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 기사 최초로 신예기전 우승 거머쥐어…“올해 가장 중요한 건 아시안게임, 금메달 따고 싶어”
지난 7월 25일 한국기원 바둑TV에서 열린 제1기 조아제약배 루키바둑영웅전 결승에서 김은지는 권효진 6단을 상대로 205수 만에 흑 불계승을 거두고 우승을 차지했다. 여자 기사가 남녀 모두 출전하는 신예대회에서 정상에 오른 것은 김은지가 처음이다.
또한 김은지는 7월 29일 열린 2023 NH농협은행 한국여자바둑리그 4라운드에서 보령 머드의 주장 최정 9단에게 불계승을 거뒀다. 입단 이후 최정에게 8연패를 당하는 등 김은지에게 최정은 넘지 못할 벽이었으나 정상의 일각을 무너뜨리면서 여자바둑계도 세대교체가 멀지 않았음을 시사했다.
#‘성대결’ 승리해 신예기전 첫 우승
김은지가 정상에 오른 루키바둑영웅전은 2004년 이후(19세 이하) 출생한 신예들의 무대다. 올해는 54명의 젊은 기사들이 출사표를 던졌다. 3연승으로 예선을 통과한 김은지는 본선에서 아마추어 김태겸, 박지현 4단, 권효진 6단을 연파하고 파죽의 6연승으로 정상에 올랐다.
결승 상대였던 권효진 6단은 올해 KB바둑리그에서 신인상을 받았고, 지난 4월 끝난 미래의별 신예최강전을 제패했던 유망주다. 이번 대회 준결승에선 현 신예랭킹 1위 한우진 9단을 꺾기도 했지만 김은지에겐 힘을 쓰지 못했다. 상대전적에서도 김은지가 4전 전승을 기록했다.
2022년 효림배 미래여자최강전과 난설헌배 전국여자바둑대회를 제패한 바 있는 김은지 5단은 루키바둑영웅전이 본인의 통산 세 번째 타이틀이다.
김은지는 우승을 확정지은 후 가진 인터뷰에서 “예선부터 올라오면서 고비가 많았던 것 같다. 결승전은 생각했던 것보다 꽤 내용이 좋아서 더 기쁘다”고 소감을 말했다. 이어 “올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대회는 아시안게임이다. 꼭 금메달을 따고 싶고 세계대회에서도 우승하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최정 9단의 23연승 저지
7월 29일 저녁 바둑팬들의 촉각은 여자랭킹 1위 최정과 2위 김은지가 맞붙는 2023 NH농협은행 4라운드 3경기에 쏠려있었다. 116개월 연속 여자랭킹 1위 자리를 고수하고 있는 최정과 7월 랭킹에서 처음으로 2위로 올라선 김은지의 대결은 직전 김은지가 루키바둑영웅전에서 우승하면서 분위기가 더욱 달아올랐다.
김은지의 급부상은 생각보다 이른 감은 있지만 이변은 아니라는 게 바둑계의 공통된 의견이다. 김은지는 이미 여자랭킹 3위 김채영에게 2022년 2승을 거두고 있었고(올해는 대결이 없었다), 2위 오유진에게는 최근 7승 1패로 압도적인 우위를 보여 왔다.
따라서 랭킹1위 최정과 맞붙으면 어떤 결과가 나올지 궁금했는데 이번 여자바둑리그에서 둘의 대결이 성사된 것. 그동안 김은지에게 최정만큼은 넘어서지 못할 거대한 벽이었다. 10년 가까이 여자랭킹 1위를 지키고 있는 최정에게 8전 전패, 단 한 번도 판맛을 보지 못했다. 바둑 내용도 일방적이었다.
그리고 맞은 최정과의 아홉 번째 대국. 여기서 김은지는 시종일관 상대를 압도하며 일방적인 승리를 거뒀다. 70수 무렵 승기를 잡은 김은지는 이후 단 한 차례도 상대에게 리드를 빼앗기지 않으며 완승으로 판을 마무리했다.
대국을 지켜본 백홍석 9단은 “최근 김은지 6단의 상승세는 알고 있었지만 실제 이 정도까지 성장했을 줄은 몰랐다. 생각보다 무척 빨리 올라왔다”고 말하면서 “과거에는 의욕이 지나쳐 서두르다 바둑을 그르치거나, 갑자기 느슨한 수가 등장해 흐름이 끊기는 경우가 많았는데 오늘 최정 9단과의 대국에선 이런 모습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앞으로가 더 기대되는 바둑”이라고 평가했다.
예상치 못한 패배를 당한 최정은 지난해부터 여자 기사를 상대로 22연승을 달리다 제동이 걸렸다. 바둑계 한 관계자는 “여자 기사가 남녀가 모두 출전하는 신예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한 것도 유례가 없는 일인데, 실력도 이미 여자랭킹 1위 최정과 대등하다는 것이 입증됐다. 김은지는 이제 16세다. 이 추세대로라면 어쩌면 신진서 다음이 김은지일지도 모르겠다”며 놀라워했다.
한편 김은지와 최정은 8월 22일부터 2023 닥터지 여자최고기사 결정전 결승3번기에서 다시 맞붙는다. 최정의 오랜 독주로 좀처럼 흔들리지 않던 여자 바둑 판도에 김은지가 균열을 일으킬지 귀추가 주목된다.
유경춘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