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구 대통령’ 허재도 자존심 구겨…‘경영자 자리’ 쉽게 도전할 수 있는 길 아냐
베컴은 선수시절 화제를 모은 2007년 LA 갤럭시 입단 당시 훗날 MLS 구단을 비교적 쉽게 창단할 수 있는 권한을 얻었다. 베컴은 오랜 시간 프로축구팀 구단주를 꿈꾸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오랜 준비 기간 끝에 마이애미는 리그 합류 4년 차를 맞이했다.
베컴처럼 몇몇 슈퍼스타들이 은퇴 이후 구단 경영에 참여하며 스포츠계에서 여전히 영향력을 발휘하기도 한다. 감독 선임, 선수 영입 등 구단의 모든 일에 관여할 수 있는 경영자로서 활동을 꿈꾸는 이들이 많을 수 있겠으나 쉽게 도전할 수 있는 길은 아니다. 구단 인수, 혹은 창단 작업에 많은 재원이 필요하기에 막대한 수익을 올렸던 슈퍼스타 출신들이 주로 나서고 있다. 데이비드 베컴을 포함해 마이클 조던, 데릭 지터 등이 그 예다.
#메시와 손잡은 베컴
베컴의 소셜미디어에는 최근 '슈퍼스타' 리오넬 메시의 사진이 자주 등장한다. 끔찍하게 아끼는 늦둥이 막내딸 하퍼 베컴을 메시와 함께 손을 잡고 경기장에 입장시키기도 했다. 지난 7월 파리 생제르맹과 계약을 마친 메시는 마이애미 유니폼을 입었다.
2020년부터 리그에 참가해 신생팀 격인 마이애미는 그간 두각을 드러내지 못했다. 첫 두 시즌 하위권을 오갔고 3년 차인 지난 시즌 동부컨퍼런스 14개 팀 중 6위에 올랐다. 전반기를 보낸 이번 시즌은 컨퍼런스 최하위에 머물러 있다.
메시 영입 효과는 극적이었다. 이적 직후 열린 리그스컵에서 마이애미는 6연승 행진으로 결승에 진출했다. 그사이 메시는 전 경기에서 득점(6경기 9골)하며 팀을 이끌었다. 세르히오 부스케츠, 조르디 알바 등 메시와 함께 과거 바르셀로나의 황금기를 이끌었던 멤버들도 차례로 팀에 합류해 힘을 보탰다.
마이애미는 성적과 더불어 흥행가도도 달리고 있다. '인기 품목'이 된 메시 이름이 새겨진 유니폼은 매진된 지 오래다. 메시 입단 전 평균 30달러 정도를 오가던 홈경기 티켓 가격은 현재 250달러로 급등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간 존재감이 크지 않던 베컴의 구단주로서 활동도 주목받고 있다. 마이애미는 구단 공식 명칭과 엠블럼 등에 스페인어를 사용, 연고지 내 히스패닉계를 겨냥했다. 연고지를 마이애미로 한 이유 중 하나도 축구 인기가 높은 중남미 지역과 가까워서다. '현재 진행 중'인 베컴과 마이애미의 행보에 앞으로도 눈길이 지속될 전망이다.
#체면 구긴 '황제' 마이클 조던
상승 곡선을 그리고 있는 구단주 베컴과 달리 '농구 황제' 마이클 조던은 선수 생활 동안 쌓아 올린 명성을 구단주 활동으로 깎아먹은 사례다. 조던은 시카고 불스에서 '2차 은퇴' 이후 워싱턴 위저즈의 주주로 활동하다 선수로 복귀한 바 있다. '3차 은퇴' 후에는 샬럿 밥캣츠의 창단 과정에 참여, 주주로 활동하다 2010년부터 구단주로 전면에 나섰다.
샬럿은 존재감을 드러내기 어려운 구단이었다. 연고지 노스캐롤라이나에 앞서 자리를 잡았던 과거의 샬럿 호네츠도 고전을 면치 못했다. NBA 출범 이후 뒤늦게 창단한 이들은 연고 내 아이스하키, 미식축구 팀 등에 밀리다 결국 뉴올리언스로 떠났다.
밥캣츠 구단의 사정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조던은 여전히 '밥캣츠'보다 인지도가 높던 '호네츠'라는 이름을 다시 부활시켰다. 그럼에도 샬럿은 NBA 내에서 가장 주목받지 못하는 팀 중 하나였다.
샬럿이 비인기 구단으로 머문 데는 신통치 못한 성적이 가장 큰 이유다. 마이클 조던이 주주, 구단주로 활동한 약 20년의 기간 동안 플레이오프 진출권인 컨퍼런스 8위 이내 성적을 기록한 시즌은 단 3시즌에 불과하다.
