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대작 줄줄이 저조한 성적 ‘영화 명가’ 체면 구겨…“가장 큰 문제는 신파, CJ 특유의 감성 버려야”
코로나19 팬데믹 시기는 CJ ENM 영화의 사실상 암흑기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다. 2020년 8월 개봉한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가 430만 관객을 넘어서 당시 기준으로 팬데믹 시기 가장 흥행한 한국 영화로 꼽히며 메이저 배급사의 브랜드를 지키는가 했지만, 2022년 야심차게 공개한 최동훈 감독의 ‘외계+인 1부’가 처참한 성적표를 거두면서 '영화 명가'의 자존심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이 직전 CJ ENM은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브로커’, 박찬욱 감독의 ‘헤어질 결심’ 등 제75회 칸 영화제에서 각각 남우주연상과 감독상을 수상한 작품을 앞세워 시네필 공략에 나섰다. 그러나 ‘브로커’는 126만 명, ‘헤어질 결심은’ 189만 명으로 다소 힘겹게 손익분기점만 넘어섰다. 당시 영화계에 따르면 CJ ENM은 ‘헤어질 결심’의 경우 최소 300만 이상의 관객 수를 예측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박찬욱 감독과 칸 영화제 수상작이라는, 시네필을 유혹할 만한 수식어를 모두 갖췄음에도 극장가를 떠난 관객들의 발길을 붙잡진 못했던 것이다. ‘헤어질 결심’의 예상 밖의 저조한 스코어는 당시 영화계에도 큰 충격을 줬다.
이 두 작품은 블록버스터 영화가 아니다 보니 국내 흥행에 크게 일희일비하지 않는 것으로 어떻게든 넘어갈 수 있었다고 해도 문제는 그 다음 이어진 ‘외계+인 1부’의 성적표였다. ‘헤어질 결심’ 이후 한 달 만에 개봉한 이 작품은 ‘도둑들’과 ‘암살’로 이른바 ‘쌍천만 감독’ 대열에 이름을 올린 최동훈 감독이 선보이는 새로운 SF 판타지 블록버스터 영화라는 점에서 대중들의 관심을 선점하는 데는 성공했지만, 공개 이후 다소 산만한 전개와 밋밋한 캐릭터성 등이 지적되며 혹평이 이어졌다. 약 360억 원의 제작비가 투입돼 손익분기점 730만 명이라는 높은 기준치를 절반의 절반도 채우지 못한 최종 관객 수 153만 명의 성적표를 받아든 CJ ENM 내부도 큰 충격을 금치 못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나마 같은 해 추석 특수를 노리고 나온 ‘공조2: 인터내셔날’이 700만 명 가까운 관객 수를 채워내며 5주 연속 박스오피스 1위를 수성하는 등 조금씩 반등의 기미를 보였다. 그러나 연말을 정조준한 뮤지컬 영화 ‘영웅’이 320만 명 관객을 동원해 손익분기점에 미치지 못하는 성적을 거두면서 다시 위기감이 감돌았다. 원작 뮤지컬의 유명세와 n차 관람을 이어가는 탄탄한 팬덤을 갖추고 있는 작품이었기에 최소 400만 이상의 관객을 동원할 것이라 기대됐던 만큼 ‘영웅’의 흥행 실패는 깊은 아쉬움으로 남을 수밖에 없었다.
이런 가운데 2023년은 CJ ENM에게 더 큰 시련으로 다가왔다. 먼저 연초에 개봉했던 ‘유령’과 ‘카운트’가 모두 흥행에 참패했다. 특히 ‘유령’은 손익분기점 335만 명에 턱없이 미치지 못하는 66만 명 관객 수를 기록하며 2022년 ‘외계+인 1부’의 악몽을 되새김질하게 만들었다. 같은 날 개봉한 경쟁작 ‘교섭’(플러스엠) 역시 손익분기점 달성은 실패했어도 170만 명을 동원했던 것에 비교한다면 상당히 뼈아픈 실패였던 셈이다.
올여름 메이저 배급사들이 이를 갈며 줄줄이 내놨던 ‘텐트폴 무비 빅4’ 가운데서도 CJ ENM의 흥행 참패가 단연 눈에 띈다. 8월 2일 개봉한 ‘더 문’은 ‘신과 함께’ 시리즈의 또 다른 쌍천만 감독, 김용화 감독의 신작이자 한국 영화사 최초의 달 탐사 소재 영화로 막강한 스케일과 함께 설경구, 도경수, 김희애라는 새로운 조합이 영화 팬들의 관심을 끌었었다. 그러나 압도적인 CG와 기술적인 완성도 측면을 제외한다면 신파로 얼룩진 서사만이 남는다는 문제점이 지적되면서 관객들의 외면이 이어졌다.
