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간 모금액 ‘제로’ 작년 말에야 겨우 3건…그마저도 홈페이지 비게재에 출처·용처 누락 등 부실 공시
조직위가 설립 때부터 기부금단체로 신청해 허가를 받고도 2년 넘게 단 한 푼의 모금도 하지 않았던 사실이 파악됐다. 대회를 불과 약 7개월 앞두고서야 급히 기부금 등을 모으기 시작했는데 이마저 석연치 않은 부분이 드러난다. 해외 사례와 비교해도 심한 수준으로, 이런 재무구조 탓에 예산 검증이 더욱 까다로워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홈페이지 게재 원칙도 안지켜
폭염 속 형편없는 화장실과 샤워장 및 식수 등 열악한 환경에 세계 스카우트 대원들이 새만금을 떠날지 고민하던 시점, 여러 기업과 민간단체들은 계획에도 없던 물품과 기부금 지원에 팔을 걷었다. 업계에서는 이 시기 약 44곳의 기업들이 총 100억 원 넘는 현물 및 현금 등을 제공했다고 추산한다.
당시 사태로 잼버리조직위의 예산 집행 문제가 도마에 올랐다. 적지 않은 기부 및 후원금을 사전에 받았음에도 행사를 제대로 준비하지 못했다는 지적이었다. 개최지 새만금 일대의 매립비용 등 사회간접자본(SOC) 확충에 주력하다 행사에 꼭 필요한 기초 요소들을 갖추는 데에는 소홀했다는 게 핵심이다.
그러나 일요신문 취재를 종합하면 조직위는 최소 2022년 12월까지 2년 넘도록 기부금을 전혀 모으지 않아 왔다. 스스로 마련한 재원은 일체 없이 줄곧 정부 보조금에만 의존하다 사고가 터지자 부랴부랴 민간 기부나 후원에 손을 뻗었던 셈이다. 조직위는 설립과 동시에 직접 기부금 모금·운용을 요청해 정부 허가까지 받아 놓은 상태였다.
구체적으로 조직위는 2020년 7월 재단법인이자 지정기부금단체로 세워졌다. 지정기부금단체라는 의미는 주무부처인 여성가족부를 거쳐 기획재정부에도 기부금 모금 및 운용에 관한 신청을 마쳐 최종 승인을 받아냈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조직위는 매년 결산 내역을 국세청에 공시하고 자체 홈페이지에도 관련 사항을 공지하도록 규정됐다.
그러나 조직위는 결산실적을 홈페이지에 게재해야 한다는 원칙부터 제대로 지키지 않았다. 2020년, 2021년 자료 공시는 누락했고 2022년부터 올리기 시작했다. 회계 상태를 파악하기 위한 접근이 다소 까다로워진 이유다.
국세청에 공시한 결산 실적을 연도별로 보면 2020년에는 보조금 17억 4800만 원, 기부금 0원, 후원금 0원을 기록했다. 2021년에도 보조금 68억 600만 원이 전부로 기부금과 후원금은 전부 0원이다. 그나마 2022년 보조금 83억 4600만 원에 대원들 참가비 149억 4600만 원이 더해졌고, 12월이 돼서야 기부금 8000만 원과 후원금 2000만 원이 처음 등장했다.
#"용처 안밝히면 세법 위배한 것"
2022년 12월 발생한 기부금과 후원금마저 공시가 규정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조직위는 해당 자금의 출처를 전부 누락했다.
공익법인 운영·관리법에 따르면 기부금 등은 현금이든 현물이든 2000만 원 이상이면 출연자와 금액을 나란히 기재해야 한다. 민간 시민단체도 준수하는 기본사항이다. 예컨대 2020년 공익법인 부실공시 논란을 촉발한 정의기억연대도 매년 이 부분은 지키고 있다. 참여연대와 환경운동연합 등 잘 알려진 시민단체도 당연하다.
