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인천시, 서울시 협의 없는 발표에 일제히 유감…‘K패스’와 정책 중복·대중교통 적자 심화 우려도
#6만 5000원에 대중교통 무제한 이용
9월 11일 서울시는 2024년 1월부터 5월까지 기후동행카드를 시범판매하고, 이후 보완을 거쳐 2024년 하반기부터 본격 시행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기후동행카드 이용자는 3000원에 실물카드를 구매하거나 스마트폰 앱을 설치한 다음 월 6만 5000원을 충전하면 서울 시내에 있는 지하철, 시내·마을버스, 공공자전거(따릉이) 등을 무제한 이용할 수 있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이날 시청 기자회견실에서 “따릉이와 리버버스(수상버스)까지 염두에 둔, 모든 대중교통을 아우르는 통합체계를 만들겠다”고 밝혔다.
서울시는 독일 사례를 참고했다고 설명했다. 독일은 2022년 6월에서 8월까지 9유로(약 1만 2000원)에 대중교통을 무제한으로 이용할 수 있는 ‘9유로 티켓’을 시범운영했다. 티켓은 약 5000만 장이 팔렸다. 대중교통 이용은 약 25% 증가했고, 이산화탄소는 180만 톤(t)이 감축되는 등의 효과를 낸 것으로 파악됐다. 독일은 재정부담이 크다는 평가가 나오자 2023년 5월 49유로(7만 원)로 요금을 올린 도이칠란트 티켓을 내놓았다. 서울시는 도이칠란트 티켓처럼 기후동행카드를 이용해 대중교통 비용 부담을 줄이고, 기후위기에 대응하겠다는 방침이다.
서울시는 기후동행카드를 이용하면 한 달에 3000원에서 3만 원 정도의 대중교통비를 절약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서울시가 제시한 예시에 따르면 지하철 9호선을 타고 여의도에서 고속버스터미널로 통근하는 직장인은 지하철을 월 평균 44회 이용하게 된다. 여기에 9호선 기본요금 1550원을 곱하면 6만 8200원이 나온다. 한 달에 약 3200원을 아끼는 셈이다.
다만, 서울 시내가 아닌 지역에서 승차하면 기후동행카드 혜택을 받을 수 없다. 예를 들어 지하철 7호선의 경우, 경기도에 속한 철산역에서 승차해 서울 가산디지털단지역에 내린다면 혜택 대상이 아니다. 반대로 가산디지털단지에서 승차해서 철산역에 내리면 혜택을 받을 수 있다. 민영철도인 신분당선(기본요금 1750원)도 제외된다.
경기·인천 등 다른 지역 버스 또한 혜택 대상이 아니다. 광역버스는 서울 지역이라도 사용이 제한된다. 따릉이는 1시간 이용권을 무제한으로 이용할 수 있다.
윤종장 서울시 교통실장은 9월 11일 기자설명회에서 “광역버스 요금이 경기는 2800원, 서울은 3000원으로 6만 5000원짜리 기후동행카드를 광역버스에 적용하게 되면 10번만 타도 금액이 꽉 찬다”며 “독일의 ‘도이칠란트 티켓’(일명 ‘49유로 티켓’)도 광역자치단체 간 운송수단에는 적용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서울시 ‘일방통행’에 당혹
서울시는 약 8개월 동안 정책을 준비했지만, 보안을 위해 다른 지방자치단체에 알리지 않았다고 밝혔다. 이후 9월 7일 정책 시행을 알린 것으로 전해졌다. 오 시장은 “(경기도와 인천시 실무자들의) 반응이 부정적이지는 않았다고 보고받았다”고 말했다.
오 시장 설명과 달리 경기도와 인천시는 일제히 유감을 표명했다. 수도권 교통은 통합환승할인제도(환승제도)로 묶여있는데, 서울시가 협의 없이 일방적으로 정책을 통보했다는 이유에서다. 2009년 10월 시행된 환승제도는 수도권 전역에 일괄적으로 적용되는 대중교통 환승할인 제도다.
9월 11일 경기도는 보도자료를 내고 “2600만 수도권 교통 문제를 사전협의 없이 서울시 단독으로 일방 추진하는 것에 대해 분명하게 유감을 표명한다”고 밝혔다. 같은 날 인천광역시도 보도자료를 내고 서울시의 정책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일방적인 정책 시행 발표에 대해서는 우려한다고 했다.
경기도 한 관계자는 실무진 반응이 부정적이지 않았다는 오 시장의 말은 사실과 다르다고 했다. 이 관계자는 9월 7일 서울에서 국장급 회의가 열렸고, 이 자리에서 서울시 관계자가 다음 주에 기후동행카드 정책 발표가 있을 예정이라고 언급했다고 전했다. 그는 “당시 경기도 측은 통합환승제로 같이 묶여있는데 서울시 혼자 하기보다는 협의를 한 다음 공동 발표를 하자고 제안했었다”며 “(회의 당시) 시범 사업을 하는 것은 기정사실이고, 수도권 참여는 나중에 의논하자는 것이 서울시의 입장이었다”고 설명했다.
