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류 ‘수도권 위기론’ 부정하며 승리 호언 vs 비주류는 ‘부지깽이라도 동원’ 호소…결국은 ‘공천 힘겨루기’ 분석
#주류 ‘승선 대기자 많다’
친윤 핵심 이철규 국민의힘 사무총장은 8월 16일 의원총회에서 “타고 있는 배를 침몰하게 하는 승객은 승선 못 한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소식에 당이 발칵 뒤집혔다. 내년 총선 후보 공천 실무 작업을 총괄하는 이 총장의 입에서 이런 말이 나오자 당 안팎에서는 발언의 의미를 해석하느라 뒤숭숭한 모습이다.
여러 의원들이 전한 바에 따르면 이 총장은 이날 오후 국회 비공개 의원총회에서 “방송이나 밖에 나가서 당을 비난하거나 동료 의원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발언을 주의해야 한다”는 취지로 말했다. 이런 식으로 말하고 다니면 배에서 내려야 한다는 의미로 받아들였다는 게 많은 의원들의 전언이다.
의원총회 사회자가 ‘당무감사 관련 (이철규) 사무총장이 할 말이 있다’는 소개를 한 뒤 나온 발언이어서 의원들은 바짝 긴장했다고 한다. 당 사무총장은 내년 총선에서 후보 선정을 위한 공천관리위원회 당연직 위원으로 참여한다. 더군다나 이 사무총장은 친윤 실세 인사다. 막강한 권한을 가진 이 총장 입에서 이런 말이 나왔으니 의원들은 심각하게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이 총장은 의총에서 일부 의원이 방송과 SNS 등에서 수도권 위기론을 거론하며 당 지도부 책임을 공개적으로 주장하는 게 부적절하다면서 이들을 겨냥해 배에서 내리라는 뉘앙스의 말도 했다고 한다.
이 총장은 자신의 말이 꼬리에 꼬리를 물면서 파장이 확산하자 일단 진화에 나섰다. 그는 8월 21일 국회에서 기자들을 만나 ‘배를 침몰하게 하는 승객은 함께 승선 못 한다’고 발언한 것으로 알려진 데 대해 “의총에서 한 발언은 일부분 왜곡된 게 있다”며 “‘승선 못 한다’가 아니라 ‘같이 (배를) 타고 나가는 사람들이 그러면 안 된다’ 이런 얘기”라고 해명했다.
이어 이 총장은 “지극히 당연한 얘기고 우리 당원들의 뜻을 전달한 것”이라며 “사무총장이 당연히 당의 단합과 당원들이 지켜줘야 할 최소한 도리를 의총에서 의원들께 당부드린 것”이라고 부연했다.
이 총장이 불을 끄려고 나섰지만 당내에서는 하선 명단이 이미 작성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의심으로 이어지는 중이다. 유승민 전 의원·이준석 전 대표 계열을 비롯해 친윤과 코드가 맞지 않는 비주류들에 대한 비토 움직임이 곳곳에서 포착되고 있기 때문이다. 일부 의원들은 총선이 임박해옴에 따라 친윤 핵심 사무총장이 행동대장 역할을 맡아 직접 나섰다는 반응도 나왔다.
당 지도부가 수도권 위기론을 적극적으로 부인하면서 ‘수도권을 비롯해 내년 총선 승리가 가능하다’는 인식을 갖고 있는 것이 하선 전략과 연결된다는 해석이 나온다. 여러 논란에 휩싸인 더불어민주당을 바라보는 국민들의 시각이 좋지 않은 실정에서 최근 여러 외교 성과 등 국정 드라이브가 잘 가동되고 있는 상황이라 분위기가 좋다는 자평이 여당 내에선 팽배하다.
국민의힘 지도부는 당 싱크탱크 여의도연구원 자체 조사, 최근 공개된 여론조사 결과 등을 근거로 들면서 ‘서울 박빙 우세, 경기·인천 박빙 열세’로 진단한다. 수도권 위기론의 실체가 없고 충분히 ‘해볼 만한 선거’라는 것이다.
여기에 민주당이 세력을 확장했던 부산·울산·경남이 확실한 여당 지지세로 돌아왔다는 분석도 하고 있다. 충청·강원권 여당 강세도 예상돼 내년 총선에서 뛸 새 인물의 노크가 텃밭 영남뿐 아니라 수도권 등 전국에서 이어지고 있다는 말도 흘러나온다. 내부 총질을 하는 구성원들을 하선시켜도 새롭게 승선할 대기 인원 줄이 길게 늘어서있다는 자신감이다.
#비주류, 위기론은 현실
총선 배에 올라탈 선원이 절대 부족하다는 비주류 세력 선봉에는 인천에 지역구를 둔 옛 친박계 출신 윤상현 의원이 섰다. 그는 8월 9일 자신의 SNS에 글을 올려 “내년 4·10 22대 총선 때 서울 경기 인천 등 수도권에서 여당이 힘들 것이라는 이른바 ‘수도권 위기론’은 가짜뉴스가 아닌 현실”이라고 경고음을 날린 뒤 “당이 존재감이 없다. 많은 당원들이 대통령과 장관만 보이고 당과 당대표는 안 보인다고 걱정하고 있다”면서 당 지도부를 직격했다.
