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 해소 위해 공포물 찾아, 고독사·사고물건 관심…괴담사 직업 등장, 괴담 그랑프리 대회도
“이건 제 지인이 경험한 섬뜩한 얘기예요.” 지난 7월 중순, 오사카시의 한 카페에 괴담 팬 30여 명이 모였다. 중앙에서 말하는 사람은 20~30대 괴담사 4명. 음산한 조명이나 배경 음악 같은 특수 효과는 없다. 이들이 들려주는 것은 ‘실화 괴담’이라는 장르로, 전국 각지에서 취재한 무서운 이야기를 마치 친구들과 수다를 떠는 듯한 분위기에서 차례차례 선보인다.
괴담 붐이 불면서 일본 곳곳에서는 관련 이벤트가 매주 열리다시피 한다. 한 참가자는 “왠지 무서운 이야기는 공유하고 싶어진다”며 “다들 괴담을 좋아하는 사람들이라 이야기를 꺼내면 열심히 들어준다”고 전했다. “모두가 하나로 연결돼 오싹오싹하면서도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는 설명이다.
구전으로 전해 내려오던 괴담 시리즈는 최근 유튜브와 팟캐스트 같은 새로운 매체로 이어져 한층 열기가 뜨거워지고 있다. 특히 유튜브의 경우 조회수가 수십만 회를 웃도는 괴담 시리즈가 즐비하다. 대표적인 것이 개그콤비 ‘나나후시기’가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로, 동영상 총 조회수는 무려 1억 4000만 회가 넘는다.
화면을 보지 않고 음성만으로도 즐길 수 있다는 것이 괴담의 장점이다. 검색하면 일할 때 듣기 좋은 괴담, 수면용 괴담도 많이 나온다. 언뜻 무서워서 잠이 오지 않을 것 같지만, 괴담사들은 “공포영화를 보면 평소 쌓여있던 불안감이나 스트레스를 어느 정도 해소할 수 있는 것처럼 괴담도 같은 효과가 기대된다”고 주장한다.
인기에 힘입어 장르도 풍성해졌다. 예전에는 유령이 나오는 심령계가 많았으나 요즘엔 평행세계, 외계인, 인간이 무서웠던 이야기, 살인이나 자살 등 사건사고가 일어난 ‘사고물건(事故物件)’, 세간에 알려진 도시전설을 검증하는 장르 등등 다양하다. 이를테면 ‘다른 세계 엘리베이터’라는 도시전설이다. 10층 이상의 건물 엘리베이터를 혼자 타고 정해진 순서대로 버튼을 누르면 다른 세계로 갈 수 있다는 것. 한 유튜버가 실제로 검증해봤지만 물론 성공하진 못했다.
가장 주목도가 높은 장르는 역시 실제로 체험한 무서운 이야기다. ‘자살숲’이라 불리는 아오키가하라를 20년간 답사한 르포라이터의 체험담이랄지, 개그맨 마쓰바라 다니시의 사고물건 거주 이야기 등이 대표적이다.
마쓰바라는 2012년부터 일부러 사고물건을 찾아 사는 것으로 유명하다. 지금 살고 있는 집도 이전에 살던 사람이 목을 매 자살한 아파트다. 그에 의하면 “아직 뚜렷한 인간 형태의 유령을 보진 못했으나 기묘한 체험은 종종 겪는다”고 한다. 이러한 경험을 바탕으로 ‘사고물건 무서운 방’을 출간해 베스트셀러에 올랐으며, 2020년에는 동명 영화가 제작돼 크게 히트했다.
괴담 붐이 다시 부는 이유를 묻자, 마쓰바라는 불안감을 꼽았다. “특히 20대 젊은층은 무한한 가능성과 함께 무안한 불안감도 안고 있다”면서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오히려 공포물을 찾는 것 같다”고 분석했다. 아울러 “최근에는 사고물건이나 고독사 같은 ‘친근한 공포’에 좀 더 관심을 두는 특징이 있다”고 한다.