인천시도 서울시로부터 구체적인 내용을 통보받지 못했다고 밝혔다. 인천시 관계자는 “서울시에서 아직 정책공유가 정확하게 안 된 상태”라며 “(정책 내용이) 들어오면 한꺼번에 검토해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서울시 대중교통 업계는 당황스러워하는 모습이다. 코레일은 서울시와 교통카드 정책을 합의한 적 없다고 말했다. 코레일 관계자는 “협의는 했지만, 합의는 안 된 상황이다. 구체적인 협의 내용은 밝히기 어렵다”며 “(코레일도) 경기도나 인천시와 비슷한 분위기”라고 설명했다.
시내버스와 마을버스 조합은 관련 정책을 두고 협의를 한 적이 없다고 했다. 서울특별시버스운송조합 관계자는 “서울시로부터 정책 자료 자료를 받거나 관련 논의를 한 것은 없는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서울특별시 마을버스 운송조합 관계자도 “우리도 보도자료와 뉴스를 보고 알았다”며 “서울시 단독으로 할 수 있는 일은 아닌 것 같다. 경기도하고 협의해야 할 것 같고, 비용 처리 부분도 보완이 돼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조삼모사 정책 될 수도
일각에서는 기후동행카드 정책이 실효성이 떨어지고 형평성에도 어긋난다고 지적한다. 먼저 국토부에서 추진하고 있는 ‘K패스’와 기능이 중복돼 예산 낭비와 이용자 혼란이 발생할 수 있다. K패스는 지하철·버스 등 대중교통을 한 달에 21차례 이상 이용할 경우 1년에 최대 21만 6000원을 환급해주는 제도다. 2024년 7월 시행된다. 비용은 중앙정부와 지자체가 각각 절반씩 부담한다. K패스와 기후동행카드가 함께 시행되면 서울시는 두 정책의 비용을 따로 부담해야 하는 상황에 놓일 수도 있다.
국토부 관계자는 “기후동행카드 비용이 6만 5000원인 것도 발표 당일 알았다”며 “K패스라는 정부 정책이 있는데, 사전에 조율하거나 논의했다면 좋았을 것 같다”고 했다. 이어 이 관계자는 “어쨌든 정부 측은 서울시가 K패스 사업에 참여하는 게 더 타당하다고 생각하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차상우 전국공공운수노조 민주버스본부 기획국장은 서울시 정책은 형평성에 어긋난다고 지적했다. 차 기획국장은 “경기도나 인천에서 서울로 출퇴근하는 사람들이 많다. 교통비 부담은 그들이 더 많이 부담한다”며 “서울시가 2023년 초 버스 요금을 인상했을 때는 서울로 들어오는 모든 버스에 대해서 요금 인상을 했다”고 지적했다. 서울시는 8월 12일 광역버스를 비롯한 버스 요금을 300~700원 인상했다. 이 요금은 모든 이용자에게 적용됐다.
기후동행카드로 인해 버스와 지하철 등의 적자 문제가 더욱 심각해질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앞서 서울시는 2022년 서울 지하철·버스 적자가 약 1조 9000억 원에 이를 수 있다고 밝혔다. 구체적인 예산은 나오지 않았지만, 기후동행카드에 서울시 예산을 투입하면 대중교통 적자 문제가 커질 수 있다. 차 기획국장은 “기후동행카드 도입에서 발생하는 비용에 어차피 시민의 세금을 투입해야 한다. 조삼모사가 될 여지가 있다”고 비판했다.
9월 11일 서울시는 설명자료에서 수도권 지자체 국장급 실무협의체를 구성해서 2024년 1월 시범사업 전까지 수도권이 공동으로 시행하는 방안을 적극 고려하겠다고 밝혔다. 코레일에 대해서는 “여러 차례 실무협의를 통해 서울시가 운송 손실을 보전하는 조건으로 코레일이 참여하는 것으로 논의해 왔다”고 해명했다.
적자 문제에 대해서는 “적지 않은 예산이지만 저탄소 교통복지 도시로 도약하기 위한 마중물의 역할을 할 것이기 때문에 충분한 가치가 있다고 본다”며 “불가피하게 요금을 인상했지만, 인상분 일부를 활용해서 혁신적인 대중교통서비스를 만들어 시민들께 돌려드리고자 한다”고 밝혔다. 서울시 관계자는 “(서울시 입장은) 설명 자료 내용으로 (갈음하면) 될 것 같다”고 말했다.
이강원 기자 2000wo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