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코 핵심 사업부와 광역본부 정리 가능성…김영섭 대표 “올해 대규모 구조조정은 없을 것”
#축소된 CR부서는 확장 가능성
김영섭 KT 대표이사가 취임 3일 만인 9월 1일 칼을 빼들었다. 구현모 전 대표 체제의 실세들이 퇴진 수순을 밟고 있다. 박종욱 경영기획부문장(사장), 강국현 커스터머부문장(사장), 신현옥 경영지원부문장(부사장) 등 일감 몰아주기와 쪼개기 후원 등에 연루된 고위 경영진의 보직을 해제하는 인사를 단행했다. 인사뿐만 아니라 조직 개편도 이어질 방침이다.
디지코 KT의 핵심 사업부 중 하나로 꼽히던 ‘그룹 트랜스포메이션 부문’은 정리될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이 나온다. 그룹 트랜스포메이션 부문은 2021년 구현모 전 대표가 신설한 후 측근으로 평가받는 윤경림 전 현대차 부사장이 부문장(사장)을 맡아 올해 3월까지 이끌었다. 해당 부문은 전략 투자, 그룹 제휴 등 계열사 인수합병 등을 주도한 것으로 알려졌다. 윤경림 전 사장은 스파크앤어소시에이츠의 지분 고가 매입에 관여했다는 의혹과 함께 현재 배임 혐의를 받고 있다. 이권 카르텔 형성에 이용당했다는 안팎의 비판에 직면하면서 향후 위상이 격하되거나 공중분해될 가능성이 유력하다는 분석이 나온다.
또 다른 핵심 사업부인 AI/DX(인공지능/디지털전환) 부문 역시 신수정 사장이 이끌고 있는 엔터프라이즈 부문 산하로 재편입될 것으로 보인다. AI/DX 부문의 사업 내용과 엔터프라이즈 부문의 사업 내용이 상당 부분 겹치는 까닭이다. 구현모 전 대표 취임 이후 생긴 ‘디지코’와 ‘텔레코’의 카테고리 분류도 사라질 것으로 전망된다.
KT 내부 사정을 잘 아는 한 관계자는 “예컨대 수익성 높은 ‘기업 메시징’ 사업은 최근 주식 리딩방 모집 때문에 달아올라서 전체 시장이 조 단위는 될 것으로 추정된다. 그게 디지코 매출로 분류됐다”며 “구분도 애매한 사업들을 굳이 ‘디지코’로 분류해 성과를 포장하고 조직만 비대화하는 결과를 낳았다. 이런 사례들이 적잖은 까닭에 이번에 쇄신할 것이라는 얘기가 파다하다”고 말했다.
광역본부 시스템 역시 폐지가 유력하다는 관측이 나온다. 구현모 전 대표가 2020년 영업과 네트워크로 나뉘어 있던 지역 본부를 6개 광역본부(강북·강원, 강남·서부, 부산·경남, 대구·경북, 전남·전북, 충남·충북)로 합친 후 네트워크 투자가 소홀해지고 ‘허수경영’이 발생했다는 지적이 나오기 때문이다. KT는 올해 실적을 부풀리기 위해 직원 1명 명의로 수십 개씩 휴대폰을 개통하는 등 허수경영을 일삼은 점이 적발돼 책임자 등을 대기발령 조치한 바 있다. 허수경영은 구현모 전 대표의 광역본부 체제에서 급격히 늘었다는 지적이다.
광역본부장 6명을 모두 전무급으로 배치하고 휘하 임원도 20명대로 늘리면서 인력을 과도하게 확충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앞서의 KT 관계자는 “본사 내에 이미 있는 조직들을 광역본부 안에서 또 만들어서 인력과 기능이 겹치고 조직이 비대해졌다. 내부에서 광역본부 시스템은 완전히 실패했다는 시각이 대세고 김영섭 대표도 이를 인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구현모 전 대표 시기에 축소된 CR부서는 다시금 확장할 것으로 보인다. CR부서는 정부나 국회를 상대로 소통하고 기업에 리스크가 될 수 있는 정보를 취합하는 대관 업무에 중점에 두는 부서다. 구현모 전 대표는 ‘쪼개기 후원’ 논란 이후 정치권과 선을 그으며 120여 명에 달하던 CR부서의 규모를 대폭 축소한 바 있다.
