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혐의 어느 정도 입증’ 문구만 받아내면 성공 판단…국회·법원 문턱 못 넘어도 잃을 것 없는 상황
이틀 앞선 21일, 국회에 출석한 한동훈 법무부 장관은 ‘비회기 때 구속영장을 청구하라’는 민주당의 요구에 대해 “수사 흐름에 따라 판단할 몫”이라고 단호하게 선을 그었다. 그보다 앞선 18일 오후 정부과천청사에서 열린 북한인권기록보존소 현판식 행사에서 만난 취재진에게는 “입으로는 특권을 포기한다고 말씀하시지 않았나. 그런데 희한한 특별 대접 요구가 많으신 것 같다”며 “마치 식당 예약하듯 구속해달라고 요구하는 건 누가 봐도 비정상적인 일”이라고 반박했다. 민주당의 ‘정치 검찰의 조작 수사’ 비판에 대해서는 “범죄 수사를 받는 피의자가 자기변명을 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갈음했다.
#늦어지는 청구 시나리오
당초 8말9초(8월 말~9월 초) 영장청구설이 거론됐지만, 민주당이 8월 비회기 중 영장청구를 거듭 요구하면서 영장청구 시기가 오히려 뒤로 미뤄지는 모양새다. 이 대표에 대한 구속영장은 정기국회가 시작되는 9월 초나 9월 중순 즈음 청구될 가능성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민주당이 가장 원치 않는 시나리오다. 민주당은 8월 임시회 회기를 25일에 종료하고 26일부터 31일까지는 비회기 기간으로 하자고 제안했다. 비회기 중에 구속영장이 청구되면 국회 체포동의안 표결 없이 바로 영장실질심사를 받게 된다. 반면 정기국회가 열리는 9월에는 동의안 표결을 피할 수 없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국회에 출석해 ‘체포동의안 요청 이유’를 설명하며 범죄 혐의를 읊는 게 전국민에게 공개된다. 민주당 의원들의 불참 시나리오도 등장하면서, 비명과 친명 사이 계파 갈등의 여지가 벌써부터 보이기 시작했다.
이를 잘 아는 이재명 대표도 8월 17일 4차 검찰 소환조사에서 “검찰은 회기 중 영장을 청구해 (민주당의) 분열과 갈등을 노리는 꼼수를 포기하라”고 촉구했지만 그럴수록 ‘9월 청구’에 더 무게가 실리는 모양새다.
검찰의 한 관계자는 “한동훈 장관의 말처럼 정치적 파급력이나 흐름을 보고 수사 일정을 조율하는 것은 아니지만 거꾸로 수사가 정치적으로 끼칠 수 있는 영향도 검토해야 하지 않냐. 대통령이 해외 일정이 있을 때 영장을 치는 등 며칠 상간의 일정 조율 정도는 늘 검토했다”며 “이재명 대표에 대한 영장 청구 시기 결정도 윗선에서 많은 고민을 해서 이뤄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단단하게 ‘묶어서’ 영장 청구 계획
서울중앙지검(대장동·백현동 개발 특혜 의혹 사건)과 수원지검(대북송금 의혹 사건)의 수사는 조금씩 진행되고 있다. 수원지검 형사6부(부장 김영남)는 최근 이 대표를 대북송금 의혹 관련 제3자뇌물제공 혐의로 입건했다. 쌍방울그룹이 북한에 건넨 자금이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에게 ‘뇌물’ 성격을 준 것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이미 김성태 전 쌍방울그룹 회장, 이화영 전 경기도 평화부지사로부터 이를 입증할 진술을 확보했기에 기소하는 데 전혀 문제가 없다는 게 검찰의 판단이다.
형법 130조에는 ‘공무원이 직무에 관해 부정한 청탁을 받고 제3자에게 뇌물을 공여하게 하거나 공여를 요구·약속한 경우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년 이하의 자격정지에 처한다’고 적시돼 있다. 검찰은 조만간 이재명 대표를 소환조사한 뒤, 최근 소환조사했던 백현동 개발특혜 의혹사건까지 묶어서 구속영장을 청구할 것으로 알려졌다.
