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짜 근로자 만들어 특별고용창출장려금 챙겨…기업 측에 세무법인 알선해 세무사법도 위반
이들은 기업들에 접근해 '가짜 근로자'를 만든 다음 서류를 조작하는 등의 수법으로 고용노동부가 지원하는 '특별고용창출장려금'을 수억 원이나 받아 챙겼다. 2년 넘게 수도권부터 지방까지 전국의 노동부 산하 고용센터에서 수백 차례 범행을 저질렀는데 덜미가 잡힌 뒤에도 반성의 태도는 보이지 않았다. 전문직으로 구성된 사기 일당의 행각을 들여다봤다.
#공인노무사 코드의 효과
2020년 8월 수도권의 어느 노무법인 사무실. 공인노무사 A 씨와 5명의 사무장들이 모였다. 단 사무장들의 본업은 보험설계사. 하지만 굳이 노무법인 사무장까지 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저마다 노무사와 수익의 최대 50%까지 나눠 갖기로 하는 등 계약 내용이 좋았기 때문이다.
노무사는 왜 이토록 많은 사무장들과 절반가량의 수익을 분배했을까. 그는 해선 안 될 행위로 거액을 벌어 왔는데 일손이 부족한 상황이었다. 웬만한 보상으로는 범행에 가담할 인원을 유지하는 데에 한계가 있었다.
이들의 작전은 그해 11월 본격화했다. 노무사가 끌어 온 경기 부천 소재 어느 기업에 사무장1이 방문했다. 이곳에서 중부지방고용노동청 부천고용센터 사이트에 접속한다. 다음으로는 해당 기업의 가짜 직원을 만들어 고용창출장려금을 신청한다. 공인노무사 코드가 필요하지만 문제없었다. A 씨가 자신의 코드를 쓰라고 줬기 때문이다.
이렇게 5000만 원의 장려금을 타냈다. 해당 기업은 애초 지원 자격조차 없던 장려금을 받은 대가로 사무장1에 수수료 20%인 1000만 원을 쥐어줬다. 사무장1은 이 돈을 노무사와 7 대 3 혹은 6 대 4, 경우에 따라서는 5 대 5로 절반씩 나눠 가졌다. 사무장1은 2021년 12월까지 총 74회에 걸쳐 약 2억 4300만 원의 장려금을 받았다.
'공인노무사 코드'의 효과는 컸다. 다른 사무장들도 유사한 수법으로 수억 원의 장려금을 타갔다. 사무장2는 총 105회에 걸쳐 2억 6200만 원, 사무장3은 46회에 걸쳐 1억 3300만 원, 사무장4는 27회에 걸쳐 9860만 원, 사무장5는 154회에 걸쳐 5억 8870만 원 정도의 장려금을 부정수급했다.
#노무사 '난 몰랐다' 항변…판사 "반성 안 해" 일침
이 같은 수법은 노무사 A 씨가 축적해온 노하우가 전수되며 이뤄졌다. 그는 2019년 5월부터 알선책을 두고 여러 사업주들의 각종 지원금 신청 대행 업무를 맡아왔다. 알선책에게 본인 공인노무사 코드 사용을 허락하는 등의 조건으로 매달 100만 원에서 350만 원 사이의 수수료를 챙겨 왔다.
그 후에도 여러 곳에 공인노무사 코드를 대여해주며 부정수급을 이어왔다. 그러다가 2022년 봄에는 총 9회에 걸쳐 1000만 원 상당을 또 편취하려고 시도했으나, 각 고용센터에서 돌연 지급을 거절하는 바람에 미수에 그치기도 했다. 이런 행위가 경기 부천은 물론 김포와 인천, 부산 등 전국에서 벌어졌다.
또한 이 노무사와 사무장 겸 보험설계사들은 범행 과정에서 '세무사법 위반' 사실도 적발됐다. 장려금 부정수급에 끌어들인 기업들에게 "세금을 환급받을 수 있다"며 한 세무법인을 소개하고 대가를 받은 것이다. 현행 세무사법은 '세무대리의 소개·알선 금지'를 명시하고 있다.
이는 노무사와 한 세무사의 부당거래가 계기가 됐다. 둘은 각자 운영하는 법인 사이의 업무협력을 맺었다. 장려금 부정수급에 가담한 사무장들이 기업을 유치해 오면, 세무법인은 환급의 구체적인 신고 및 접수 등을 맡고 노무법인은 관련 절차에 관한 지원업무를 수행해 고객 수수료를 나눠 갖는 계약이었다.
세무사도 직접 관여하며 각 사무장들을 앉혀두고 세금환급에 관한 절차 등을 설명한 뒤 각자가 관리하는 업체들을 본인 법인에 데려오도록 했다. 이에 따라 노무사와 사무장들은 2023년 2월까지 총 143회에 달하는 소개·알선으로 세무법인한테서 2억 6600만 원가량의 수수료를 수령했다.