비슷한 시기 개봉한 ‘비공식작전’(쇼박스)도 손익분기점 500만 명에 도달하긴 어렵다지만 8월 17일 기준으로 100만 관객을 넘어섰고, 작품의 무거운 분위기 탓에 호불호는 갈리지만 조금씩 입소문이 기세를 올리기 시작한 ‘콘크리트 유토피아’(롯데엔터테인먼트)는 200만을 기록했다. 반면 ‘더 문’은 8월 17일 기준으로 간신히 50만 명을 넘긴 것을 끝으로 조금씩 퇴장 수순을 밟고 있다. 코로나19의 엔데믹 선언 이후 조금씩 활력을 되찾고 있는 극장가의 극성수기인 여름의 힘조차 제대로 받지 못한 셈이다. 국내 최대 투자 배급사이자 영화 명가로 꼽혀 온 CJ ENM으로선 2년 연속으로 이만저만 체면을 구긴 게 아니다.
이 같은 흥행 참패는 곧 손실로 이어졌다. 8월 10일 발표된 CJ ENM 2023년 2분기 실적에 따르면 매출 1조 489억 원, 영업손실 304억 원을 기록하며 전년 동기 대비 매출은 12% 감소했고 영업이익은 적자 전환됐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경기 침체로 인한 방송 광고 시장의 둔화도 요인이었지만 영화·드라마 부문 매출이 전년 동기 대비 32.2% 감소한 2296억 원, 영업손실 311억 원을 기록한 것도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파악됐다.
이런 가운데 올 4분기에도 CJ ENM은 여름과 마찬가지로 타 배급사들과 경쟁적인 배급을 이어간다. CJ ENM은 강동원을 내세운 ‘천박사 퇴마 연구소: 설경의 비밀’의 추석 개봉을 시작으로 ‘외계+인 1부’의 속편인 ‘외계+인 2부’, 이선균·주지훈 주연의 ‘탈출: PROJECT SILENCE’ 등을 순차적으로 공개할 예정이다. 비슷한 시기 플러스엠은 송중기의 ‘보고타’, 롯데엔터테인먼트는 하정우·임시완의 ‘1947 보스톤’, 이순신 3부작의 최종장 ‘노량: 죽음의 바다’를 공개 예정 목록에 올렸다.
앞선 ‘외계+인 1부’가 관객들의 외면을 받았기 때문에 속편에 대한 기대감도 다소 줄어든 것도 사실이다. 여기에 ‘탈출: PROJECT SILENCE’의 경우는 제76회 칸 영화제 미드나잇 스크리닝을 통해 선공개됐지만 어색한 CG와 극 전체를 지배하는 신파 서사로 혹평을 들은 바 있다. 개봉 전부터 기대를 받지 못하는 작품들로 연말을 공략하기엔 어려움이 따를 수밖에 없다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영화계 관계자들 사이에서는 이른바 ‘CJ 영화’의 고질병으로 꼽히는 신파가 더 이상 대중들의 마음을 움직이지 않는다는 분석이 나오기도 했다. 아무리 거대한 스케일로 무장해 눈과 귀를 즐겁게 해주는 블록버스터라도 실상 베일을 벗기고 나면 뻔하디 뻔한 신파 서사가 주를 이루는 CJ ENM의 작품을 너무 오래도록 봐 왔다는 것이다. 이전까지는 스토리 전개를 짐작하면서도 감독과 주연을 보고 작품을 선택해 온 대중들도 티켓 값이 뛰어 오른 코로나19 팬데믹 이후부터는 철저히 작품성과 재미에만 엄격한 기준을 두게 돼 단순히 ‘천만 감독’ ‘천만 배우’로는 이들의 선택을 받을 수 없다는 지적이다.
익명을 원한 영화계 관계자는 “최근 수년 동안 신파 서사가 지적되며 흥행에 참패한 CJ ENM 영화들은 개봉 전 내부 평가에선 긍정적인 평을 들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대중들이 지금 원하는 작품과 결정권자들이 좋아하는 작품 사이의 상당한 괴리가 있다는 것”이라고 짚었다. 그러면서 “신파 하면 CJ의 상업영화를 떠올리던 것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지만, 불과 10년 전까지만 해도 그런 감성이 잘 먹혔기 때문에 큰 위기감을 갖지 못했던 것도 사실”이라며 “특히 10대부터 30대까지 비교적 젊은 세대들 사이에서는 이런 CJ 감성이 잘 먹히지 않는다는 게 눈에 보일 만큼 확인되고 있다.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서는 좀 더 시대 감성에 맞는 작품 선정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김태원 기자 deja@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