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가 없이 ‘한국선진화포럼’ 등기이사 재직, 공무원법 위반 가능성…국교위 “비영리 기관이라 허가 필요 없어”
#허가 없이 겸직하고 있는 사실 확인
"국교위가 준비하는 교육발전 계획에 공교육 관련 논의를 다양하게 녹여내는 게 소명이자 책무"(7월 14일 국교위 제15차 회의에서) "학교 현장의 어려움을 세심하게 살펴 교권이 보호되고 학생이 사랑받는 배움터로 거듭나도록 최선을 다하겠다"(7월 21일 입장 발표).
이배용 국교위원장이 '사교육 카르텔' 논란과 '서이초 교사 사망' 사건에 관해 각각 직접 내놓은 입장이다. 교육계를 둘러싼 각종 이슈가 불거지며 국교위의 역할론은 커가는 분위기다. 국교위는 2022년 7월 21일 설립된 대통령 직속 기구로, 이 위원장은 장관급으로 국무회의에도 참석하고 있다.
그런데 이 위원장이 '한국선진화포럼' 등기이사를 허가 없이 겸직하고 있는 사실이 확인됐다. 보수 성향으로 분류되는 재단법인으로 겸직의 적절성은 물론 위법 논란이 불가피해 보인다. 특히 이 위원장은 박근혜 정부 시절 교육부 산하 한국학중앙연구원 원장을 역임하면서도 해당 단체 이사직을 겸임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그가 이사를 맡은 한국선진화포럼은 박정희·전두환 정부에서 경제부총리와 국무총리 등을 지낸 고 남덕우 서강대 교수가 2005년 설립, 현재는 이 위원장을 포함한 5명의 이사진과 209명의 활동가들이 속한 재단법인이다. 현직 이사장은 노태우 정부에서 상공부 장관 등을 역임한 이봉서 한국능률협회장이다.
'비영리 교육단체'를 표방하지만 활동 폭은 그보다 넓다. 등기부상 설립 목적에는 '경제 관련 법 제도와 관습 및 관행의 선진화', '시민의식 선진화 운동 전개' 등이 명시돼 있다. 매년 개최하는 세미나 등이 주요 활동이며 2022년에도 '대학생 선진화 사업' 등 32건의 행사를 열어 활발하게 움직이고 있다.
보수계에서는 잘 알려진 단체다. 2019년에는 '3·1운동의 기획자는 이승만 전 대통령이었다'는 등의 강연을 진행했다. 2022년 11월에는 국민의힘 추천으로 국회 연금개혁특별위원회 위원장을 맡은 김용하 순천향대 IT금융학과 교수, 윤석열 대통령의 '노동 멘토'로 알려진 정승국 고려대 노동연구원 객원교수가 '노동개혁' 좌담회를 열었다.
처음 유명해진 계기는 박근혜 정부 당시 전국경제인연합(전경련)이 2013년부터 2015년까지 어버이연합과 고엽제전우회 등 자금을 지원한 보수·우익 단체 명단에 오르면서다. 한국선진화포럼은 1억 6000만 원을 받아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에 활용된 미르재단 1억 3900만 원보다도 액수가 컸다.
정치중립에 어느 분야보다도 엄격해야 할 교육계의 수장이 이런 단체의 겸직을 맡은 데 대해서는 시선이 부정적일 수밖에 없다. 특히 이 위원장은 2022년 10월 인사청문회에서 야당이 '박근혜 정부 때 국정교과서를 주도했다'는 등 이념 편향을 지적하자 "잘못된 판단이었다"며 "이제 신뢰받는 국교위를 만들겠다"고 공언했다.
국회 교육위원회 소속 강득구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일요신문과 통화에서 "대단히 부적절한 행보다. 공직자 겸직금지 등 위법 여부도 검토가 필요하겠지만, 적어도 위원장 재직 중에는 등기이사에서 내려오는 등 분명히 조치했어야 했다"며 "국교위와 위원장의 최우선 가치는 정치중립이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실제 해당 포럼 설립자인 남덕우 전 국무총리도 처신의 적정성을 우려해 잠시 직을 내려놓았던 적이 있다. 남 전 총리는 17대 대선 기간이었던 2007년 박근혜 당시 한나라당 대표의 경제자문단에 합류한 뒤 '포럼의 정치적 중립을 지키겠다'며 회장직에서 사임했었다.
