것이 발단이다. 당시 애플은 ‘밀어서 잠금해제’ 관련 특허를 침해당했다며 삼성전자를 상대로 소송을 걸었다. 삼성전자는 네오노드의 ‘N1m’ 휴대폰에 이미 유사한 기술이 적용됐다는 점을 들어 애플의 특허 침해 주장에 맞섰다. 이러한 삼성전자 주장을 받아들여 2015년 독일 법원은 애플의 특허 무효 판단을 내렸다. 네오노드는 독일 법원 판결을 토대로 삼성전자와 애플에 소송을 제기했다.
네오노드와 삼성전자 소송에서 미국 텍사스 서부연방지방법원 재판부는 ‘특허 소송 전부터 고의로 특허를 침해한 혐의를 기각해달라’는 삼성전자 요구를 받아들였다. 네오노드와 삼성전자 소송 사건기록과 결정문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네오노드를 상대로 소송 전 고의적 침해 기각 등 내용을 담은 ‘소송 기각 신청(Motion to Dismiss)’을 제기했다. 통상 미국에서는 특허 침해 소송 과정에서 피고는 원고가 소장에서 주장한 내용이 부당하다고 생각될 때 해당 주장에 대해 별도의 기각 신청을 할 수 있다. 이 과정에서 원고의 주장이 이유가 없다고 판단되면 재판부는 기각 신청을 받아들인다.
삼성전자와 네오노드의 이번 공방의 관건은 ‘고의성을 입증할 수 있느냐’였다. 특히 네오노드는 삼성전자와 2005년부터 2009년까지 네오노드의 애플리케이션인 ‘10/315,250(250 애플리케이션)’에 대해 라이선스 계약을 체결했었다고 주장했다. 250 애플리케이션은 2012년 앞서의 879 특허로 등록됐다. 네오노드는 또 2012년 삼성전자가 애플과의 소송 과정에서 자사가 보유한 879 특허를 인지했을 것이라고 밝혔다. 네오노드 측은 또 삼성전자가 2015년 네오노드의 특허 포트폴리오 구매에 관심을 표한 적도 있다고도 언급했다. 하지만 삼성전자는 네오노드가 결론을 정하고 과정을 추론하고 있을 뿐이라고 맞섰다. 250 애플리케이션을 알았다거나 애플과 소송을 벌였다고 해서, 문제가 된 특허에 대한 지식을 모두 알았다고 볼 만한 증거가 없다는 것이다.
텍사스 서부연방지방법원 재판부는 고의성을 입증할 확실한 증거가 부족하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삼성전자가 소송이 제기되기 전에 네오노드 특허를 고의로 침해했다고 보는 것은 추측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이어 “993 특허에 대해서도 삼성전자가 소송 전에 고의로 특허를 침해했다고 볼 만한 증거에 대해 네오노드는 충분하게 답변하지 못했다”고 덧붙였다. 다만 네오노드가 다시 증거를 제출하면 소송 전 고의성에 대한 판단은 뒤바뀔 수 있다.
#최종 판결 이르면 내년에 나올 듯
일단은 삼성전자가 소송 전부터 네오노드 특허를 침해한 것은 아니라는 재판부 해석이 나오면서, 패소 시 내야 하는 손해배상액을 줄였다는 평가가 나온다. 공우상 특허법인 공앤유 대표변리사는 “소송 전 특허 침해에 대해 고의성이 없다는 판단이 나오면 손해배상액이 대폭 줄어들 수 있다”라고 말했다. 미국에서는 특허 고의 침해가 인정되면 최대 3배까지 배상하도록 하는 손해배상제도가 적용된다.
특허에 대한 고의성 인정 여부가 본안 소송에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는 의견도 있다. 배문설 로담특허 변리사는 “고의성도 (본안 소송에) 영향을 줄 수 있다. 다만 구속력은 없고 참조가 될 것으로 판단된다”고 말했다. 다른 변리사는 “고의성이 인정되면 민·형사처벌을 모두 피할 수 없는데 이를 모면할 수 있다”고 밝혔다.
이와 별개로 특허 손해배상 소송 결과는 두고 봐야 한다. 손해배상 소송에서 가장 중요한 건 특허 무효화 여부이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미국에서 특허침해로 피소되면 문제가 된 특허에 대해 미국 특허청에 무효심판(IPR)을 제기한다. 특허가 무효화되면 특허 침해도 성립하지 않는 탓이다. 삼성전자는 네오노드를 상대로 879 특허에 대해서는 무효 심판을 제기했다 패소했고 993 특허는 승소했다. 두 무효 심판 모두 항소가 제기돼 2심 진행 중이다.
업계에서는 네오노드와 삼성전자의 특허 침해 소송 최종 판결은 이르면 내년에 나올 것으로 전망한다. 네오노드는 879 특허 무효심판에서 승소한 후 올해 3월 삼성전자를 상대로 하나의 소송을 더 제기했다. 한 변호사는 “소장을 봐야 하겠지만 무효심판에서 승소한 특허 범위를 확장해 다시 소송을 제기했을 가능성이 높다”며 “원고의 니즈를 만족시키기 위해 소송이 여러 개인 경우는 드물지 않다. 이 경우 재판에서 나온 판단이 서로 영향을 미친다”고 했다.
두 기업의 합의 가능성이 커지지 않겠느냐는 이야기도 나온다. 또 다른 변리사는 “고의성이 없다면 침해를 주장하는 원고 입장에서는 적당한 선에서 합의하고 끝내는 편이 좋을 수 있다. 손해배상액이 적을 경우 소송에 따른 비용과 시간 등을 고려했을 때 배보다 배꼽이 큰 경우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라고 했다. 앞서의 공우상 대표변리사는 “미국은 소송 비용을 우리나라와 달리 각자 부담해야 한다. 작은 기업 입장에서는 소송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고 했다.
한편 삼성전자는 유독 해외 기업과의 특허 공방전이 치열하다. 글로벌 특허DB 분석업체 렉시스넥시스(LexisNexis)의 ‘2022 미국 특허 소송 보고서’에 따르면, 2019~2021년 미국에서 삼성전자에 287건의 특허소송이 제기됐다. 같은 기간 삼성전자는 가장 많이 피소된 기업이자 가장 많은 특허 심판을 제기한 회사에 이름을 올렸다.
이와 관련, 삼성전자 관계자는 “소송 진행 중인 사안으로 공식적으로는 드릴 수 있는 답변이 없다”고 말했다.
김명선 기자 seo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