그는 “이재명 대표 체제가 붕괴하면 우리 당 지도 체제에 대한 변화의 요구가 거세질 것”이라며 자칫 여야 모두 비대위 체제가 들어설 가능성이 있다는 폭탄 발언까지 내놨다. 그는 또 “이기는 총선을 위해 승부수를 띄워야 한다”면서 “민주당과 다른 진짜 혁신위를 출범시키자”고 제안하기도 했다.
당 지도부를 정면으로 겨눈 윤 의원의 발언에 대해 이철규 사무총장이 의총에서 공개적으로 발끈하는 결과까지 낳았지만 윤 의원은 물러서지 않았다. 그는 8월 21일 YTN 라디오 ‘뉴스킹 박지훈입니다’에 나가 또다시 수도권 위기론을 얘기하면서 이기기 위해선 부지깽이라도 동원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윤 의원은 친윤 주류와 날 선 대립을 이어온 이준석 전 대표, 천아용인(천하람 허은아 김용태 이기인) 등을 껴안아야 한다고 촉구했다. 윤 의원은 “누구는 배제하고 누구는 안 되고 이런 얘기가 나와선 안 되고 이념적으로 너무 우리 지지층을 결집시키러 가는 것도 안 좋다”며 “집권당으로서 민생, 중도, 2030에 전략을 짜고 정책을 내고 비전을 제시하는 게 훨씬 더 중요하다”고 했다.
이준석 전 대표 계열과 가까운 하태경 의원 지원사격도 나왔다. 그는 8월 18일 이철규 국민의힘 사무총장이 의원총회에서 “배를 침몰시키려는 승객은 함께 승선하지 못한다”고 발언한 데 대해 “배를 수리하자는 쓴소리와 배를 침몰시키는 막말을 구분 못하는 정당은 미래가 없다”고 질타했다. 이어 하 의원은 “민주당이 국민에게 외면당한 것도 당내 쓴소리를 전부 틀어막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 사무총장 발언이 당 구성원들의 쓴소리를 막으려는 목적이라면 크게 잘못됐다는 지적이었다.
비주류는 국민의힘 텃밭인 영남과 강원권 출신이 주류를 형성하고 있는 지도부가 “수도권 민심을 모른다”면서 강한 공세를 펴고 있다. 가장 중요한 선거 전략인 확장성 부분에서 비주류 세력이 대외적 명분을 갖추고 있는 만큼 이를 고리로 지도부를 압박하면서 지분을 충분히 확보하려는 목적이 있는 것으로 정치권은 풀이하고 있다.
#내 편만 태워라
최근 벌어지고 있는 승선 논란의 본질은 공천권 다툼이라는 데에 정치권에서는 전혀 이의를 달지 않는다. 주류와 비주류 모두 공천 과정에서 주도권을 쥐고 내 편을 챙겨보려는 사전 정지작업이라는 것이다.
유승민 전 의원도 8월 23일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나가 “수도권 위기론은 오래전부터 나온 이야기”라며 “최근 당내의 갑론을박은 수도권 위기론으로 포장이 됐지만 사실은 공천 갈등, 공천 싸움이 시작된 것”이라고 했다. “새로운 문제도 아니고 호들갑들 떨 문제도 아닌데 공천 싸움이 개시된 걸로 봐야 한다”고 유 전 의원은 평가했다.
당내에서 비교적 객관적이고 중립적 분석을 내놓는 의원들은 주류에 대해서는 “없는데 있는 척한다”고 꼬집고, 비주류에 대해서는 “있는데 없는 척한다”고 지적한다. 양측 모두 과대포장된 모습을 보이고 있을 뿐 솔직함이 부족하다는 게 이들의 설명이다.
이들의 주장에 따르면 주류의 경우 인재풀 부족을 인정하지 않는다. 윤 대통령이 당의 역량보다는 개인기에 힘입어 대선 승리를 하면서 기본적으로 용산 대통령실과 당의 관계가 용산 쪽으로 기울어질 수밖에 없다. 결국 당보다 인재풀이 더 좁은 용산이 총선에서도 주도권을 쥘 가능성이 높은데 이렇게 되면 여당 배에 올라탈 재능 있는 선원이 절대 부족해진다는 것이다.
이명박 정부 때 주요 인물이었던 이동관 전 청와대 홍보수석이 방통위원장 후보로 들어오는 등 MB계가 세력을 형성하고, 기재부 출신이 주요 부처를 장악하는 것만 봐도 현재 용산의 새 인물 물색 반경이 좁다는 비판이 나온다.
실제 한덕수 국무총리, 김대기 대통령실 비서실장,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 김주현 금융위원장, 최상목 경제수석 등이 기재부 출신이다. 또 기재부 출신 방문규 국무조정실장이 최근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후보로 지명 받았으며 방기선 기재부 1차관도 국무조정실장에 임명됐다.
주류·비주류가 본격적으로 겨루기에 들어간 가운데 당내에서는 친이·친박이 다퉜던 과거 악몽까지 겹쳐지고 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8월 17일 옛 친이계 인사 30여 명과 오찬 회동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앞서 박근혜 전 대통령은 8월 15일 공개행보에 나서 비상한 관심을 모았다. 여권에선 두 전직 대통령의 행보를 예사롭게 보지 않는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
최경철 매일신문 편집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