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금력 갖춘 하파크로이트 적격 심사 탈락 변수…LX 그나마 가능성 있지만 현금 보유 충분치 않아
#외국계 하파크로이트, 결국 배제되나
HMM의 예비 입찰에 참여한 기업은 LX그룹, 하림-JKL 파트너스 컨소시엄, 동원산업, 그리고 독일의 하파크로이트다. 인수대상은 KDB산업은행이 보유한 주식 1억 119만 9297주와 해양진흥공사 주식 9759만 859주, 영구전환사채(CB) 등에서 향후 주식으로 전환할 2억 주를 합쳐 총 3억 9879만 156주다. 경영권 프리미엄을 고려한 매각 대금은 약 6조 원 안팎으로 예상된다.
예비 입찰에 참여한 기업 중에서 가장 큰 관심을 받은 곳은 하파크로이트다. 예비 입찰자 중 인수금융을 따로 일으키지 않고도 인수대금을 지불할 수 있는 유일한 기업이기 때문이다. 글로벌 5위 컨테이너선사인 하파크로이트는 2005년에는 캐나다의 CP선박을, 2021년엔 CP Ship을, 2014년엔 칠레의 CSAV를, 2016년엔 아랍의 UASC를 인수했다. 2021년과 2022년엔 각각 아프리카 항로에 강점을 지닌 나일 더치와 도이체아프리카니엔도 인수했다. 하파크로이트가 아시아의 HMM을 인수할 경우 글로벌 3위 컨테이너선사로 몸집을 키울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글로벌 커버리지 전략도 완성할 수 있게 되는 셈이다. MSC나 머스크 등과도 대등한 입장에서 경쟁할 수 있게 된다.
다만 국내 해운산업계는 하파크로이트의 인수전 참여에 강경하게 반발하고 있다. 한국해양산업총연합회와 부산항발전협의회는 지난 8월 23일 HMM의 해외 매각을 반대하는 성명서를 발표했다. 황용식 세종대 경영학과 교수는 "외국 기업은 배제될 분위기다. 예전에 한진해운의 위상과 인지도가 상당했는데 이를 놓치면서 한국이 해상에서 경쟁력을 잃었고 해운업 종사자들이 굉장히 안타까워하고 있다"며 "HMM은 국내에서 사수하려 할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8월 29일에는 투자은행(IB) 업계에서 하파크로이트가 적격심사에서 탈락하면서 적격인수후보(숏리스트)에서 배제됐다는 소식이 알려지면서 파장이 일기도 했다. 하파크로이트의 인수를 지지하던 소액주주들은 즉각 반발했다. 특히 하파크로이트 측이 100억 달러(약 13조 원)에 달하는 보유현금을 앞세워 최고가를 제시했던 것으로 알려지면서 산은과 해양진흥공사에 향한 비판의 목소리가 나왔다. 홍이표 소액주주연대 대표는 “영구채 주식전환권리를 포기하는 게 배임이라면 인수 최고가를 써낸 하파크로이트를 탈락시키는 것도 배임이다”라며 “현재 펀딩을 받아 변호사를 선임했으며 9월 초에 배임 혐의로 강석훈 산은 대표를 고소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김태황 명지대 국제통상학과 교수는 “하파크로이트는 우리의 기술력과 서비스를 약탈하려는 게 아니라 아시아 지역에서 거점을 늘려 경쟁력을 높이려는 목적으로 들어오는 경우인데 국내 산업을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장벽을 치는 것은 옳지 않다”며 “우리 기업들도 유럽으로 가서 M&A를 하는 경우가 적지 않고, 글로벌 스탠더드에도 어긋난다”고 꼬집었다.
하파크로이트가 적격 심사에서 탈락했다는 소식에 대해 산은 관계자는 “아직 확정된 내용은 없다”며 “숏리스트 포함 여부를 전체 공개하지는 않고 있으며 본입찰 참여가 확정된 개별 기업 앞으로만 통지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LX그룹, 시너지 효과 기대되지만…
현재 인수 후보로 나선 국내 기업들의 현금 보유력은 인수가에 한참 미치지 못한다. 예비 입찰에 참여한 국내 기업 중에는 올해 상반기 기준 현금 및 현금성 자산은 가장 규모가 큰 LX그룹이 2조 4000억 원, 하림그룹이 1조 5000억 원, 동원그룹이 6000억 원 수준으로 추산된다.
자금력뿐만 아니라 인수 효과 등을 고려했을 때, 국내 기업 중에는 LX그룹이 한 발 앞서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LX그룹 산하의 LX판토스가 DB쉥커나 퀴네엔드나겔 등 유수의 글로벌 기업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복합 운송 사업자이기 때문이다. LX판토스는 전세계 360여 개의 글로벌 거점을 두고 해운, 도로, 철도, 항공 등 국제물류의 전 과정을 아우르는 원스톱 글로벌 종합물류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지난해 해상에서 처리한 물동량만 152만 TEU로 전 세계 해운항공 물동량 기준 6위를 차지한다. HMM을 인수할 경우 해상 운송 분야에서 포트폴리오를 확대해 글로벌 경쟁력을 제고할 수 있게 된다.
반면 JKL파트너스와 컨소시엄을 형성한 하림그룹이나, 동원그룹의 경우 HMM과 시너지 효과를 일으킬 만한 요소가 상대적으로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하림그룹의 경우 해운선사인 팬오션을 보유하고 있다. 하지만 그룹사 규모를 고려했을 때, 시너지 효과를 위한 HMM 인수는 무리수라는 의견도 있다. 동원그룹 역시 해운업에 대한 경험이 없고 물류 산업을 영위한 지도 5년 남짓밖에 되지 않았기 때문에 HMM 인수 이후의 구체적인 청사진이 나오지 않는 상황이다.
하파크로이트가 배제될 경우 HMM의 매각 성사 여부가 불투명해진다는 지적도 나온다. 구교훈 배화여대 국제무역물류학과 겸임교수는 “LX그룹이 인수할 경우 긍정적인 시너지가 예상되기는 하지만 국내 인수 후보인 세 기업 규모가 훨씬 작기 때문에 산은 입장에서도 이대로 본입찰을 강행하기는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매각이 지연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김정민 기자 hurrymi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