구단주 조던의 선택도 비판을 받아왔다. NBA에서 우승 가능성이 있는 팀은 적극적으로 스타 영입에 나서고 전력이 약하다고 판단될 경우 리빌딩 혹은 탱킹을 선택한다. 하지만 샬럿은 애매한 정책으로 일관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또 팀의 프랜차이즈 스타 캠바 워커를 놓치거나 코칭스태프 선임, 드래프트 픽, 트레이드 등 다양한 분야에서 조던은 비판받았다. '드림팀'에서 호흡 등으로 선수시절 조던의 절친한 사이였던 찰스 바클리와 관계가 악화된 배경도 바클리가 호네츠 경영을 비판하면서다.
결국 조던은 지난 6월 팀을 매각하며 구단주 자리를 내놓았다. 조던의 농구계 활약에 많은 기대가 모였으나 장기간 구단주를 맡으며 남긴 성적은 두 번의 플레이오프 1라운드 진출이 전부였다. 흥행 면에서도 두드러지지 못했다. '슈퍼스타는 명감독이 되지 못한다'는 스포츠계 격언에 이어 구단주 역할 역시 어렵다는 사례를 남겼다.
국내 사례에 비춰보면 조던은 그나마 낫다. '농구 대통령'으로 불리던 허재는 데이원자산운용의 오리온 농구단 인수 과정에 참여, '구단주' 타이틀을 달았다. 데이원은 하위권 전력으로 평가받았음에도 4강 플레이오프에 진출하는 '감동 농구'를 펼쳤지만 허재가 나선 구단 운영은 역대 최악으로 평가받는다. 데이원 구단은 선수단과 직원 월급조차 지급하지 못하는 등 자금난을 겪으며 한 시즌 만에 구단 운영권을 넘겼다. 허재 등 핵심 관계자는 KBL의 제명 조치를 당했다.
#데릭 지터, 조던과 동병상련
'뉴욕의 연인'에서 마이애미 말린스 CEO로 활동했던 데릭 지터는 조던과 동병상련을 겪었다. 인수 이전부터 구단 사정이 좋지 못했다는 점에서 시작부터 지터의 경영인 행보는 조던과 닮았다.
두 번의 월드시리즈 우승 이력이 있으나 마이애미는 MLB에서 존재감이 적은 스몰마켓 구단이다. 재정적으로 어려움이 있었고 지터의 CEO 취임 이후에도 사정은 달라지지 않았다.
지안카를로 스탠튼, 크리스티안 옐리치, J.T. 리얼무토 등 팀 내 간판급 스타들을 차례로 떠나보냈다. 반면 보강이 적절히 이뤄지지 않으면서 전력은 약화됐다. 지터의 CEO 부임 2년 차부터 마이애미는 2시즌 연속 내셔널리그 동부지구 5위를 기록했다. 4할 이하의 승률로 내셔널리그를 통틀어 최하위였다.
자연스레 흥행에도 빨간불이 켜졌다. 2019시즌 마이애미는 홈경기 평균관중 1만 명 이하를 기록, 같은 시기 KBO리그 9위에 올랐던 한화 이글스보다 평균관중이 적었다. CEO 지터로선 불명예였다.
다만 지터의 경영인 생활에 그늘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리빌딩을 이어가던 마이애미는 2020시즌 내셔널리그 동부지구 2위에 올라 와일드카드를 확보했다. 2003시즌 월드시리즈 우승 이후 17년 만에 포스트시즌 진출에 성공한 것이다. 2021시즌에는 비록 지구 4위로 성적이 하락했으나 유망주들의 성장으로 리빌딩이 잘 진행되고 있다는 평가를 받았다. 지터는 2021시즌을 마지막으로 CEO직을 내려놨다.
각 종목을 대표하는 스타 베컴, 조던, 지터 외에도 슈퍼스타의 경영 참여는 이어지고 있다. 브라질의 '축구 황제'로 불리던 호나우두는 다방면에 손을 뻗치고 있다. 자국 내 e스포츠팀을 인수하더니 스페인의 레알 바야돌리드, 자신이 프로축구 경력을 시작했던 크루제이루를 연이어 인수하며 구단주로 나서고 있다. 현역 NBA 스타인 르브론 제임스는 미국 스포츠 투자 회사 펜웨이스포츠그룹(FSG)에 거금(약 8500억 원)을 투자해 보스턴 레드삭스(MLB), 리버풀(프리미어리그) 등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제임스는 리버풀의 새 유니폼 발매 이전 공식 석상에 이를 입고 등장해 눈길을 끌기도 했다.
김상래 기자 scourge@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