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통인 데다 윤석열 정부와도 긴밀…4대그룹 재가입 숙제, 정경유착 빌미 우려도
#미국 대통령 초청해 한국 대통령과 만남 주선
김병준 전경련 회장 대행의 임기는 8월 22일까지다. 재계에서는 류진 회장이 차기 전경련 회장으로 내정됐다는 소문이 돌고 있다. 류 회장은 2001년부터 20년 이상 전경련 부회장을 맡아 왔고, 윤석열 정부와도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이와 관련 전경련 관계자는 “차기 회장에 대해서는 확정된 바가 없다”며 말을 아끼고 있다.
전경련이 공식적으로 인정하지는 않았지만 재계에서는 류진 회장의 전경련 회장 취임을 기정사실로 보고 있다. 전경련의 다른 부회장인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과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은 전경련 회장직을 고사했다는 후문이다. 롯데그룹과 한화그룹은 박근혜 정부 시절 미르·K스포츠재단에 기금을 출연한 당사자로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에서 자유롭지 않다. 전경련은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를 계기로 위상이 급격히 추락했다. 신 회장이나 김 회장의 전경련 회장 취임 가능성을 두고 부정적인 기류가 있는 이유다. 롯데그룹과 한화그룹 관계자 모두 “공식적인 확인은 어렵다”고 말했다.
전경련 내부에서는 류진 회장에게 상당한 기대를 거는 것으로 전해진다. 류진 회장의 강점으로는 그가 가진 네트워크가 꼽힌다. 류 회장은 윤석열 정부와 긴밀한 관계라는 평가를 받는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4월 미국에 방문할 당시 류 회장은 경제사절단으로 동행했다. 당시 윤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만찬 자리에서 대기업 총수나 경제단체 회장이 아닌 경제계 인사는 류 회장 한 명뿐이었다. 류 회장은 지난해 5월 바이든 대통령이 방한했을 때도 만찬 자리에 초대받기도 했다.
류진 회장은 ‘미국통’이라고 불릴 정도로 미국 내 인맥이 강한 것으로 알려졌다. 풍산그룹의 주요 사업 중 하나는 방위산업이다. 국내 무기 체계의 특성상 미국과의 관계 설정이 중요할 수밖에 없다. 풍산그룹 이 부분에서 강점을 가지고 있다. 국내 정치인이 류진 회장을 통해 미국 정치인과 접촉을 하는 사례도 상당한 것으로 전해진다. 대표적인 사례로 류진 회장은 2008년 고 조지 H. W. 부시 전 미국 대통령을 한국에 초청해 이명박 전 대통령과 만남을 주선하기도 했다.
전경련의 주요 역할은 재계의 의견을 정치권에 전달하고, 국내 기업의 해외 진출을 지원하는 것이다. 류진 회장의 네트워크는 전경련에 큰 도움이 될 수 있는 셈이다. 뿐만 아니라 전경련 내부에서도 류 회장에 대한 신임이 높은 것으로 전해진다. 전경련은 지난 4월 류 회장을 한미재계회의 한국 측 위원장으로 선임했다. 한미재계회의는 전경련과 미국상공회의소가 1988년 설립한 경제협력 논의기구다. 전경련은 당시 “경제계 차원 협력을 더욱 강화하기 위해 경제계의 대표적 미국 전문가인 류진 회장을 추대했다”고 설명했다.
#4대그룹 재가입 가능할까
미국과의 관계와 달리 재계를 대표하는 수장으로서 류진 회장에 대한 기대는 사뭇 다르다. 전경련의 숙제 중 하나는 2016년 전경련을 탈퇴한 4대그룹(삼성·SK·현대차·LG)의 재가입이다. 전경련은 지난 7월 4대그룹 주요 계열사에 공문을 보내 전경련 재가입을 정식으로 요청했다. 4대그룹은 전경련 재가입과 관련해 공식 입장을 내지 않고 있다. 김병준 대행은 지난 7월 28일 일본 경제동우회와의 만찬 간담회에서 “4대그룹과 이야기하고 있다”며 “프로세스를 거치고 있다”고 말했다. 달리 보면, 4대그룹의 전경련 재가입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는 의미로도 해석이 가능하다.
재계 한 관계자는 “전경련이 정경유착으로 문제가 됐었는데 김병준 대행은 사실상 정치권 인물이니 지금 전경련에 재가입하는 것은 정경유착을 다시 하겠다는 뜻으로 비칠 수 있다”며 “재계를 대표하는 인물이 전경련 회장으로 취임하면 재가입을 할 때도 명분이 생길 것”이라고 분석했다.
문제는 재계에서 풍산그룹의 위상이다. 풍산그룹의 자산규모는 5조 원 미만으로 중견기업으로 분류된다. 중견기업 총수가 전경련 회장을 맡은 적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강신호 동아쏘시오그룹 명예회장은 2004~2007년 전경련 회장을 맡은 바 있다. 그러나 전경련은 당시 ‘재계의 맏형’으로 불리는 등 재계를 대표하는 단체였다. 기업 입장에서 전경련을 외면하면 정치권과의 소통도 쉽지 않은 상황이었다. 하지만 현재는 대한상공회의소(대한상의)와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가 전경련을 대체할 수 있는 수준으로 위상이 높아졌다. 대한상의와 경총은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손경식 CJ그룹 회장이 각각 이끌고 있다. SK그룹이나 CJ그룹은 국내 주요 대기업인 만큼 재계에서의 영향력도 막강하다.
현 정부와의 관계가 오히려 독이 될 수도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류 회장과 윤석열 정부의 우호적인 관계가 정경유착의 빌미를 제공할 수도 있다는 우려다. 전경련은 지난 3월 일본경제단체연합회(게이단렌)와 ‘한일·일한 미래 파트너십 기금’을 창설하는 등 윤석열 정부의 외교 정책을 지원하면서 정경유착과 관련한 비판을 받기도 했다.
시민사회의 시선도 곱지 못하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은 “재벌과 대기업들을 대변하고, 의견을 수렴하는 단체로는 전경련 외에도 대한상의나 경총이 있다”며 “4대그룹이 전경련에 다시 가입할 어떠한 명분도 없다”고 지적했다. 경제개혁연대도 “4대그룹이 전경련에 재가입하면 전경련은 사실상 과거로 완전히 회귀하게 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며 “그만큼 정경유착의 어두운 역사와 완전히 결별할 가능성도 낮아지게 될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와 관련, 재계 다른 관계자는 “윤석열 정부와 크게 가깝지 않으면서 위상은 높은 재계 인사가 전경련 회장으로 취임하는 것이 최고의 시나리오”라면서도 “현실적으로 해당 시나리오가 실현될 가능성은 없고, 4대그룹 입장에서는 이해득실을 따지기 시작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박형민 기자 gody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