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가·해외파 점검 이유 장기간 자리 비우는 등 벤투와 다른 행보…“협회가 컨트롤하기 어렵다” 이야기 나와
하지만 대표팀은 현재 구설에 시달리고 있다. 팀을 이끄는 위르겐 클린스만 감독의 근무 행태 때문이다. 클린스만 감독은 휴가, 해외파 점검 등을 이유로 장기간 자리를 비우고 있다. 이에 더해 월드컵 16강 진출 이후 이어받은 팀의 경기력에서도 의문을 품게 만들고 있다.
#대표팀 지상과제, 아시안컵 우승
현재 클린스만 감독의 최대 과제는 내년 1월 중순 막을 올리는 카타르 아시안컵 우승이다. '아시아 호랑이'를 자처하는 대한민국 대표팀의 우승은 국내에서 대회가 열렸던 1960년이 마지막이다. 대회 우승팀을 만나 8강에서 패했던 2019년 대회 정도를 제외하면 대표팀은 대부분 대회 상위권 성적을 기록해왔다. 2015 호주 아시안컵에서는 결승에 올라 연장 접전 끝에 준우승을 했다.
대표팀의 우승 달성 여부에 관심이 쏠리는 이유는 현재 팀의 전력 때문이다. 현재 대표팀 선수 구성은 국제적으로도 가장 많은 주목을 받고 있다. 빅리그 득점왕 경력의 손흥민(토트넘 홋스퍼)을 비롯해 김민재(바이에른 뮌헨), 이강인(파리 생제르맹) 등 빅클럽 소속 선수들을 보유하고 있다. 이 밖에도 주요 자원들이 유럽 무대에서 뛰고 있어 지금 대표팀은 역대 최강 전력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번 아시안컵에 대한 기대가 높은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클린스만 감독도 대회 우승의 중요성을 인지하고 있다. 그는 취임 직후 국내 입국 현장에서 "아시안컵 우승이 목표"라고 강조하며 "팀으로서 우승 트로피를 드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고 말했다.
2024년 1월 12일 카타르에서 개막하는 아시안컵에서 대표팀은 바레인, 요르단, 말레이시아와 조별리그를 치른다. 클린스만 감독은 조추첨 결과에 대해 "쉬운 조는 없다"면서도 "우리에게 좋은 대진"이라고 평가했다. 대회 개막이 가까워 오는 시점, 대표팀은 아시아 국가들과 평가전을 계획하고 있다. 오는 9월 유럽 원정 A매치 기간에는 또 다른 아시아 강국인 사우디아라비아를 만난다. 이어 10월에는 국내에서 베트남과 평가전이 예상된다.
#감독은 '부재중'
이런 상황에서 잦은 외유로 클린스만 감독이 비난의 도마에 오르고 있다. 지난 3월 계약기간을 시작해 취임 6개월을 마무리해가고 있으나 한국 체류 기간은 2개월을 갓 넘긴 수준이다. 그는 두 경기를 국내에서 치렀던 6월 A매치 기간 이후 7월 말, 약 일 주일간 국내에 머물렀을 뿐 장기간 해외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다. 해외 체류는 당분간 이어질 전망이며 유럽 원정으로 치르는 9월 A매치 기간, 클린스만 감독은 현지에서 팀에 합류한다. 클린스만 감독은 해외에 머물면서 복수의 해외 언론과 인터뷰를 진행, 프리미어리그 리버풀의 이적시장 행보, 미국 유망주, 해리 케인(잉글랜드)의 이적, 리오넬 메시(아르헨티나)의 미국 무대 활약 등에 대해 논했다. 대한민국 국가대표팀 감독으로서 행보라기보다 대한민국 축구대표팀과는 상관없는 축구평론가에 가깝다.
외국인 감독을 선임한 대한축구협회는 '감독의 국내 체류'를 주요 조건 중 하나로 내세웠다. 협회는 과거 베르트 반 마르베이크 감독과 협상 당시 반 마르베이크가 한국 거주를 거부하자 협상을 결렬시킨 바 있다. 전임 감독인 파울루 벤투 감독은 경기 고양시에 거주지를 마련하고 파주 국가대표트레이닝센터에 사무실을 차리는 등 재임 기간 동안 주로 국내에서 생활했다. 여자 대표팀의 콜린 벨 감독의 근무 형태도 크게 다르지 않다.
클린스만 감독도 서울에 둥지를 튼 것으로 알려졌지만 집을 비우는 시간이 갈수록 길어지고 있다. 4주간의 휴가 이후 7월 말 귀국한 클린스만 감독은 팀 K리그와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의 이벤트 경기를 관전한 이후 '유럽파 점검'을 빌미로 다시 비행기에 올랐다. 당시 그가 떠난 8월 1일은 조규성을 제외하면 대부분 유럽파 선수들이 본격적인 시즌을 시작하지 않은 시점이었다.
