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타공인 세계 1위 신진서까지 부진…“중국처럼 선수층 두터워질 필요 있어”
지난 4일 중국 허난성 정저우시 소피텔 인터내셔널 호텔에서 열린 제5회 MLILY 몽백합배 세계바둑오픈전 본선 16강전에서 신진서 9단, 김명훈 9단, 박건호 7단 등 3명의 기사가 모두 탈락하며 중국의 독주를 막지 못했다.
본선 64강전으로 출발한 이번 대회에는 주최국 중국이 32명, 한국은 14명이 참가했다. 한국 기사들이 단 한 명도 8강 무대를 밟지 못하고 16강에서 전원 탈락한 것은 2013년 제1회 몽백합배 이후 10년 만이다.
#한국 바둑, 2회 연속 8강 낙마는 처음
3회 대회 박정환 9단과 박영훈 9단의 형제결승을 제외하면 몽백합배는 한국과 유독 인연이 닿지 않는 대회다.
한국은 16강전에서 믿었던 신진서 9단이 리쉬안하오 9단에게 263수 만에 불계패를 당해 큰 충격을 줬다. 리쉬안하오가 LG배에서 이미 신진서에게 패한 적이 있고 춘란배 결승에서도 변상일 9단에게 완패를 당했기에 별다른 장애가 되지 못할 것으로 예상됐으나, 리쉬안하오가 ‘미친 경기력’을 발휘하면서 신진서에게 탈락의 쓴맛을 안겼다.
한국은 이어 김명훈 9단이 류위항 6단에게 171수 만에 불계패를 당했고, 이번 대회에서 선전 중이던 박건호 7단마저 당이페이 9단에게 패하면서 전원탈락이라는 예상 밖의 성적을 남기고 말았다.
1988년 세계대회가 처음 시작된 이후 한국이 같은 대회에서 2회 연속 8강에 오르지 못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특히 충격적인 것은 자타공인 세계 1위 신진서의 부진이다. 중국의 인해전술에 맞설 첨병 역할을 기대 받고 있지만, 최근의 신진서는 각종 기전에서 우려스런 모습을 보이고 있다. 6월 열린 란커배 구쯔하오와의 결승에서 1 대 2 역전패를 당한 충격이 컸는지 이어지는 대회에서 예전의 강력한 모습이 실종됐다. 7월 열린 국수산맥 결승에선 신민준에게 우승을 내줬고, 이번 몽백합배선 리쉬안하오에게 덜미를 잡혔다.
신진서는 8월 22일부터 중국 셰커 9단과의 응씨배 결승, 9월 열리는 항저우 아시안게임을 남겨두고 있어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주최국 중국 8강 독식…한국과 대조
몽백합배의 부진을 두고 전문가들은 국내 기사들이 좀 더 실력을 키우기 위해 노력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하루이틀 나오는 이야기가 아니지만 중국에 비해 우리 기사들의 층이 너무 엷다는 것. 우리나라의 경우 국제무대에서 우승을 노려볼 만한 기사가 4~5명 남짓인데 반해 중국은 비슷한 기량을 갖춘 기사들이 20명이 넘는다.
익명을 원한 한 바둑 관계자는 “64강 토너먼트로 진행되는 몽백합배의 경우 우승을 하기 위해선 1회전부터 6승이 필요한데, 아무리 신진서라 해도 중국 초일류들을 상대로 6연승을 거두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결국 한국 기사들의 우승 확률을 높이기 위해선 중국처럼 선수층이 두터워야 하는데 우리는 그렇지 못하다. 이는 우리 기사들이 좀 더 노력해서 극복해야 할 부분”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신진서 9단이 국내에서 20연승, 30연승 이렇게 거두는 것이 마냥 박수치고 좋아할 일이 아니다. 이는 우리나라 기사들의 수준이 중국에 비해 그만큼 떨어진다는 뜻이고, 이런 상황이 계속될 경우 일본처럼 국제대회 경쟁력을 잃을 수밖에 없다”고 분석했다.
한편 주최국 중국은 커제, 양딩신, 딩하오, 판팅위, 셰얼하오 등 세계대회 우승 경험이 있는 기사들이 탈락했지만 전기 우승자 미위팅을 비롯해 리쉬안하오, 구쯔하오, 당이페이, 쉬자양, 탄샤오, 랴오위안허, 류위항 등이 그 자리를 메우며 8강을 독식, 한국과 대조를 이뤘다.
중국 기사들의 대결로 압축된 8강전은 당이페이-구쯔하오, 랴오위안허-미위팅, 류위항-쉬자양, 탄샤오-리쉬안하오의 대결로 치러진다. 이번 대회 대진은 같은 국가 선수끼리 만나는 것을 최대한 피하는 방식으로 해서 매 라운드 추첨으로 정했다. 8강과 4강은 12월 속행되며 결승은 5번기로 내년 5월 펼쳐진다.
중국바둑협회가 주최하고 몽백합가구회사가 주관하는 제5회 MLILY 몽백합배 세계바둑 오픈전의 상금은 우승 180만 위안(약 3억 2000만 원), 준우승 60만 위안, 4강 패자 25만 위안, 8강 패자 16만 위안, 16강 패자 8만 위안, 32강전 패자 4만 위안, 64강전 패자 2만 위안이다. 제한시간은 각자 2시간에 1분 초읽기 5회.
유경춘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