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설립 건설부문 노조, 교섭 거부한 회사 노동위 제소…향후 교섭단위 분리 두고 노사갈등 가능성
삼성물산에선 역사상 두 번째 노동조합이 최근 만들어졌다(관련기사 [단독] '무노조 경영 폐지' 여파? 삼성물산에 복수노조 시대 열렸다). 삼성물산 건설부문 노동조합(노조)은 지난 6월 1일 서울 강동구청으로부터 설립 신고증을 받았다. 기존엔 민주노총 산하 금속노조 삼성지회가 삼성물산에 유일한 노조였다. 금속노조 삼성지회는 리조트부문(옛 삼성에버랜드) 노동자를 주축으로 2011년 만들어졌다. 금속노조 삼성지회는 2022년 4월 삼성물산과 단체협약을 체결했다.
삼성물산 건설부문 노조 설립 한 달 만에 노사갈등이 불거졌다. 노사는 지난 7월 3일 서울지방노동위원회 심판회의에서 치열한 공방을 펼쳤다. 앞서 노조는 지난 6월 20일 삼성물산 건설부문에 단체협약 체결을 위한 교섭을 요구했다. 하지만 사측은 교섭창구 단일화를 이유로 노조의 교섭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사측은 금속노조 삼성지회와 체결한 단체협약 유효기간(2024년 3월 31일) 만료일 3개월 전까진 다른 노조와 교섭을 하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그러자 삼성물산 건설부문 노조는 노동위원회에 시정을 신청했다.
삼성물산 건설부문 노조는 삼성물산 4개 부문이 별개 회사나 다름없기 때문에 부문별로 단체협약을 체결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노조는 노동위원회에 제출한 시정 신청 이유서에서 "삼성물산은 법인등기상 1개 회사이지만 실제로는 건설부문, 상사부문, 패션부문, 리조트부문 총 4개 회사로 구성된 복합기업"이라며 "4개 회사가 고유의 사업과 경영구조를 그대로 유지한 채 합병되면서 현재의 복합기업 형태를 구성하게 됐다"고 주장했다. 또한 "경영여건 및 근로관계의 실질에 비추어 볼 때 삼성물산 건설부문에 존재하는 노동조합은 삼성물산 건설부문 노동조합이 유일하다"고 강조했다.
노조는 '삼성물산은 4개 회사로 구성된 복합기업'이라는 구체적인 근거로 △각 부문 대표이사가 각자 담당한 부문의 경영을 책임지고 있다 △부문 간 인사교류는 없고 본사 소재지도 다르다 △부문별 재무제표를 작성하고 회계관리 시 회사코드를 다르게 사용하고 있다 △채용, 노사협의회, 안전보건경영 등 인사노무관리를 각 부문이 독립적으로 하고 있다는 점 등을 들었다.
또 노조 측은 지난 7월 3일 심판회의에서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이후 리조트부문 건설업 인원 일부가 건설부문으로 넘어왔다. 같은 경력, 연차여도 급여 체계가 달라서 그걸 맞추는 데 어려움이 있었다. 합병된 지 8년 정도 지났는데 아직도 임금 격차가 벌어져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노사협의회가 부문별로 존재한다. 이 때문에 (부문별로) 차이가 나는 근로조건이 상당수다. 복리후생도 마찬가지"라고 덧붙였다.
사측은 노조 주장을 전면 반박했다. 사측은 전사 경영을 총괄하는 조직이 존재할 뿐 아니라 중요한 결정은 전체 이사회에서 이뤄지기 때문에 각 부문이 별개 회사는 아니라는 입장이다. 부문별로 회계, 인사 등을 실시하는 건 각 부문 규모가 크다 보니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고 주장했다.
사측은 지난 7월 3일 심판회의에서 "처음엔 (부문별 임금) 차이가 났지만 줄이기 위해 노력했고 상당히 줄였다"고 반박했다. 또한 "(부문별로) 세부적인 복리후생은 다르지만 기본 구조는 유사하다"고 주장했다.
서울지방노동위원회는 노조의 시정 신청을 기각했다. 아직 판정문이 송달되지 않아 정확한 기각 사유는 확인되지 않았다. 다만 7월 3일 심판회의에서 위원들은 노조 측에 교섭단위 분리 신청을 제안하는 뉘앙스를 풍겼다.