예전에는 과장되게 겁주고 놀라게 하는 스타일이 인기였지만, 지금은 담담하게 말하는 쪽이 먹힌다. 마쓰바라 씨는 “인터넷이 보급되면서 팩트 체크를 하는 사람도 많아 거짓 괴담은 금방 들통난다. 그래서 사실적인 무서운 이야기의 수요가 높아지는 게 아닐까 싶다”고 덧붙였다.
오컬트 전문 편집자, 카도 유키코 씨도 “사회적 불안감 증대가 무서운 이야기에 흥미를 갖게 하는 요인”이라고 밝혔다. 일본의 괴담 붐은 2011년 동일본 대지진을 계기로 고조된 적이 있다. 카도 씨는 “이번에는 코로나19 팬데믹,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등으로 죽음을 가까이 접하게 되면서 괴담이 다시 유행하게 된 것 같다”고 추측했다. 한편으로는 “동일본 대지진 때처럼 감동을 주는 무서운 이야기가 늘어날 수 있다”고도 했다. 불안한 현실에서 도망치고 싶은 수요가 증가하기 때문. 가령 돌아가신 할머니가 나와서 도와줬다는 식의 이야기들이다.
확실히 ‘공포’나 ‘괴담’ 콘텐츠는 사람들의 호기심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하다. 카도 씨는 “테크놀러지가 진화할수록 현대 과학으로 설명할 수 없는 초자연현상에 대한 관심도 커진다”며 “그런 의미에서 괴담의 인기는 앞으로도 계속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고 짚었다.
빨간 마스크녀 소~름! 일본인이 뽑은 가장 강렬했던 괴담
일본 인터넷 매체 ‘마이나비뉴스’는 최근 설문조사를 통해 ‘오싹했던 괴담’ 순위를 발표했다. 여전히 기억하는, 가장 강렬했던 괴담은 과연 무엇일까.
1위 입 찢어진 여자(16%)
이른바 ‘빨간 마스크’ 괴담으로 1980년대 일본 초등학생들 사이에서 유행했다. 마스크를 쓴 여자가 아이에게 다가가 “내가 예쁘니?”라고 묻는다. “예쁘다”고 답하면 여자는 마스크를 벗는데, 여자의 입은 귀밑까지 찢어져 있다. 그리고 “나랑 똑같이 해줄게”라면서 아이의 입을 찢는다. 만약 “예쁘지 않다”고 말하면 화가 난 여자가 흉기로 아이를 살해하고 만다. 어느 쪽이든 소름 끼치는 건 마찬가지. 당시 아이들에게 엄청난 공포를 줘 등교를 거부하는 등 사회적 파장으로 번지기도 했다. 한국, 대만 등에도 퍼져 나가 일본발 무서운 이야기로 유명하다.
2위 테케테케 귀신(15%)
학교를 무대로 한 도시전설이다. 일명 ‘팔꿈치 귀신’으로 불리기도 한다. 방과 후 학교에 남아 있으면 상반신만 있는 소녀의 망령이 나타난다. 철도에서 사고를 당한 원혼으로 사람들의 하반신을 노리는 것으로 알려졌다. 마주치면 엄청난 속도로 기어와 자신과 같은 귀신으로 만든다. 테케테케라는 이름의 유래는 팔꿈치로 바닥을 달릴 때 나는 소리를 일본어로 표현한 것이다.
3위 메리 씨의 전화(14%)
한 소녀가 메리라는 인형을 버리고 이사를 간다. 그날 밤 소녀에게 전화 한 통이 걸려온다. “나 메리야. 지금 쓰레기통에 있어….” 전화를 끊어도 다시 걸려온다. “나 메리야. 지금 집 앞에 있어….” 소녀는 과감히 현관문을 열어보지만 아무도 없다. 누군가의 장난이겠거니 하는 순간, 또다시 걸려온 전화 “나 지금 너 뒤에 있어….” 여운이 또 다른 공포를 불러일으킨다.
강윤화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