8월 11일 열린 재판에서 노무사 측은 "모든 사무장들은 합법적인 특별고용촉진장려금 등을 신청 및 대행할 목적으로 고용했다"면서 "장려금 등을 부정 수급하거나 미수에 그치는 등 불법적인 행위에 대해서는 전혀 관여한 바가 없는 데다, 관련 사실 자체를 알지 못했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수원지방법원 안양지원 형사2단독 유혜주 판사는 "취업 취약계층의 고용 촉진을 위해 마련된 장려금 편취, 세무사에 세무대리를 소개·알선하고 대가를 받은 일련의 행위들이 범행기간, 횟수, 규모 등에 견줘 죄질이 매우 좋지 않다"며 "그럼에도 피고인 변명으로 일관한 채 반성하는 태도를 보이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이에 재판부는 노무사에 사기 및 고용보험법 위반 등 혐의로 징역 3년을 선고했다. 각 사무장들에게는 징역 1년 6개월에서 2년의 처분을 명하되 3년의 집행유예, 각각 160시간의 사회봉사를 명령했다. 범행의 전진기지로 활용된 노무법인에도 벌금 5000만 원을 명했다.
한국공인노무사회 관계자는 "항소심에서도 실형이 선고되면 노무사회 차원의 징계를 검토할 계획"이라며 "이번 사건으로 노무사들은 다른 직군과 동업해선 안 된다는 사실을 재확인했고, 공범인 보험설계사들도 노무법인 사무장으로 둔갑할 경우 엄벌이 내려질 수 있다는 점을 깨달았기를 바란다"고 꼬집었다.
노무사·세무사·행정사 직역갈등 불씨 곳곳에
이번 사건은 이면에 직역 갈등이 자리하고 있어 눈길을 끈다. 예컨대 세무대리를 알선·소개하다 적용된 세무사법 위반 등의 혐의는 2년 전이라면 인정되지 않았을 수도 있었다. 세무대리 소개·알선을 금지하는 세무사법 개정안은 2021년 11월에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기 때문이다.
해당 개정안은 10여 년 전부터 이어져 온 세무사들의 숙원이었다. 보험설계사들이 기업을 대상으로 경정청구를 통한 세금환급 영업 업무를 활발히 해온 데 대해 한국세무사회 차원의 문제 제기를 반복해왔다. 결국 법이 개정되자 세무사회는 그해 12월부터 보험설계사 등 불법 알선 영업자들을 대거 고발한다고 경고하기도 했다.
그런 한편 세무사들은 노무사들의 공세에 대응해야 할 상황에 놓였다. 세무사들이 기업의 임금대장 및 임금명세서 작성 등의 업무를 하는 게 부적절하다는 지적이 있어서다. 이에 세무사회 측도 고용노동부에 적정성을 문의했는데 9월 5일 노동부는 "임금대장 등은 근로기준법 관련 지식이 요구돼 세무사 사무로 보기 어렵다"고 답변했다.
박사영 한국공인노무사회 부회장은 "처방은 의사, 제조는 약사에 맡겨야 하듯 기업 경영에서 임금은 노무사, 세금은 세무사로 '노세 분업'이 분명히 돼야 한다"며 "노동부도 임금대장 등을 노무사 업무로 판단한 만큼, 현장에서 불상사가 일어나지 않도록 노무사와 세무사 모두가 노력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다만 노무사 측은 행정사와의 갈등에서 뜻밖의 전개를 마주해 골치를 썩고 있다. 노무사회 측이 어느 단체교섭에서 사측 대리인으로 행정사가 나선 사례를 확인해 사업주와 행정사를 나란히 고발했지만, 경찰 단계에서 불송치 결정이 나와서다.(관련 기사 어린이집 ‘괴롭힘’ 사건이 노무사 vs 행정사 갈등으로 번진 까닭)
경찰은 단체교섭은 노무사의 직무가 맞지만, 노동관계조정법 29조 등에서 '제3자가 단체교섭에 대한 대리업무를 할 수 있다'는 취지로 명시돼 있어 위법성이 조각된다는 판단을 내렸다고 알려졌다. 노무사회 측은 민사 등 소송 전 채비에 돌입하고 검찰에는 보완수사를 요구할 계획이다.
반면 대한행정사회는 내분으로 출범 2년여 만에 존폐 위기에 놓였다. 10여 명의 행정사가 행정안전부를 상대로 제기한 '대한행정사회 설립인가처분 취소 청구'를 법원이 5월 18일 받아들인 것. 2021년 6월 설립 당시 정관제정 등에서 절차상 문제가 있었다고 전해졌다. 행안부 불복으로 현재 항소심이 진행 중이다.
주현웅 기자 chescol2@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