누가 기부했는지도 알고 나면 조직위 노력의 성과로 보기 힘들다. 일요신문 취재 결과 기부금 8000만 원 가운데 5000만 원은 한국농어촌공사 돈으로 확인됐다. 새만금사업단을 운영하며 잼버리 부지 매립 등 개발을 주도하고 있는 기관이다. 사실상 관광·레저 용도인 땅의 개발비용을 농지기금으로 충당해 최근 논란에 휩싸인 곳이다.
나머지 기부금 3000만 원은 NH농협은행 자금으로 파악됐다. 새만금 잼버리의 공식 금고은행으로 지정된 곳이다. 그런데 조직위는 NH농협은행에서 받은 기부금을 곧장 이 은행의 이자율 2.90%짜리 예금에 다시 예치하는 등 기이한 형태를 띠기도 했다. 농어촌공사 기부금도 이때 함께 맡겼다.
이 밖에 후원금 2000만 원도 NH농협은행이 출처였다. 단 조직위는 이 후원금의 용처를 누락했다. 사전적으로 후원금은 특정한 목적으로 지원한 돈, 기부금은 목적 없이 건넨 자금으로 정의되는데 회계상으로는 기관이 반영하기 나름이다.
공익법인 전문인 최호윤 회계사(회계법인 더함)는 "기부금 모집 실적이 저조한 부분까지는 이해하더라도, 결산공시를 홈페이지에 공개하지 않는 등 정보 접근성을 떨어트린 지점부터 부실공시에 해당할 수 있다"며 "기부든 후원이든 규모가 2000만 원이 넘으면 출연자를 기재하고, 용처도 밝혀야 하는데 안 했다면 세법을 위배한 조치"라고 지적했다.
이영석 회계사(위드회계법인 공익법인운영지원본부)도 "명목상 기부금이 아닌 후원금으로 분류했더라도 용처를 밝혀야 하는 게 원칙"이라며 "기관 사정에 따라 회비를 후원금으로 처리하기도 하지만 이런 경우가 아니라면 규정상 어떻게 썼는지 밝혀야 한다"고 꼬집었다.
#애초에 모금 의지 없었나
조직위의 이 같은 재무구조는 잼버리 예산 관련 검증의 발목을 잡는 요소로도 꼽힌다. 보조금은 일반적인 감사보고서 형태로 결산할 수 있지만, 기부금 등은 출연자와 월별 지출 내역 및 수혜자 목록까지 일일이 공개해야 한다. 조직위가 엄격한 투명성이 요구되는 돈만 지나치게 적게 운용했다는 의미다.
잼버리가 사실상 파행된 뒤 '울며 겨자 먹기'로 기부에 나선 기업들이 많다는 점을 고려하면, 조직위가 애초부터 기부나 후원금을 조성하려는 노력 대신 혈세에 의지하려 했다고 볼 수도 있다.
해외 잼버리 개최국과 비교하면 이게 얼마나 무성의한 준비인지 선명하게 드러난다. 국내보다 적은 예산으로도 대회를 무난히 치렀다고 평가받는 일본이 대표 사례다. 전라북도가 모범으로 삼았다는 일본은 2015년 야마구치현에서 대회를 치렀다. 총 사업비는 395억 6000만 원으로, 국내 1171억 원의 약 3분의 1 수준이다.
일본은 민간 기부금이 58억 5500만 원으로, 세금인 정부 보조금 48억 7000만 원보다 컸다. 기업이 광고를 대가로 후원한 4억 5000만 원까지 더하면 민간 참여 실적은 더 높아진다.
일본은 개최 3년 전인 2012년부터 진행한 기부·후원 모금 캠페인으로만 22억 9700만 원을 쌓았다. 2500명 넘는 개인이 참여했고, 기업도 2260건의 기부를 했다. 모금 과정에서 잼버리를 홍보하며, 행사 참가자들에는 자국 기업을 알릴 기회로도 삼았다.
