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어머니가 홀로 되자 남편이 어느 날 그러더란다. 어머니가 사시면 얼마나 사시겠냐고, 모셔오면 어떻겠냐고. 그때 어머니의 나이는 72세였다. 친구는 20년 가까이 모셨는데 여전히 안방을 차지하고 있는 어머니를 감히 ‘부담’이라고도 말하지 못하는 착한 며느리였다. 그녀는 집이 내 집 같지 않다고, 언제나 셋방 사는 느낌이라고 했다. 그 셋방살이를 견디기 위해 그녀가 하는 일은 1년에 한두 차례 멀리멀리 여행을 다녀오는 일이었다.
시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친구는 안방으로 들어갔다. 시어머니의 흔적을 지우며 착한 며느리답게 이미 떠난 어머니를 향해 고맙다는 마음도 잊지 않았다. 아들 방이 작아서 자기가 쓰던 큰 방을 아들에게 물려주며 이제는 집이 제법 안정적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 안정적인 시기에 결혼도 하지 않은 아들이 ‘독립’을 선언한 것이었다. 한 방 맞은 느낌이었단다. 아들 때문에 울고 웃고 기대하고 걱정하고 사랑했던 날들이 이렇게 허무할 수 있단 말인가. 아무리 내리사랑이라고 해도 어떻게 착하기만 했던 자식이 그럴 수 있냐며 화도 나고 섭섭도 했단다.
“어머니, 아버지가 싫어서가 아니에요, 나도 이제 내 삶을 살아야지요.”
싫어서가 아니라고 했지만 함께 살기 싫어서 나간 자식을 어쩔 것인가. 다 필요 없다는 생각이 들어 한동안 아들의 방문을 닫아버렸다. 변화는 닫아둔 아들의 방문을 열고, 아들의 물건이 썰물처럼 빠져나간 방을 정리하면서 찾아왔다. 아들에게 바친 젊은 날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어느 순간 그런 생각이 들었단다. 아, 시어머니도 나와 다르지 않게 우리와 사는 일이 부담이었겠구나, 하는 생각.
이상하게도 그 생각은 아들을 풀어주는 역할을 했다. 어렸을 때부터 군대에 갔을 때까지 아들과의 추억이 주마등처럼 지나가고 그래, 사랑해서 좋았다고 결론을 냈단다. ‘이제 어른이 되어 떠나겠다는 아들을 받아들이지 못하면 지금부터는 전쟁이겠구나, 그것도 내 마음을 폐허로 만드는 질 수밖에 없는 전쟁이겠구나’라는 생각. 한 생각이 바뀌니 아들에 대한 집착이 저만치 멀어져 가고, 섭섭했던 마음도 봄눈 녹듯 사라졌단다.
이제 세상은 부모와 다 큰 자식이 함께 사는 일을 당연시하지 않는다. 나이 들어서는 ‘내리사랑’도 답이 아니다. 더구나 결혼한 자식에게 노후 자금 다 주고 살림을 합치는 일은 집을 감옥으로 만드는 일이다. 내 독립된 공간에 자식이 찾아와 함께 밥을 먹는 일은 평화일 수 있지만 심리적 거리가 없는 공간에서 서로 섞이면 모두모두 감옥이다. 왜 그럴까.
부모는 누구에게나 뿌리다. 뿌리는 중심의 힘이다. 뿌리가 다치면 나무는 제대로 성장하지 않는다. 그래서 모든 자식은 부모가 편안하게 살기를 원한다. 그런데 뿌리인 부모가 지붕 역할을 하려고 하면 숨이 막힌다.
그때 부모는 자식의 부담이 된다. 사람이든 동물이든 성장한 생명은 스스로의 힘으로 살기를 원하다. ‘따로’가 되어야 ‘함께’가 되는 것이다. 독립은 개체의 지상명령이다. 독립해야 하는 상황에서 부모가 심적으로 자식에 기대 있으면 자식의 부담이고 자식이 부모에게 기대 있으면 부모의 부담이다. 부담감은 불화의 씨앗이다.
그러니 나이 들어서는 자식을 위해 안 사는 일이 자식을 위하는 일이기도 하다. 어머니였던, 아버지였던 시절을 졸업한 것을 감사히 여기고 이제는 마음에서부터 자식을 독립시키고 스스로 독립해야 자식을 그저 친한 친구 정도로 여길 수 있다.
우리는 친구 아들의 독립을 기뻐하며 축복하며 이제 아들로부터 자유롭게 되었음을 축하하며 와인을 마셨다. 나이 들수록 소중한 것은 그런 이야기를 들어주고 공감해주는 친구다. 아픈 것도, 외로운 것도, 억울한 것도 숨길 필요 없이 내보이다 보면 지혜를 모을 수 있게 된다. 우정의 힘은 서로 소유하려들지 않는 곳에서 온다. 나이 들수록 우정이다.
※외부필자의 칼럼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이주향 수원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