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만 행사 이지경인데…” 여야 전·현 정권 책임론 속 수백만 규모 엑스포 유치 악영향 우려
새만금 잼버리 대회는 시작과 동시에 폭염과 환경·위생·의료 등 준비 부족으로 논란이 일었다. 외신에서도 전 세계 158개국 청소년들이 참가한 만큼 여러 문제점을 중요하게 보도했다.
그러자 윤석열 정부는 ‘문재인 정부 책임’을 꺼내들었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8월 4일 “준비기간은 문재인 정부 때였다. 전 정부에서 5년 동안 준비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실무 준비는 지자체(전라북도)가 중심이 돼 한 것으로 보고받고 있다”며 지방정부에도 책임을 넘겼다.
국민의힘도 힘을 보탰다. 베트남 휴가를 마치고 돌아온 김기현 대표는 8월 7일 최고위원회의에서 “새만금 잼버리 유치가 확정된 건 2017년 8월 문재인 정권 시절”이라며 “문재인 전 대통령은 2017년 5월 처음 열리는 수석비서관회의에서 새만금 잼버리를 언급할 정도로 애정을 쏟았고, 새만금 사업을 100대 국정과제로 삼았을 정도로 준비에 집중했다. 문 전 대통령이 직접 영상까지 찍어 홍보에 열중했으며, 관련 특별법이 국회 통과하고 준비종합계획 수립 등과 같은 영역이 이루어진 것도 모두 문재인 정권이 주도했던 일임을 민주당 자신도 모르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김 대표는 다음날인 8월 8일 “세계 잼버리는 청소년들의 축제로 여야의 정치적 논쟁 소지가 될 수 없는 사안”이라며 “야당은 이 대회가 끝날 때까지만이라도 터무니없는 정치공세를 멈추고 초당적으로 대회의 성공적인 마무리에 협력하는 자세를 보여 달라”고 촉구했다.
더불어민주당은 공세 수위를 높였다. 김민석 정책위의장은 8월 10일 정책조정회의에서 “(새만금 잼버리) 진정한 유종의 미는 세계 참가단과 국민을 향한 대통령의 사과”라며 “정부가 열흘만 정신을 차렸어도 됐을 그늘막·화장실·샤워실 등 못 챙긴 것을 두고 15개월 전 물러난 전 정부 탓을 한 역대급 준비부실과 후안무치를 사과하고, 전국 지자체와 기관·기업·문화계 등의 인력과 비용으로 정부가 친 사고를 ‘국민 설거지’ 시킨 책임전가를 사과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송기헌 원내수석부대표도 “(야영지에서) 조기 퇴영한 대원들을 각 시·도로 분산하는 과정에서 입국도 않은 국가 참가자들 숙소를 배정하는 촌극이 발생하는 등 수습도 우왕좌왕이다”라며 “정부를 대상으로 제대로 원인을 따져볼 것이다. 최악의 잼버리란 오명을 (대한민국에) 덧씌운 책임을 확실히 묻겠다. 여성가족부를 비롯한 관계부처에 대한 국회 현안질의를 포함해 여러 대응을 적극 검토하겠다”고 강조했다.
8월 16일과 25일에는 잼버리 공동조직위원장을 맡은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과 김현숙 여성가족부 장관이 출석하는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여성가족위원회 전체회의가 열린다. 민주당은 두 장관을 상대로 파행 책임을 추궁할 방침이다. 더 나아가 민주당은 국정조사 카드까지도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진다.
새만금 잼버리 운영 파행을 두고 여야의 책임 공방이 벌어지고 있지만 윤석열 정부의 부담이 더욱 클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윤 대통령은 지난 3월 한국스카우트연맹 명예총재 추대식에 참석해 “새만금에서 개최되는 잼버리를 대통령으로서 전폭 지지하겠다”고 약속했다. 윤 대통령은 부인 김건희 여사와 함께 여름휴가 첫날이었던 8월 2일 잼버리 개영식에 스카우트 단복을 입고 직접 참석하기도 했다. 잼버리 논란이 확산되자 한덕수 국무총리는 8월 4일 “지금부터 대한민국 중앙정부가 전면에 나서 마지막 한 사람의 참가자가 새만금을 떠날 때까지 안전관리와 원활한 대회 진행을 책임지겠다”고 밝혔다.