또 기부금 마련을 위한 직원들의 출장비 등으로 1억 1225만 원을 쓴 점도 눈에 띈다. 기업 후원을 유치하기 위한 돈으로 2억 7870만 원을 투입했다. 홍보 및 직원 회의비로 3억 9538만 원, 교육훈련비로도 1억 1504억 원을 사용했다.
반면 한국은 2022년 기준 회의비 0원, 교육훈련비 0원, 인건비는 14억 3000만 원을 썼다.
조직위 관계자는 "기부금 유치가 늦었다는 데 대해서는 정해진 입장이 없다"면서도 "기부자를 기재하지 않은 등의 문제는 파악하지 못한 상태로 관련 서식이 있는지 몰랐다"고 설명했다. 또 "올해부터 본격적인 기부와 후원 등이 이뤄졌으므로 다음 결산 때 전부 상세히 공시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출장 가서 '손흥민 경기 관람' 왜?
계획보다 3배 늘어난 총 예산 1171억 어디에 썼는지 쟁점
새만금잼버리는 올해에만 3차례 추가경정예산(추경) 152억 8648만 원을 편성 받아 치러졌다. 애초 491억 원으로 대회를 열겠다더니 돌연 4월과 6월, 7월에 증액을 요청했다. 늘어난 자금은 행사지원 48억 원, 기획·홍보 30억 원, 시설조성 16억 원 등이다.
이에 따라 새만금 잼버리에 투입된 총 예산은 계획보다 약 3배 늘어난 1171억 원으로 집계됐다. 국비 303억 원, 전북도비 409억 원을 비롯한 지방비 419억 원, 참가비 등 자체 수입 399억 원, 옥외광고 50억 원 등이다.
이 가운데 약 74%에 달하는 870억 원이 조직위 운영비 및 사업비로 잡혀 논란이 일었다. 추경이 편성되고도 취약함을 드러낸 화장실과 샤워장, 급수대 등 숙영 편의시설 설치 등 시설비로는 불과 11% 수준인 130억 원만 집행됐기 때문이다.
'해보려니 다르더라'라는 듯 철저한 준비는 못한 채 계획에도 없이 쥔 예산은 결국 운용의 묘를 살리지 못했다. 가뜩이나 열악한 여건에 태풍까지 마주하면서 행사는 결국 돈이 돈을 쓰듯 진행됐다.
정부는 행사 도중 예비비 69억 100만 원을 추가로 수혈했다. 이 돈은 '급식'과 '간식' 확대에 22억 5000만 원으로 가장 많이 쓰였다. 이어 냉동 생수(1일 10만 병), 얼음, 아이스크림 등에도 18억 원을 썼다. 전부 없어서는 안 될 먹을거리였다.
이미 받은 돈들은 대체 어디에 어떻게 썼는지가 앞으로의 쟁점이다. 전북도와 부안군 및 여성가족부 등의 외유성 출장 의혹도 규명 대상으로 떠오르고 있다. 이들이 세계 잼버리를 이유로 떠난 해외 출장은 101건으로 파악된다.
전북도가 57건(56.4%)으로 가장 많고, 이어 부안군 25건(24.8%), 새만금개발청 12건(11.9%), 여성가족부 5건(5%) 등이다. 이들 가운데 부안군 공무원들은 2019년 10월 3일부터 지난 8월 13일까지 영국 런던과 프랑스 파리 등을 출장으로 다녀왔다.
영국은 103년 전인 1920년에 잼버리를 개최했고 프랑스는 잼버리를 개최한 적이 없다. 부안군 공무원들은 버킹엄궁전, 웨스트민스터사원 등 관광지를 주로 둘러봤다. 아멕스스타디움을 찾아 손흥민의 토트넘 원정 경기도 직접 관람했다.
감사원은 여성가족부와 전북도 등을 대상으로 한 고강도 감사를 예고했다. 감사원은 "대회 유치부터 준비 과정, 대회 운영, 폐영까지의 대회 전반에 대해 감사를 진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주현웅 기자 chescol2@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