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함께 작업하게 될 영화 주연배우와 저녁식사를 했다. 감독과 배우 그리고 프로듀서와 제작자인 내가 참석한 식사자리는 앞으로의 긴 여정을 서로 합심해서 잘 마무리하자는 결의 자리이거니와, 처음 함께 일을 하게 된 어색함을 해소하는 등 일종의 상견례 같은 자리기도 했다.
20대 후반의 젊은 배우는 40대 감독, 50대 제작자를 만나서인지 아주 조심스럽고 매사에 예의바른 행동을 취했다. 시간이 흐르고 술잔이 몇 순배 돌자 서로가 편하게 농담도 하고 격려도 하고 응원도 하는 화기애애한 자리가 됐다.
기분 좋게 모임을 마치고 돌아가는 자리에서 배우에게 “오늘 너무 즐거웠다”고 인사를 건넸다. 배우는 나와 감독에게 “오늘 매우 인상적이었다”고 화답했다. 그래서 배우에게 “오늘 모임이 무엇이 그렇게 인상적이었느냐”고 되물었다. 이에 배우는 “감독님이나 대표님은 이제까지 만난 사람들 중에 처음으로 ‘내가 말 좀 편하게 해도 되지’라고 하지 않은 최초의 분들”이라고 말했다.
나는 “말을 놓지 않은 게 뭐가 그렇게 대단한 일이냐”고 또 물었다. 그러자 배우는 이렇게 답했다.
“어른들이 저에게 말을 놓는 것이 불편하거나 기분이 나쁜 건 아닙니다. 앞으로도 언제든지 말을 편하게 하셔도 저는 그것을 불편하거나 기분 나쁘게 생각하지는 않을 겁니다. 하지만 오늘 두 분이 저에게 한 번도 말을 편하게 하겠다는 말씀을 안 하시고 모임 끝까지 저를 대해주셔서 제가 아주 존중받는 느낌이었습니다. 저는 그게 인상적이었습니다.”
나는 1990년대 초반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그때는 회사 상사는 말할 것도 없고 초면인 사람들도 나이를 물어보곤 거의 예외 없이 “내가 위인데 말 좀 편하게 해도 되지”라고 말하는 게 일반적이었다.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저 사람이 날 언제 봤다고, 나에 대해 뭘 안다고 말을 놓겠다는 거지’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아니요. 말 편하게 하지 마십시오”라고 말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나이가 많다는 것이 무슨 벼슬도 명예도 아닌데 우리 사회는 나이가 한 살이라도 많으면 없는 예의 있는 예의를 다 강요하고 고집했던 것이 아닌지 돌아볼 때가 된 것 같다.
요즘 함께 작업하는 회사들의 문화는 예전과 같은 ‘김 대리’ ‘박 과장’ ‘홍 차장’이 아니라 ‘민경 님’ ‘홍철 님’ ‘상훈 님’들로 직함을 배제한 채 이름 뒤에 ‘님’자를 붙여 상호 존중하는 문화로 바뀌어가고 있다. 나이를 따지고 선후배를 나누고 위계를 정한다는 것이 어쩌면 조직문화에서 필요한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이제는 과거 관습적 위계질서보다 상호존중을 기반으로 한 자연스러운 동료 의식이 더욱 효율적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과민하고 까다로워서 그런 건지는 모르겠지만, 초면의 사람들이 나이를 물어보고는 “앞으로 형님으로 모시겠습니다” 혹은 “내가 형이니까 편하게 할게”라는 사람들이 자연스럽지 않다. 교류를 하면서 친구 같은 형이 되거나 친구 같은 아우가 되는 건 너무나 자연스러운데, 만나자마자 나이를 따지고 형·동생이 되어버리는 문화는 아직도 생경하고 불편하다. 나이에 관계없이 상호존중하고 경어를 써도 절대 불편하거나 어색하지 않다는 것을 요즘 가슴 깊이 느끼고 있다.
2023년 6월 28일을 기점으로 우리나라에서도 만 나이가 표준화됐다. 같은 해에 태어났어도 ‘빠른 연생’을 주장하며 형이 되고자 했던 문화에서 동갑내기도 생일에 따라 나이가 달라질 수 있는 사회로 변모한 것이다. 어쩌면 이제 우리는 9개월은 친구였다가 3개월은 형·동생이 되는 상황에 직면했다.
존경하는 선배 영화인이 해주신 말씀을 끝으로 전한다.
“친구는 나이가 같은 게 아니라 생각이 같은 사람이다. 그게 진짜 친구다.”
어쨌든 나는 오늘부로 기존의 한국식 나이보다 두 살이나 어려졌다. 행복하다.
※외부필자의 칼럼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원동연 영화제작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