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포구민들 “일방행정·소통부족” 전면 백지화 요구…서울시 “생활폐기물 감당 불가, 미룰 수 없다”
#갈등의 시작
2021년 7월 생활폐기물을 소각 없이 매립하는 행위를 금지하는 내용의 폐기물관리법 시행규칙이 공포됐다. 이에 따라 수도권은 2026년부터 생활폐기물을 그대로 매립할 수 없다. 수도권 이외 지역은 2030년부터 직매립이 금지된다.
마포구 소각장 갈등의 불씨는 여기서부터 비롯됐다. 시행규칙 공포 후 서울시는 소각장 부지를 선정하기 위한 절차를 밟기 시작했다. 서울은 하루 평균 1000톤(t) 규모 생활폐기물을 직매립하고 있다. 이는 하루 1000t 규모의 생활폐기물을 소각할 수 있는 소각장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2020년 12월 주민 대표, 전문가, 서울시 의원, 서울시 공무원 등 10명으로 구성된 ‘입지선정위원회’가 꾸려졌고, 위원회는 5곳의 후보지를 평가했다. 2022년 8월 31일 서울시는 위원회의 결정을 수용해 마포 상암동 월드컵 공원 인근에 위치한 기존 소각장 부지 안에 신규 소각장을 건설하기로 결정했다. 기존 소각장은 2035년까지 철거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상암동 부지는 인근 300m 이내에 주거시설이 없다. 폐기물시설촉진법은 소각장의 간접 영향권 범위를 300m로 규정한다. 부지가 폐기물 처리시설로 지정돼 있어 용도변경이 따로 필요하지 않은 것도 선정 이유였다.
마포구는 즉각 반발했다. 국민의힘 소속 박강수 마포구청장은 같은 날 “서울시가 어떠한 사전협의도 없이 일방적으로 절차를 진행해 결과를 발표한 것에 대해 매우 심각한 우려와 강력한 유감을 표한다”며 “당적을 떠나 모든 마포구민과 합심하여 입지 선정 결정 철회를 위한 적극 대응에 나설 것”이라고 밝혔다.
마포구 주민들은 단체를 결성했다. 2022년 9월 마포구 소각장 백지화 투쟁본부(백투본)가 설립됐다. 약 1000명의 주민이 마포구 소각장 앞에서 촛불집회를 열었다. 서울시청 앞에서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기존의 마포구 시민단체들도 가세했다. 주민들의 강한 반대 여론을 의식한 마포구 정치인들도 모여들었다. 이들은 마포 소각장 추가건설 반대 다자협의체를 만들었고, 마포구청 앞에 천막을 설치했다.
#서울시-마포구 협의회 파행
소각장 선정 소식을 들은 마포구청 관계자와 주민들은 날벼락을 맞은 기분이 들었다고 입을 모았다. 마포구청 관계자는 “서울시가 독단적으로 결정을 했다. 마포구는 대책이 없는 상황에서 받은 일이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고 전했다. 성은경 백투본 위원장은 “그전까지는 소각장 건립에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마포구가 유력하다는 소식도 못 들었다. 애초에 (마포구에는) 750t 규모의 소각장이 있다”고 했다.
백투본 등 마포구 시민단체들은 서울시의 일방적인 행보를 문제 삼으며 소각장 계획 백지화를 요구했다. 이들은 △부지 선정 과정 마포구 주민 의사 미반영 △서울시 소통 의지 부족 △행정절차 강행 등을 문제로 봤다.
성은경 위원장은 “입지선정위원회 구성 자체가 잘못됐다. 후보지 주민들의 의사를 반영하라고 주민대표를 위원회에 넣는 것인데, 위원회의 주민대표는 마포구 주민이 아니었다”고 했다. 성 위원장은 부지 선정 과정이 ‘폐기물처리시설 설치촉진 및 주변지역지원 등에 관한 법률 시행령’에 위반됐을 소지가 있다고 주장했다. 시행령에 따르면 입지선정위원회에는 부지 주변에 거주하는 주민대표가 참여하도록 규정돼 있다.
소각장 건립 예정지에서 환경오염 문제도 불거졌다. 5월 국립환경과학원은 부지에서 채취한 토양을 분석한 결과 565mg의 불소가 검출됐다고 밝혔다. 이는 토양오염 우려기준인 400mg을 넘는 수치다. 7월 27일 마포구는 직접 오염도를 측정하겠다고 밝혔다. 박 구청장은 “오염 물질이 나오면 토양정밀조사와 토양정화조치 등 시정명령을 즉시 요구할 것”이라고 밝혔다. 조사는 8월 초 태풍 카눈이 한반도를 관통하면서 연기됐다.
2023년 5월 10일 서울시는 마포 주민들이 참여하는 ‘주민소통협의회’를 만들었다. 백투본에 따르면 당시 서울시는 주민 동의 없는 사업은 진행할 수 없으며, 주민이 결사반대하면 서울시도 소각장을 지을 수 없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협의회는 파행을 거듭했다. 5월 10일과 23일, 6월 1일 3차례 회의가 열렸지만, 어떤 안건을 논의할지조차 정하지 못하고 끝났다. 6월 15일 백투본을 비롯한 주민단체는 △회의 진행 기간 행정절차 중단 △관련 자료 전면 공개 △서울시장 면담 등이 이뤄지기 전까지 협의회 참여를 거부하기로 했다.
서울시는 소각장 건설을 미룰 수 없다는 입장이다. 2026년까지 하루 1000t의 생활폐기물을 감당할 수 있는 체계를 마련해야 하기 때문이다. 절차에 대해서도 큰 문제가 없다고 설명했다. 서울시 관계자는 “입지선정위원회를 만들 당시에는 마포구가 선정된 것이 아니었다. 그래서 마포구 주민을 위원으로 선정할 수는 없었다”고 해명했다.
