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권 인사로 천막 북적북적, 여권 인사는 찾지 않아…국회 안팎 여야 지지자 간 고성 오가기도
#전운 감도는 천막
8월 31일 이 대표는 국회에서 열린 취임 1주년 기자회견에서 무기한 단식농성에 들어간다고 선언했다. 그는 “(윤석열 정부의) 민주주의 파괴에 맞서 국민과 함께 민주주의를 지켜내겠다”며 “마지막 수단으로 오늘부터 무기한 단식을 시작한다”고 밝혔다. 기자회견을 마친 이 대표는 이날 낮 12시 30분부터 단식농성을 시작했다.
이 대표가 온종일 천막에만 머무르는 것은 아니다. 9월 4일 단식 현장에서 만난 민주당 관계자에 따르면 이 대표는 오전 10시에 단식장으로 나온 다음 오후 10시까지 머무른다. 나머지 12시간은 국회 본청 당 대표실에서 휴식을 취한다. 국회 일정도 모두 소화할 예정이다.
실제로 9월 4일 오전 9시 이 대표는 천막에서 최고위원회의를 열었다. 이 자리에서 이 대표는 작은 탁상 위에 놓인 투명한 유리잔에 담긴 물을 마셨다. 티스푼으로 소금도 떠서 먹었다. 최소한의 영양분을 보충하기 위해서다.
이 대표는 9월 3일까지는 보온병에 든 액체를 마셨다. 이를 두고 여권 일각에선 ‘웰빙 단식’이라는 비아냥거림이 나왔다. 민주당 또 다른 관계자에 따르면 이러한 비판이 보온병을 유리잔으로 바꾸는 데 일정 부분 영향을 미쳤다고 했다.
이 대표는 9월 4일 2시 30분 국회 본청에서 열린 ‘후쿠시마 원전오염수 해양투기 철회 국제공동회의’에 참석했다. 오후 7시 국회 본청 앞 광장에서 열린 ‘제2차 윤석열 정권 폭정 저지 민주주의 회복 촛불 문화제’에도 모습을 비췄다.
일정이 없을 때엔 천막 안에서 사람들을 만났다. 당내 의원과 야권 인사들이 이 대표를 만나기 위해 농성장을 찾았다. 9월 4일 김두관 의원을 비롯해 박홍근 전 원내대표, 정춘숙 원내정책수석부대표, 진성준 전 원내수석부대표 등이 천막을 찾았다. 오전 11시경에는 천정배 전 의원도 단식 현장을 찾았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9월 1일 이 대표의 건강을 염려하는 전화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9월 4일 오후 3시 30분 이해찬 전 대표가 천막을 방문했다. 지팡이를 짚은 이 전 대표는 이해식 의원 안내를 받아 천막으로 들어섰다. 이 전 대표는 “헌법이 국회와 정부와 법원의 균형을 맞추는 기본질서인데 그 자체가 무너지고 있다”며 “이대로 가면 파시즘으로 가는 것”이라고 했다. 이재명 대표는 “이미 그 단계가 된 것 같다”고 답했다.
단식 6일째인 9월 5일 오후 김진표 국회의장이 단식 현장을 찾았다. 김 의장은 “국회가 순리대로 못 가 이 대표님이 여기에 앉아 있는 것 같다”며 “날이 덥고 습한데, 습하면 더 견디기 힘들지 않으냐”며 이 대표의 건강을 염려했다. 그러면서 김 의장은 “사전에 (대통령 거부권 행사가) 분명한 사안에 대해 내년 4월 총선을 앞두고 반복해서 단독 처리를 계속하는 것이 과연 나라를 위해서나 민주당을 위해서 옳은 건가”라고 지적했다. 이 대표는 답변하지 않고 고개를 살짝 숙였다.
지지자들의 발길도 끊이지 않았다. 9월 4일 30℃를 넘나드는 더위에도 이재명 대표 얼굴이 그려진 푸른색 반소매 티셔츠를 입은 지지자들이 긴 줄을 이루고 있었다. 국회 의사당 곳곳에서 이 대표 지지자들이 모여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이들은 이구동성으로 윤석열 정부와 국민의힘을 비난했다. 한 중년 여성은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촛불집회에도 나간 적 없는 사람인데 이태원 참사를 보며 윤석열 정부에 분노를 느꼈다”며 “화가 나서 힘을 보태려고 왔다”고 말했다.