정소연 공익위원(법률사무소 보다 대표 변호사)은 "노조의 신청 취지는 이해가 된다. 그렇지만 순서상 교섭단위 분리가 선행되는 게 법리적으로 적절해 보인다"고 말했다. 김재도 근로자위원(SH서울주택도시공사노동조합 위원장)은 "추후에 (노조가) 교섭단위 분리 신청을 한다면 회사는 받아들일 생각이 있느냐"고 물었다. 사측은 "추후에 정식 절차가 진행되면 내부적으로 검토해서 방향을 결정하겠다"고 원론적으로 답했다.
사측은 노조의 교섭단위 분리 신청에 대비하고 있는 모습을 내비쳤다. 윤재훈 사용자위원(전 종근당 경영관리본부 상무)이 부문별 복리후생과 취업규칙 차이 등에 관해 구체적으로 묻자 사측은 "교섭단위 분리 때 판단돼야 할 문제"라고 답했다.
위원들은 노조 측에 4개 부문 조합원을 모두 모집할 의향이 있는지 묻기도 했다. 노조 규모를 키운다면 협상력이 더 높아진다는 이유에서다. 이에 대해 노조 측은 "건설부문만 해도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있고, 비정규직 안에서도 여러 구분이 있다. 다들 각자의 이익을 이야기하고 있어 건설부문 직원의 목소리를 듣는 데도 어려움이 있다"며 "저희가 잘 알지 못하는 부문의 직원들 고충까지 확인하기엔 역량이 부족하다. 모든 근로자의 상황을 이해해서 대변하기엔 시간도 오래 걸린다"고 말했다.
금속노조 삼성지회 입장도 비슷하다. 조장희 금속노조 삼성지회장은 7월 4일 일요신문과의 통화에서 "업무 연관성 없는 4개 부문이 뭉쳐 있다"며 "저희가 리조트부문을 제외한 나머지 3개 부문은 커버가 안 되고 어떤 권한을 갖기도 어려운 부분이 있다"고 말했다. 또 "각 부문에서 노조 대표자들이 나와서 끌고 나가길 바란다"며 "꼭 (노조) 조직을 합칠 필요는 없다. 연대를 하면 된다"고 강조했다. 또 조 지회장은 "(사측은) 우리가 좋아서가 아니라 건설부문 노조에서 더 날카로운 요구를 할 수 있기 때문에 따로 교섭하기 싫어하는 것"이라며 "법(교섭창구 단일화)을 회사가 악용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금속노조 삼성지회는 2011년 삼성노동조합이라는 이름으로 설립됐다. 설립 신고 당시 조합원은 삼성에버랜드(현 삼성물산 리조트부문) 직원 4명이었다. 당시 삼성에버랜드는 현재의 삼성물산 건설부문 및 상사부문(당시 삼성물산), 패션부문(당시 제일모직)과 별개 회사였다.
삼성물산 건설·상사·패션·리조트 4개 부문이 한 회사로 합쳐지는 과정엔 여러 잡음이 일었다. 핵심은 이건희 선대 회장에서 이재용 회장으로 삼성그룹 경영권을 승계하기 위해 각종 불법과 편법 행위가 동원됐다는 의혹이었다.
특히 2015년 삼성물산(건설·상사)과 제일모직(패션·리조트) 합병 과정에서 경영권 승계를 위해 조직적인 회계 부정 등이 이뤄졌다는 혐의에 대한 재판은 현재 1심이 진행 중이다. 이 회장은 그룹 지배력을 높이기 위해 자신의 지분율이 높았던 제일모직 가치를 부풀렸다는 의혹을 받는다.
논란은 국제분쟁으로도 이어졌다.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 매니지먼트는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과정에 한국 정부가 부당하게 개입해 피해를 봤다며 투자자-국가 분쟁해결절차를 2018년 신청했다. 지난 6월 20일 국제상설중재재판소는 한국 정부가 엘리엇 측에 배상금과 이자 등 약 1300억 원을 배상해야 한다고 판정했다.
2013년 삼성에버랜드(현 삼성물산 리조트부문)가 제일모직 패션부문(현 삼성물산 패션부문)을 인수했을 때도 경영권 승계를 염두에 둔 포석이라는 의심이 제기됐다. 제일모직 패션부문은 삼성에버랜드와 사업 관련성은 적지만 삼성에버랜드 매출 규모를 키워 기업가치를 높일 수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당시 삼성에버랜드는 이 회장 지분율이 25.1%로 삼성그룹 지배구조 최정점에 있는 회사였다.
남경식 기자 ngs@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