반면 이 위원장은 박근혜 정부 때인 2013년 9월부터 3년 동안 한국학중앙연구원 원장을 지내면서도 이 포럼의 등기이사를 겸임했다. 그 시기 포럼 창립 기념행사 등에 참석해 직접 축사로 나서기도 했다. 최근에는 2021년 12월 등기이사 재선임 뒤인 2023년 5월 고 남 전 총리 추모 행사에서 연사로 나섰다. 자문도 주로 맡았다고 한다.
이 위원장은 법적으로는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그는 애초에는 "법에 따라 당연히 겸직을 허락받았다"며 "허가 과정은 조금 복잡하기 때문에 내용을 정리한 뒤 상세하게 설명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한국선진화포럼 이사진 개편이 곧 이뤄지므로 이사직은 내려놓을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그러나 국교위 측이 이후 상세한 설명을 위해 전달한 입장에서는 다른 말이 이어졌다. 국교위 관계자는 "특별법인 국가교육위 운영법이 기관장 겸직 관련 내용을 담고 있지 않아 따로 허가를 받지 않았다"며 "법제처 등 여러 경로로 문의한 결과 한국선진화포럼은 비영리 기관이라 겸직 허가를 안 받아도 된다고 나왔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국교위 운영법은 일반 위원들의 겸직금지 조항만 둘 뿐 위원장 관련 내용을 담지 않고 있다. 그럼에도 이 위원장의 위법 가능성은 존재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국가공무원법'이 비영리법인 활동이라도 공직자라면 겸직 허가를 받도록 하고 있기 때문이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의 시민입법위원장인 정지웅 변호사는 "국가공무원법이 '모든 국가공무원에게 적용'한다고 명시했는데, 국교위 운영법이 위원장 겸직 조항을 두지 않았다는 이유로 허가를 안 받았다는 게 과연 적법한지는 면밀히 따져볼 문제"라며 "위법 가능성이 충분해 보인다"고 바라봤다.
#기관장 겸직 허가, 누가 어떻게 하나
교묘하게 빠져나갈 수 있는 공직자 겸직 허가 제도의 한계를 꼬집는 목소리도 나온다. 겸직은 기관장의 허가를 받도록 돼 있지만 정작 기관장의 겸직은 누가 무슨 기준으로 허락하느냐는 지적이다. 표면상으로는 대통령이 허가권자이지만, 현실적으로 대통령이 모든 기관장의 겸직 여부를 들여다보고 판단하기란 불가능한 탓이다.
특히 기관장의 정치적 중립을 목적으로 겸직을 제한한 취지가 무색할 만큼 법에 빈틈이 많은 것도 문제다. 정병국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위원장의 사례가 대표적이다. 문화예술위는 박근혜 정부 시절 '문화계 블랙리스트' 사건으로 홍역을 앓은 뒤 엄격한 정치 중립을 요구받고 있지만, 정 위원장은 '청년정치학교' 교장을 겸임하고 있다.
청년정치학교는 2017년 바른미래당이 만들어 현재는 '청정'이란 곳에 속해있다. 청정은 국민의힘 인재영입위원회 위원 등을 지낸 이윤환 대표가 이끄는 사단법인이다. 이곳 산하의 청년정치학교는 바라보는 시각에 따라 교육 프로그램인지 정치단체인지가 달라질 수 있다. 이 모호한 경계 속에서 정 위원장 역시 겸직 허가는 받지 않았다.
정 위원장은 "청년정치학교장은 일종의 타이틀일 뿐 실제 역할은 많지 않다"며 "다른 등기된 자리에서는 진즉에 물러나 법적 문제는 해결했다"고 말했다. 이어 "정치 활동을 한다거나 중립을 깼다는 논란도 불필요하다"면서 "커리큘럼을 보면 진보든 보수든 이념 편향이 없고, 배출해낸 7명의 정치인 가운데 민주당도 포함됐다"고 설명했다.
주현웅 기자 chescol2@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