소환 일정 조율에 일주일가량 걸리는 점, 소환 조사 후 결과를 정리해서 보고·판단하는 데 2~3일 이상 필요한 점을 감안할 때 빨라도 ‘9월 초’에나 영장 청구가 이뤄질 수 있을 것이라는 관측이 힘을 받는 대목이다.
검사장 출신의 변호사는 “처음부터 ‘묶어서 서울중앙지검이나 수원지검 중 한 곳이 영장을 청구하는 안’이 거론됐는데, 그러려면 대검찰청 등 윗선에서 이를 주도해야 하지 않냐”며 “혐의 중에서도 확실하게 입증이 가능한 지점이 무엇인지, 시기는 언제로 정할지 검찰총장 등 지휘부의 판단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검사장 인사와 맞물려 돌아가는 수사
예정돼 있던 검찰 인사도 계속 미뤄졌다. 당초 8월 초에는 인사가 나올 것이라는 이야기가 있었지만, 8월 말이 돼서야 인사가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2022년 6월 윤석열 대통령 취임 후 이뤄진 검찰 인사 후 정기인사이니 2개월가량 늦어진 셈이다.
을지연습(21~24일)이 끝나는 25일 이후 인사가 순차적으로 시행될 가능성이 거론된다. 서울중앙지검장, 수원지검장 등 검사장급을 시작으로 서울중앙지검 차장검사, 수원지검 차장검사 등 사건을 지휘하는 라인도 모두 교체 대상이기 때문에 이재명 대표에 대한 영장은 ‘9월 초중순설’이 사실상 확정되는 셈이다.
앞선 변호사는 “인사가 나서 검사장부터 실무진을 이끄는 부장검사까지 교체가 되려면 2주일가량이 필요하고, 일부를 남겨 놓는다고 해도 새로운 검사가 수사 관련 흐름을 파악하는 데 2주는 필요하다”며 “빨라도 3주 이상이 필요하기 때문에 검찰총장이라면 지금 영장청구 시기를 고민할 때가 아닌 것 같다”고 설명했다. 당초 인사 전 영장 청구를 하는 안이 거론됐지만, 수사팀에게 시간이 더 필요한 만큼 차라리 검찰 인사 후 재정비하는 시간을 갖고 찬찬히 진행할 것이라는 설명이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민주당’을 흔드는 역할을 하기에도 더 좋다.
국민의힘 관계자는 “민주당에도 검찰 출신 의원들이 있으니, 인사 전후로 검찰이 일을 곧바로 하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지 않겠냐”며 “그런 점까지 고려해 8월 말 비회기 일정 중 영장청구를 계속 요구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풀이했다.
검찰 입장에서는 국회나 법원에서 영장이 문턱을 넘지 못하더라도 ‘손해 볼 것이 크게 없을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혹,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면 비판이 모두 민주당을 향하기 때문에 더욱 부담이 없다. 법원에서 실질심사가 이뤄지게 되면 증거가 확실한 혐의만 추려서 영장을 청구해, 행여 영장이 발부되지 않을지라도 영장전담판사로부터 ‘혐의가 어느 정도 입증되었고’라는 문장만 받아내도 성공이라는 설명이다.
앞선 검사장 출신 변호사는 “법원에서 영장이 기각됐다면 이재명 대표의 신분이 확실하고 도주의 우려가 없는 점을 주요하게 본 것일 텐데 검찰 입장에서는 ‘혐의가 어느 정도 입증됐다’는 문구만 받아낼 수 있다면 해야 할 수사를 제대로 했다는 평가를 받는 셈”이라며 “9월 회기 중 영장을 청구하는 것을 고려해 보면 검찰 입장에서는 잃을 것이 없는 시기”라고 평가했다.
서환한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