경상남도 창녕군에서 올라온 60대 여성은 이태원 참사를 계기로 윤 정부에 대해 강한 반감을 품게 됐다고 했다. 그는 “(이태원 참사를 보며) 이건 아니다 싶은 마음이 들었다. 우리 아이들의 미래 먹을거리 문제인 핵 오염수 방류 이런 것들을 계속 보면서 난생처음 화가 나서 이렇게 나왔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국회 안팎에서 이 대표 지지자들과 국민의힘 지지자 간 신경전이 벌어지기도 했다. 9월 4일 오후 4시경 국회 본관 1층에서 나오던 국민의힘 지지자들과 인근 그늘에 모여 있던 이 대표 지지자 사이에 고성이 오갔다. 신경전은 짧게 끝났고, 몸싸움은 벌어지지 않았다. 현장에서 만난 민주당 관계자는 “당직자들과 경호처 인력들이 곳곳에 배치돼 있어 (이 대표의) 안전에는 문제가 없고, (지지자들 사이의) 충돌 문제도 잘 통제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단식 현장에서 약 700m 떨어진 지하철 9호선 국회의사당역 2번 출구 인근에서도 소동이 발생했다. 7명의 극우 성향 유튜버들은 2번 출구 인근에 확성기 9개가 달린 트럭을 주차했다. 확성기에서는 이 대표를 모욕하는 내용의 방송이 나왔다. 방송 소리는 단식 현장에서도 들을 수 있을 정도로 컸다. 같은 내용을 직접 외치기도 했다. 이들은 트럭 뒤에 붉은색 천막 두 동을 설치해 오후 내내 소음을 일으켰다.
트럭에서 약 10m 떨어진 곳에서 이 대표 지지자로 보이는 중년 남성이 확성기를 손에 들고 연신 윤 대통령 모욕 발언을 했다. 이 발언을 들은 극우 유튜버들이 남성과 실랑이를 벌이면서 한때 전운이 감돌았다. 주변에 배치돼 있던 경찰이 곧바로 제지했다.
#민주당 비명계 단식에 비판 목소리
여권은 이 대표 단식에 대해 명분도 실리도 없다고 비판했다. 8월 31일 김종인 전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은 CBS라디오 ‘박재홍의 한판승부’에서 “옛날에는 정보의 흐름이 그렇게 넉넉하지 않아 잘 모르는 국민에게 알리기 위해서 극한투쟁을 해야 했지만, 지금은 국민이 너무 잘 안다. 구차하게 단식이라는 방식으로 새롭게 의미를 부여한다? 그래 봐야 의미가 없다”고 꼬집었다.
9월 1일 윤재옥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원내대책회의에서 “정말 이해할 수 없는 단식”이라며 윤 원내대표는 “이 대표의 단식은 사법처리 회피용 단식, 체포동의안 처리를 둘러싼 내분 차단용 단식, 당권 사수를 위한 단식으로밖에 볼 수 없다”고 비판했다.
비명(비이재명)계 중진 이상민 의원은 9월 5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이제는 단식을 멈춰 달라”며 “명분도 실리도 별로 없다. 공감도 얻기 어렵다. 여론은 매우 냉소적”이라고 지적했다. 이 의원은 “윤석열 대통령의 실정과 폭정이 이루 말할 수 없는 지경이지만, 그렇다고 윤 대통령의 폭주와 독단을 제어하는 데 단식이 별로 유효적절하지도 않은 것 같다"고 했다.
비명계 조응천 의원은 9월 5일 불교방송(BBS) ‘전영신의 아침저널’에서 단식 목적이 모호하다고 비판했다. 조 의원은 “지금까지 YS(김영삼)나 DJ(김대중) 등 사람들이 단식할 때 보면 목적이 간명하고 단순했다. 이번에는 두루뭉술한 게 사실”이라며 “어느 것 하나 용산에서 ‘알았다. 내가 받을게’라고 할 만한 것들이 없다”고 말했다.
#정부·여당 대화 나서라는 목소리도
정부와 국민의힘이 이 대표와 대화에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황교안 전 자유한국당(국민의힘 전신) 대표가 단식 농성을 할 때도 문재인 청와대와 민주당 인사들이 단식 현장을 찾은 전례가 있다. 단식 5일 차에는 이낙연 당시 국무총리가, 6일 차에는 이해찬 당시 민주당 대표가 황 대표를 찾았다.
단식 현장에서 만난 70대 남성은 이 대표를 만나지 않는 정부와 국민의힘을 비판했다. 그는 “아무리 그래도 당 대표가 단식하는데 (정부와 국민의힘 사람들이) 아무도 오지 않는다”며 “이건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이 대표를) 응원하려고 나왔다”고 했다.
9월 5일 조응천 의원은 대정부질문에서 한덕수 총리에게 “오늘 대정부질문 마치시고 이 앞인데 나가시는 길에 야당 대표 만나서 손 한번 잡아주실 의향 없느냐”고 질의했다. 한 총리는 “한번 검토 해보겠다”고 답했다. 이날 한 총리를 비롯한 정부 관계자들은 천막을 찾지 않았다.
이강원 기자 2000wo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