이는 전임 외국인 감독들과 대조를 이룬다. 벤투 감독은 선수 관찰, 전력 구상 등을 위해 K리그 경기장에 자주 모습을 보였다. 특정 구단 경기에 유난히 자주 방문해 자신이 구상하는 축구 색채를 은연중 드러내기도 했다. 비록 결과는 좋지 않았지만 울리 슈틸리케 감독도 매주 국내 현장을 찾았다.
더욱이 대표팀의 결과마저 좋지 않아 팬들의 불만은 더해지고 있다. 클린스만 감독 체제에서 대표팀은 4경기를 치러 승리하지 못했다. 엘살바도르, 페루, 우루과이, 콜롬비아를 차례로 만나 2무 2패를 기록했다. 월드컵 본선 진출 경험조차 많지 않은 엘살바도르를 상대로도 승리하지 못했다.
이상윤 MBC 스포츠플러스 해설위원은 "첫 두 경기에서는 전임 벤투 감독의 색깔을 이어가는 듯했고 두 번째 A매치 기간부터는 그 색깔이 옅어졌다"며 "공격적인 축구를 하겠다고 했고 경기장에서도 그런 의도는 보이지만 준비가 덜 된 듯한 경기 내용을 보였다. 아시안컵 우승 후보다운 경기력은 아니었다. 지난 연말 월드컵 때 경기력에 비해 떨어졌다"고 평가했다.
#축구협회 역할은
부진한 경기력에 해외 장기 체류 논란까지 이어져 클린스만 감독에게 지휘봉을 맡긴 대한축구협회의 책임론이 불거지고 있다. 클린스만 감독은 부임 당시부터 의구심에 휩싸였던 인물이다. 선수로서 세계적인 유명세를 자랑하지만 지도자 생활에서 성공적인 결과를 낸 것은 2014 브라질 월드컵이 마지막이었다.
대한축구협회는 감독 선임 절차와 이유를 설명하는 자리에서 명확한 답을 내놓지 못했다. 이에 '감독 선임 과정이 축구협회 수뇌부에서 일방적으로 이뤄진 것이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됐다. 이후 취임한 클린스만 감독은 정몽규 대한축구협회장과 인연을 여러 차례 밝혔다. 이 때문에 클린스만 감독을 협회가 컨트롤하기 어렵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회장의 입김이 작용한 선임이니만큼 협회 내부에서 감독에게 쓴소리를 할 인물이 없다는 것이다.
논란이 이어지자 클린스만 감독과 축구협회는 미디어 간담회를 열고 진화에 나섰다. 이마저도 감독은 미국 로스앤젤리스 자택에서 온라인으로 이뤄졌다. 클린스만 감독은 "선수들과 소통하고 관찰하는 방법이 예전과 다르다고 생각한다"며 "하반기에는 경기가 한국에서 개최되기 때문에 한국에서 일을 하는 시간이 많아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8월 내내 이어진 해외 일정에서 그는 손흥민의 프리미어리그 개막전을 관전했고 브렌트포트 소속 김지수를 만났다. 유럽축구연맹(UEFA) 자문위원으로도 활동 중인 그는 이달 중 UEFA 이사회와 UEFA 챔피언스리그 조추첨식에도 참석할 계획을 밝혔다.
원격 근무 형태는 어느 정도 예견된 일이었다. 클린스만 감독은 2004~2006년 독일 대표팀을 맡았던 때도 선수 점검 등을 스태프에 맡기고 거주지인 미국에서 재택근무 형식을 이어가 비판을 받았다. 독일 분데스리가 헤르타 베를린 감독(2019~2020년)을 맡았을 당시에는 개인 소셜미디어를 통해 사임을 발표하는 기행을 보이기도 했다.
선임 당시 국내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우려가 이어졌다. 독일 대표팀 시절의 성공은 수석코치를 맡았던 요아힘 뢰브가 큰 역할을 했다는 평가가 많았다. 약 1년 만에 지휘봉을 내려 놓은 바이에른 뮌헨 감독 시절에 대한 평가도 부정적이었다. 기행을 선보였던 베를린 지역에서는 특히 클린스만의 행보에 비판적이었다. 한 베를린 지역 언론은 클린스만의 한국행 소식을 접하고 '한국팬들은 페이스북을 다시 설치해야 한다'고 비아냥댔다.
이 같은 이력에 우려가 곳곳에서 제기됐음에도 대한축구협회는 클린스만 감독에게 대표팀 지휘봉을 맡겼다. 최근 아시안컵 유치 실패, 축구인 사면 움직임으로 인한 임원 대거 사퇴, 음주운전 이력 선수를 아시안게임 대표팀에 발탁하는 등 악수를 거듭해 온 축구협회의 행보에 더욱 눈길이 쏠린다.
김상래 기자 scourge@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