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동·청소년들 구매 부추겨 학부모 원성…전문가 “심리적 열등감 느끼게 해” 비판
앰배서더는 브랜드를 대표하는 홍보대사 역할을 한다. 앰배서더로 발탁되면 브랜드 쇼에 참여하고, 브랜드 제품을 착용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올리며 홍보 활동을 한다. 각 브랜드들은 브랜드와 부합하는 이미지를 가진 연예인을 앰배서더로 선정한다. 최근에는 명품 브랜드들이 아이돌그룹의 미성년자 멤버를 앰배서더로 발탁하는 일이 잦아지고 있다.
대부분 멤버가 미성년자인 걸그룹 뉴진스는 데뷔 4개월 만에 모든 멤버가 샤넬, 디올, 버버리 등 유명 명품 브랜드 앰배서더로 선정됐다. 이 중에서도 2008년생 멤버 혜인(만 15세)은 루이비통 앰배서더로 발탁돼 ‘루이비통 최연소 앰배서더’ 타이틀을 얻었다. 2021년 데뷔한 그룹 아이브의 멤버 장원영은 18세 나이로 명품 브랜드 미우미우 앰배서더로 선정됐다. 미성년자 멤버들이 속해 있는 그룹 엔믹스도 멤버 전원이 스페인 명품 브랜드 로에베의 앰버서더다.
명품 브랜드 앰배서더 연령이 낮아지면서 아동·청소년들의 명품 구매 욕구를 불러일으킨다는 비난의 목소리가 높다. 미성년 아이돌그룹 멤버가 명품 브랜드 앰배서더로 선정돼 명품 브랜드를 착용하는 모습이 쉽게 노출되면서 자연스레 이들을 선망하는 아동·청소년들에게 명품 구매 욕구를 일으킨다는 것이다.
온라인 카페 등에도 명품을 사달라는 자녀들 때문에 하소연하는 학부모들이 늘고 있다. 초등학교 4학년 딸을 뒀다는 A 씨는 “(아이돌 미성년자 멤버 명품 앰배서더 선정으로 인해) 너무 (명품이) 노출되다 보니까 우리 아이도 (명품) 지갑이며 가방이며 다 알아본다”고 적었다. 초등학교 6학년 아들을 뒀다는 B 씨는 “(앰배서더인 한 아이돌 멤버로 인해) 아들이 명품 티셔츠를 사달라고 한다”며 “나중에 커서 입자고 했다”고 전했다.
과거 아이돌그룹에서 활동했던 A 씨(남·31)는 “아이돌 뜻 자체가 ‘우상’ 아니냐”라며 “어린 팬들에게 구매 욕구를 일으키기 위해 자신들의 우상인 멤버에게 명품을 착장시켜 구매하도록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의 한 백화점 명품 브랜드 매장에서 근무 중인 김 아무개 씨는 “초등학생 자녀를 데리고 (자녀의) 카드지갑, 신발 등을 구매하는 학부모들을 종종 본다”며 “명품 구매 연령이 많이 낮아졌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글로벌 컨설팅 업체 베인앤드컴퍼니는 지난 1월 보고서를 통해 Z세대(1990년대 중반~2000년대 초반 출생)의 첫 명품 구매 연령이 평균 15세라고 발표했다. 보고서는 또 오는 2030년 MZ세대(1980년~2000년대 초반)와 알파세대(2010년 이후 출생)가 전 세계 명품 소비의 80%를 차지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명품 구매 연령이 낮아지면서 유튜브에 아동·청소년들의 명품 구매 영상도 눈에 띄게 늘었다. ‘18세 기념 1000만 원 쇼핑(샤넬, 디올, 까르띠에, 골든구스, 메종키츠네)’ ‘08년생 일상 브이로그, 디올 오블리크 카드 지갑’ ‘(09년생) 14세 중학생 명품 쇼핑 브이로그’ 등 청소년들의 명품 구매 유튜브 영상에는 “부럽다. 명품녀의 삶 행복하죠?” “대리만족 많이 시켜주세요” “부모 잘 만나서 부럽다” 등의 댓글이 이어지고 있다.
명품업계 측은 미성년자 멤버 앰배서더 선정에 대해 홍보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한 명품업체 관계자는 “미성년자지만 인기를 끌고 있는 (아이돌) 멤버라면 브랜드 앰배서더 선정시 화제를 불러일으켜 브랜드 홍보에 탁월하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소속사 측에서도 미성년자든 상관없이 그룹 멤버가 명품 앰배서더로 발탁되기를 원한다”며 “해외 브랜드 쇼 개최시 그룹 멤버가 참여하면 해외 팬들에게 얼굴을 알릴 수 있으며, 이는 자연스레 아이돌그룹 홍보로도 이어진다”고 귀띔했다.
전문가들은 명품 브랜드들이 미성년자 멤버를 앰배서더로 선정하는 일이 앞으로 더 늘어날 것이라고 전망한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아동·청소년들이 명품 브랜드 미래 소비자이고 현재는 트렌드를 이끌고 있어 명품업계에선 이들을 공략하기 위해 끊임없이 미성년자 멤버를 앰배서더로 선정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 교수는 “뿐만 아니라 대부분 청소년이 SNS를 하다 보니 이를 이용해 브랜드를 홍보하려는 것도 있다”며 “(청소년들이) ‘나 명품 지갑 샀다’ ‘명품 가방 있다’는 걸 인증하면서 다른 청소년들의 구매 욕구를 일으키는 일명 ‘버즈 마케팅’(소비자가 자발적으로 상품 입소문을 내게 하는 마케팅기법)을 (명품업계가) 활용하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이러한 현상에 대한 우려도 적지 않다. 정체성 확립이 안된 아동·청소년들에게 명품업계 상술이 심리적으로 악영향을 미친다는 지적이 거세다. 임명호 단국대 심리학과 교수는 “청소년은 정체성 확립이 아직 완전치 않아 ‘모방심리’가 강해서 본인이 아이돌 멤버가 가지고 있던 명품을 똑같이 가지면서 아이돌 멤버가 된 것 같은 혹은 성공한 사람이 된 것 같은 심리적 자극을 받는다”며 “(청소년은) 비교심리도 강해 남과 자신을 비교해 자신과 같은 또래인 아이돌 멤버가 명품을 착용하면 ‘나는 그렇지 못하다’는 열등감을 느낄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임 교수는 “명품업계의 앰배서더 선정에 문제가 있다”며 “미성년자 멤버 (앰배서더) 선정을 멈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소영 기자 upjsy@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