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친이계 30여명 오찬 두고 설왕설래…윤 대통령 멘토 김병준·김한길 전면 내세울 수도
이명박 전 대통령은 친이계 인사 30여 명과 지난 8월 17일 서울 강남 모처에서 오찬 회동을 가졌다. 이 전 대통령이 친이계 인사들과 대규모로 외부에서 식사 모임을 가진 건 2022년 12월 말 특별사면 이후 처음이다.
이날 회동에는 심재철 이윤성 전 국회부의장을 비롯해 최병국 김영우 권택기 백성운 전 의원 등이 함께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원내에 있는 주호영 조해진 의원도 참석했다. 친이계 좌장 이재오 현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이사장은 개인적 사정으로 불참했다. 이들은 대부분 지난 18대 국회 당시 원내 최대 친이계 의원 모임이었던 ‘함께 내일로’ 멤버들이다. ‘함께 내일로’는 이재오 이사장을 중심으로 한때 회원 수가 70명을 넘겼지만, 지난 2011년 박근혜 비상대책위원회 체제가 들어서면서 해산했다.
이 전 대통령과 친이계 인사들의 모임을 두고 정가에선 해석이 분분하다. 차기 총선을 8개월 앞둔 상황이라는 점에서 단순한 만남은 아닐 것이란 분석에 무게가 실린다. 모임 참석자들은 정치적 목적이 없는 친교의 자리였다고 선을 긋고 있다. 이날 모임에 참석한 ‘함께 내일로’ 소속의 한 정치인은 “정례적으로 모임을 가져왔다. 선거를 앞두고 갑자기 모인 게 아니다. 다만 이번 모임에는 이명박 전 대통령을 특사 이후 처음 모셔 사람들의 관심을 모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반면, 친이계 한 전직 의원은 “정기 모임은 아니다. 이번 회동의 경우 주호영 의원이 주선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귀띔했다. 의도가 있는 모임이라고 해석될 수 있는 대목이다.
회동에서 주된 대화는 정치 현안이 아니었다고 입을 모았다. 앞서의 ‘함께 내일로’ 소속 정치인은 “한 사람이 앞에서 마이크를 들고 하나의 공통 주제로 토의하는 행사가 아니었다. 여러 테이블로 나눠져 식사를 했다. 각 테이블에서 무슨 얘기를 나눴는지 알지 못한다. 특별히 정치적인 이야기 없이 서로 안부를 묻는 정도였다”고 말했다.
또 다른 친이계 전직 의원은 “이명박 전 대통령은 평소에도 ‘윤석열 정부가 잘되도록 힘을 실어주자’는 입장이다. 이날 회동에서도 이런 취지의 대화를 나눴던 것 같다”며 “차기 총선 공천 관련해서는 전혀 없었다. 이날 참석자 중 내년 총선에 출마할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3분의 2 이상은 정계 은퇴한 원로들이다. 총선 출마를 희망하는 이들은 알아서 살 길을 찾아야 한다는 반응이다”라고 강조했다.
이날 오찬 회동에서 이 전 대통령과 참석자들이 어떠한 대화를 나눴는지가 중요한 게 아니라, 모임 그 자체에 상징성이 강하다는 견해가 우세하다. 한 여권 관계자는 “이날 참석한 MB계 인사들은 정치를 수십 년간 해온 정치 고수들이다. 전직 대통령과 그 계파가 30명씩 대규모로 모임을 갖는데, 외부에 알려지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 이는 아무도 없었을 것이다. 본인들의 영향력을 알리기 위해 일부러 모인 것”이라고 주장했다.
친이계는 윤석열 정부 들어 실세그룹으로 급부상했다. 대통령실에 강승규 시민사회수석, 김은혜 홍보수석, 유인촌 문화체육특보가 있고 이동관 방송통신위원장, 김문수 경제사회노동위원장, 이재오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이사장 등이 요직으로 발탁됐다.
앞서 여권 관계자는 “이 전 대통령과 MB계는 정부여당의 주도권을 장악했다고 판단하는 것 같다. 대통령 임기 초인데 차기 총선을 앞두고 전직 대통령이 자기 계파 인사들 모아서 대규모 세 과시를 하는 건 정치권에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공천 받고 싶으면 본인에게 줄 서면 된다는 선언과 다름없다”고 말했다. 이번 회동을 친이계의 실력 행사로 본다는 취지다.
그동안 윤석열 대통령은 주변에 “다음 총선은 어차피 내가 치르는 것 아니냐”라는 뉘앙스의 발언을 여러 차례 한 것으로 전해진다. 총선 승패에 윤석열 정부 국정동력이 달려있는 만큼 본인이 주도적 역할을 하겠다는 의견을 피력한 셈이다. 윤 대통령이 ‘차기 총선은 본인이 치르겠다’ 말했지만 현직 대통령이 직접 나서 여당 총선을 진두지휘할 수는 없다. 이에 따라 윤 대통령의 의중을 반영해 선거를 이끌 대리인이 누가 될지 관심이 뜨겁다.
당초 윤석열 대통령 친정인 검찰 출신들이 차기 총선을 주도하는 것 아니냐는 전망이 많았었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검찰 사단이 대거 공천을 받아 국회로 들어올 것이란 말이 끊이지 않았다. 그 중심에는 윤 대통령 최측근이자, 국무위원으로 존재감을 알리고 있는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거론되고 있다.
하지만 정치 경험이 적은 검찰 라인이 총선을 이끌 가능성은 낮다는 반론이다. 야권의 전략통은 “후보로 출마하는 것과 정당의 총선을 지휘하는 것은 차원이 다르다. 바로 정치에 뛰어드는 검사들은 정무적 판단이 부족할 수밖에 없다. 이들이 국민의힘 총선을 전면에서 이끄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선을 그었다. 이에 검찰 출신이면서 정치경험이 풍부하고 윤석열 정부 국무위원까지 역임한 권영세 전 통일부 장관,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 등이 총선에서 주도적 역할을 할 후보군으로 떠오르고 있다.
‘윤 대통령 멘토 원로’ 김한길 국민통합위원장과 김병준 전 비대위원장이 전면에 나설 가능성도 있다. 김한길 위원장은 대선 과정에서 윤석열 후보 직속의 ‘새시대준비위원회’ 인수위 내 국민통합위에서도 위원장을 역임한 데 이어, 대통령 직속 국민통합위 초대 위원장으로 임명됐다. 김병준 전 비대위원장은 지난 대선 선대위 상임선거대책위원장, 대통령직인수위 지역균형발전특별위원장으로 활동했다.
두 사람 모두 민주당 계열 정부에서 활동해 친이계와는 거리가 있다. 이에 윤 대통령 중심의 정계개편 구심점, 국민의힘 공천관리위원장 등 다양한 활용 방안이 제기되고 있다.
하지만 윤 대통령 주변을 친이계가 둘러싸고 있고 이 전 대통령이 세 과시에 나서는 상황에서 윤 대통령이 차기 총선에서 강한 그립을 쥘 수 있을지 의구심이 제기된다. 친이계로 분류되는 한 현직 의원은 “지금 여권에서 큰 선거 경험을 치러 본 사람이 누가 있느냐. 검찰 출신, 친윤계 모두 총선을 승리로 이끌긴 힘들다”면서 “윤 대통령도 그런 부분을 잘 알기에 친이계를 중용하고 있는 것”이라고 했다. 이 전 대통령과 친이계의 대규모 오찬 회동에 대해 대통령실은 어떠한 반응도 내놓지 않았다.
민웅기 기자 minwg08@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