통신업계 한 관계자는 “구현모 전 대표 때 용산의 의중을 읽어내지 못하고 줄기차게 연임을 시도한 점이나, KT가 시류를 못 읽고 요금제 담합 의혹을 받게 된 점 모두 다 대관업무 축소 때문으로 읽힌다”며 “향후 통신 현안과 신사업을 놓고 정치권과 긴밀하게 소통하려면 대관 부서 확장은 필수”라고 말했다.
#김 대표, 밀리의서재 IPO 추진 우려
구현모 전 대표는 취임 당시 KT가 전통적인 통신 기업에서 벗어나 디지털 플랫폼 기업으로 변모해야 한다고 강조하며 ‘디지코 KT’를 목표로 AI, 빅데이터, 클라우드 등 신사업을 추진하고 이를 바탕으로 계열사들을 재편했다. 그간 KT가 외형 성장에 치중했으니 이제는 내실을 따져 옥석을 가려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수익성 관점에서는 김영섭 대표가 후보 시절 업무보고를 받으며 글로벌 데이터 기업 앱실론 인수와 밀리의서재 기업공개(IPO·상장)의 적절성 등에 회의적인 입장을 내놓은 것으로 알려졌다. 구현모 전 대표 체제 하에서 KT는 순자산의 13배에 달하는 웃돈을 얹어주고 앱실론을 인수한 후 ‘앱실론성장TF’까지 발족하며 앱실론을 뒷받침해왔지만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영섭 대표는 앱실론의 사업성에 의문을 표하며 별도 보고를 주문하고 밀리의서재 IPO 추진을 놓고서도 이례적으로 관련 업무보고를 세 차례 요구하며 우려를 표한 것으로 전해졌다. 구현모 전 대표 취임 후 KT가 250억 원가량을 투자한 바 있는 뱅크샐러드도 수익을 내지 못해 올해 구조조정을 단행했고 500억 원 투자한 현대로보틱스는 KT가 현대 로봇 판매를 중단하며 협업이 유명무실해진 상황이다.
통신업계에서는 내실 없는 지분이나 부실 계열사들을 정리하고 실탄을 마련해둬야 할 시점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6G 상용화를 위한 대규모 투자를 앞두고 있고 IPTV 영역에서도 AI 전환에 박차를 가하려면 광범위한 인프라 투자가 이뤄져야 하기 때문이다.
김용희 숭실대 경영학과 교수는 “앞으로 수익성 관점에서 이슈가 생길 것 같다. 인수합병한 여러 회사들과 분사한 회사들이 핵심사업과 연관성이 있는지 시너지를 검토하고 선제적으로 대응해야 한다”며 “경쟁사나 정부의 정책 기조에 의해 투자 압력이 다양하게 발생할 수 있기 때문에 빠르게 준비하지 않으면 시간에 쫓겨 잘못된 선택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신민수 한양대 경영학부 교수는 “네트워크 품질이 워낙 떨어지고 있어 통신 네트워크 인프라 투자에 박차를 가할 필요가 있고 지난해 과도한 통신분쟁조정 등으로 인해 저해된 소비자 신뢰를 어떻게 회복할 것인지도 김영섭 대표의 중요한 과제”라고 지적했다. KT는 2018년 아현 화재와 2021~2022년 이어진 유무선 인터넷망 두절 사태 등으로 브랜드 이미지에 타격을 입은 데다 지난해 526건의 통신분쟁조정 신청 중 가장 많은 비중인 237건을 차지하기도 했다.
이와 관련, KT 김영섭 대표는 9월 7일 세계이동통신사업자연합회(GSMA) ‘모바일360 아시아태평양(M360 APAC)’ 콘퍼런스에서 “KT는 ‘디지털혁신 파트너’라는 새로운 지향점을 설정하고 클라우드, AI고객센터, 보안, 메타버스, 교통과 모빌리티를 주요 사업영역으로 선정해 통신사업자(Telco)가 중심이 되는 디지털 영역을 목표로 확장을 본격화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진 취임 후 첫 기자간담회에서는 “연말 정기인사에서 여러 문제를 걷어내고 KT인들의 마음을 합쳐 함께 출발하는 시발점으로 잘 출발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올해 대규모 구조조정은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김정민 기자 hurrymi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