민주당 한 관계자는 “새만금 잼버리는 처음부터 중앙정부 책임이었다. 지원특별법을 봐도 정부지원위원회에 위원장은 국무총리, 부위원장은 기재부·교육부·여가부 장관이다. 각 부처 장관들도 위원으로 이름을 올린다”며 “공동조직위원장도 이상민 행안부 장관, 박보균 문체부 장관, 김현숙 여가부 장관이지 않느냐. 그런데 국제적 망신거리가 되니 중앙정부는 관련이 없었던 것처럼 ‘꼬리 자르기’를 한다. 앞서 10·29 참사, 오송 지하차도 참사 등에서 봤던 모습의 연장선이다. 윤 대통령이 잼버리 개영식에 참석해 현장을 봤다. 윤 대통령이 책임을 지는 것이 맞다”고 꼬집었다.
여당 내부에서도 비판의 목소리가 나왔다. 중진 윤상현 의원은 8월 9일 자신의 SNS에서 국민의힘 지도부를 향해 “책임감이 없다. 새만금 잼버리 사태의 책임을 문재인 정권의 탓으로만 돌리는 것도 실망스럽다. 집권당의 책임을 회피하고 정권교체를 갈망한 국민의 기대를 저버리는 태도”라며 “야당의 정치적 배후, 여가부 폐지를 운운하기 전에 수습 총력 대응이 먼저”라고 지적했다.
정치권에서는 이번 잼버리 사태가 2030 부산엑스포 유치에 악영향을 미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부산엑스포 유치는 윤석열 대통령 대선 공약이었다. 지난 6월에는 프랑스 파리를 방문해 국제박람회기구(BIE) 총회 4차 경쟁 프레젠테이션(PT) 무대에 직접 올랐다. 김건희 여사 역시 부산엑스포 유치를 각별히 챙기고 있다. 김여사는 자신의 손가방에 직접 디자인에 참여한 ‘BUSAN IS READY(부산은 준비됐다)’가 적힌 키링을 달고 다니며 관심을 모았다.
2030 엑스포 개최지 선정은 오는 11월 프랑스 파리 BIE 총회에서 179개 회원국의 비밀투표로 결정된다. 현재 유치전은 사우디아라비아 리야드가 선두를 달리는 가운데 부산과 이탈리아 로마가 추격하는 양상이다. 하지만 4만여 명이 참석한 청소년 행사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하면서, 수백만 명이 찾는 엑스포를 치를 수 있겠느냐는 의구심이 제기되고 있다.
영국 가디언은 “한국 정부는 엑스포·월드컵·올림픽, 세계 3대 행사를 모두 개최하는 일곱 번째 국가가 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개최국 선정이 몇 달 남지 않은 2030 세계엑스포는 국가적 우선순위”라며 “한국이 수십 년 동안 대규모 글로벌 행사를 개최하며 선진국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려 했지만, 이번 일로 타격이 불가피해졌다”고 전했다.
부산엑스포 유치에 실패하면 그동안 공을 들여온 윤 대통령 리더십에도 타격을 줄 수 있는 상황이다. 공동조직위원장 김현숙 장관은 이 같은 우려에 대해 “오히려 위기 대응을 통해 한국의 역량을 보여주는 시점”이라며 “부산엑스포(유치)에 영향을 주지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가 뭇매를 맞았다.
민주당 또 다른 관계자는 “대한민국은 과거부터 전 세계에 국제행사를 잘 치르는 것으로 유명했다. 그런데 윤석열 정부 들어 대규모 인파가 몰리면 안전사고가 끊이지 않고 있다”며 “이번 잼버리 사태를 보여줬는데 회원국들에 부산엑스포에 표를 달라 할 수 있겠느냐. 오히려 ‘2030년 한국은 윤석열 대통령이 아니다’라고 홍보해야 할 판”이라고 꼬집었다.
민웅기 기자 minwg08@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