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 울리면 ‘이’ 나오려나
▲ 이헌재 전 부총리(오른쪽)와 지난 14일 밤 현대차 비자금 수수 혐의로 구속되는 변양호 전 국장. 연합뉴스 | ||
김재록 게이트 파문 이후 현대차 비자금 사건 수사를 거치며 검찰은 외환은행 매각을 주도한 ‘이헌재 사단’을 주시해왔지만 이에 대한 어떤 공식언급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검찰청사 주변에선 ‘검찰수사의 궁극적인 타깃은 이헌재 사단이 될 것’이라는 이야기가 끊이지 않았다.
결국 검찰은 지난 6월 16일 이헌재 전 부총리의 계좌추적을 발표했고 곧바로 출국금지 조치를 취하며 칼을 빼들었다. 주저하던 검찰이 일단 행동에 나선 이상 속도를 낼 것으로 관측된다. 검찰이 이헌재 사단에 대한 본격 조사를 천명한 배경에 대해 ‘김재록 씨의 진술이 영향을 미쳤다’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이헌재 사단과의 친분이 두터운 것으로 알려진 김 씨가 검찰조사과정에서 이 전 부총리와 이헌재 사단 핵심멤버들에 대한 여러 단서를 제공했을 가능성이 높게 거론되는 것이다.
김 씨를 통해 이헌재 사단과 외환은행 헐값 매각 사이의 정황을 포착한 검찰이 변양호 전 국장을 먼저 잡아넣은 뒤 이 전 부총리 계좌추적을 통해 이헌재 사단 본격수사 절차를 밟고 있다는 지적이다. 일각에선 이 전 부총리에 대한 검찰소환설까지 나도는 실정이다. 그러나 ‘이헌재 같은 인물이 은행계좌에 문제가 될 소지를 남겼겠느냐’는 시각도 제기된다.
변 전 국장은 이헌재 사단의 외환은행 매각과정에 대한 검찰의 궁금증을 풀어줄 수 있는 ‘최적의’ 인물이다. 이헌재 사단 주요 인맥으로 꼽히는 변 전 국장은 이헌재 경제부총리 시절 외환은행 매각 대상자 선정 당시 재경부 금융정책국장이었다. 이헌재 전 부총리와 그의 동갑내기 친구인 오호수 전 증권업협회장의 실무 측근 역할을 했던 것으로도 알려져 있다.
외환은행 매각과 관련 매각 당시 외환은행장 부임설이 나돌았던 인물은 오호수 씨였다. 그는 이헌재 당시 경제 부총리와 절친했던 금융계 실세로 꼽혔다. 하지만 그는 당시 외환은행장 자리를 거절하고 대신 이강원 전 행장을 추천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강원 씨는 오호수 씨가 LG투자증권 사장 시절 발탁한 인물로 LG투자신탁 대표이사에서 일약 외환은행장에 올랐다. 게다가 오 씨는 김재록 씨의 구속이 임박했을 무렵 김 씨를 대신해 인베스투스글로벌 회장 자리에 취임하기도 했다.
이런 인맥 간의 역학관계 때문이라도 김재록 게이트나 외환은행 매각건에서 이헌재 사단에 대한 수사를 검찰이 하지 않을 수 없는 것.
일각에선 변 전 국장에 대한 구속 수사가 검찰에 독이 될 가능성도 거론된다. 변 전 국장은 체포 이후 김동훈 안건회계법인 대표와의 대질 신문을 줄기차게 요구했다고 한다. 현대차 측의 로비스트로 활동한 김 대표가 변 전 국장에게 현대차 비자금을 건넸다는 것이 검찰의 주된 체포 사유인 탓이다. 변 전 국장의 과거 동료들은 언론 인터뷰를 통해 “금품 수수할 사람이 아니다”며 검찰의 체포가 잘못됐음을 주장하기도 했다.
검찰은 변 전 국장의 현대차 비자금 수수 혐의 입증에 대해 자신감을 표출하고 있다. 그러나 검찰이 변 전 국장을 통해 이헌재 사단과 관련한 진술을 얻어내고자 했다가 뜻한 바를 이루지 못하는 상황에 처한다면 이헌재 사단에 대한 본격적인 조사는 난관에 부닥칠 가능성이 높다.
검찰은 변 전 국장 체포 이후 자신들의 목적이 어디에 있는가를 분명히 드러냈다. 변 전 국장 사무실인 보고펀드에 대한 압수수색 과정에서 외환은행 관련 자료를 대거 취득한 것이다. 변 전 국장 수사가 론스타 사건 담당부서인 대검 중수2과에서 이뤄지는 점도 눈길을 끄는 대목이다. 이에 대해 채동욱 대검 수사기획관은 브리핑을 통해 “론스타 사건과 직접적인 연관은 없지만 개인비리 차원에서 보고펀드 출자 관련 자료 등 15개 박스 분량 자료를 압수했다”고 밝혔다.
검찰의 보고펀드 사무실 압수수색 목적에 대해 보고펀드와 이헌재 사단 그리고 론스타가 맺고 있던 삼각관계 때문일 것이란 관측이 유력하다. 변 전 국장은 재경부 산하 금융정보분석원장으로 있던 지난해 ‘외국계 자본에 대항할 토종 사모펀드를 육성하겠다’며 사의를 표명한 뒤 보고펀드를 설립했다. 변 전 국장과 이헌재 전 부총리의 관계를 감안한 재계 호사가들은 이에 대해 “사실상 ‘이헌재 펀드’ 아니냐”는 시선을 보내왔다.
보고펀드는 설립 몇 개월 만에 여러 은행으로부터 수백억~수천억 원 수준의 투자한도 약정을 맺는 기염을 토했다. 특히 론스타가 대주주인 외환은행이 보고펀드에 400억 원의 투자한도를 설정해준 것이 알려지자 업계 일각에선 외환은행 매각에 대한 ‘대가성’ 논란이 일어나기도 했다. 검찰이 변 전 국장의 입을 통해서 보고펀드-이헌재 사단-론스타의 삼각 연결고리와 투자한도 설정에 대한 물밑관계 형성 여부를 얻어내려 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또 현대차와 관련한 수뢰를 이유로 보고펀드에 대한 압수수색을 통해 김재록 게이트와 외환은행 매각 의혹을 푸는 지렛대를 확보했을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변 전 국장이 처벌 받지 않고 석방될 가능성도 거론된다. 검찰의 주 목표가 변 전 국장의 비자금 수수 혐의 입증이 아닌 이헌재 사단과 론스타의 ‘부적절한’ 관계 규명에 있다는 시각 때문이다. 검찰이 변 전 국장을 통해 원하는 것을 얻을 경우 변 전 국장에 대한 선처도 가능할 것이란 ‘다소 때 이른’ 관측이다.
만약 검찰이 이헌재 사단-론스타 연결고리에 대한 변 전 국장의 진술 확보에 무작정 달려들었다가 실패할 경우 ‘역풍’에 직면할 가능성도 있다. 이런 까닭에 검찰이 변 전 국장의 현대차 비자금 수수 혐의를 구속 사유로 삼고 론스타 건에 대해서는 언급을 자제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변양호 씨 구속으로 시작된 이번 사건이 외환위기 뒤 기업구조조정을 둘러싸고 금융계-관계-정계가 한데 어울린 떡고물 게이트로 번질지 아니면 변양호 구속이 ‘사건의 끝’ 일지 주목받고 있다.
천우진 기자 wjchu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