#주민들, 마포구 대응 불만
다자협의체 본부 천막 맞은편에는 주황색 컨테이너가 있다. 마포구에서 운영하는 재활용중간처리장 ‘소각제로가게’다. 마포구는 주민들이 소각제로가게에 와서 분리수거하면 18개 품목별로 1kg당 10~600원을 지급한다. 주민들이 분리수거에 적극 동참하도록 유도해 쓰레기 배출량을 줄이겠다는 정책이다. 쓰레기 배출량이 감소하면 소각장을 지을 이유도 자연스럽게 없어진다는 게 마포구 입장이다.
마포구 대응에 대해 일부 주민들은 필요하지만, 미온적이라고 아쉬워한다. 일부 주민들은 박 구청장이 더 적극적으로 나서기를 원한다. 주민들과 더 많이 소통하고 서울시와 더 강하게 싸워달라는 것이다.
5월 18일에는 마포구가 성은경 위원장에게 서면으로 행정대집행 계고서를 전달하기도 했다. 계고서에는 5월 30일까지 천막을 철수하지 않으면 대집행을 시행하고, 그 비용을 성 위원장에게 청구하겠다는 내용이 담겼다. 당시 마포구청은 천막 철거와 소각장 대응은 별개라고 해명했다. 장마철 안전사고 우려가 있어 천막 철거를 요청했고, 다른 단체의 광장 사용 신청이 들어와서 천막을 방치하기 어려운 상황이라는 것이다. 계고장에 명시된 시일이 지났지만, 마포구는 천막을 철거하지 않았다.
그러자 주민들 사이에서는 박 구청장과 마포구가 사태 해결 의지가 없는 것 같다는 목소리가 고개를 들었다. 백투본에 참여하고 있는 한 주민은 “(박 구청장 입장이) 백지화가 아니라는 것에 대한 의구심이 분명히 있다”며 “많은 집회를 했고 면담을 요청했어도 (면담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8월 22일 박 구청장과 백투본 등 시민단체 관계자들은 마포구청에서 약 30분 동안 면담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대해 마포구 관계자는 “소각장을 단 1t도 늘릴 수 없다는 것이 박 구청장의 일관된 입장”이라며 “오세훈 서울시장과 박 구청장이 관계가 좋았다는 것을 주민들이 알고 있다 보니 오해를 한 것 같다. 그러한 오해가 있기 때문에 박 구청장은 더 강하게 반대하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이 관계자는 “주민들과의 대화 채널은 계속 열어놓고 있고, 얼마 전에도 주민들과 함께 소각장을 방문하기도 했다. 실무진과도 계속 소통하고 있다”고 보탰다.
마포구가 시행하고 있는 소각제로가게 정책에 대해서는 긍정적인 평가도 나온다. 김지선 마포공동행동 대표는 대형 소각장 건설보다 쓰레기 감축을 통한 체질개선이 근본적인 쓰레기 처리 대책이라고 했다. 그는 소각제로가게가 서울시 곳곳에 설치되면 쓰레기 배출을 감축할 수 있다고 본다. 서울 시민 한 명이 하루 생활폐기물 100g을 줄이기만 해도 1000t 규모의 소각장을 짓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김 대표는 “소각장 건설보다 쓰레기를 줄이는 제로웨이스트 정책이 세계적 추세”라고 했다.
#소각장, ‘님비’ 아닌 국가적 문제
오세훈 시장과 서울시는 원안대로 마포구에 소각장을 건설하는 대신, 소각장을 지하화하고 지상 공간은 관광 명소로 만들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그러나 서울시와 마포구 주민 사이의 간극은 쉽게 좁혀지지 않을 전망이다. 주민들은 소각장 건립 백지화를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8월 3일 백투본 등 주민단체는 서울시가 개최한 회의에 불참했다. 백투본 등의 요구사항이 받아들여지지 않았다는 이유에서였다. 이들은 8월 17일 서울시청 앞에서 집회를 열고 요구사항 이행을 촉구했다.
쓰레기 소각장 같은 기피 시설 건설에 대해 주민들이 반발할 때마다 ‘님비현상’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님비현상은 자신의 거주지역에 혐오시설이 들어오는 것을 무조건 반대하는 지역이기주의 현상을 뜻한다. 이에 대해 성은경 위원장은 “소각장이 이미 있는데 또 들어온다. 소각장이 지어지면 서울시 쓰레기의 절반 이상이 마포구로 들어오는 것이다. 마포구가 다른 지역의 쓰레기를 책임지는 것”이라며 “님비현상이라는 지적은 절대 인정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김지선 대표는 “소각장 이슈가 마포구와 서울시만의 문제가 아니”라고 지적했다. 김 대표의 말처럼 다른 지역도 폐기물 관리법 시행령 개정에 따라 추가 소각장 건립을 추진하고 있지만 주민 반발로 홍역을 치르고 있다. 인천시는 주민 반발로 소각장 부지 선정을 무기한 중단했다. 경기도도 이와 유사한 문제를 겪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김 대표는 “마포구와 서울시가 어떻게 하는지 전국에서 보고 있다”고 했다. 마포구 소각장 갈등의 결말이 전국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취지다. 김 대표는 “전국적으로 소각장 건설 대신 쓰레기 감축에 집중하자는 단체들이 생기고 있다. 이들과 네트워크를 만드는 것이 목표”라고 덧붙였다.
이강원 기자 2000wo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