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에게서 들은 얘기 중 묘한 것들이 있었다. 북한은 군사작전보다 남한 대통령선거에 개입하면 훨씬 쉽게 남한을 컨트롤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사이버 세계에서 가짜뉴스를 퍼뜨려 이간공작으로 대한민국을 분열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또 북측이 휴전선에서 부대를 이동시키고 포를 몇 방만 쏴도 남한의 정국이 얼어붙고 중도 세력이 보수 쪽으로 돌아서는 정치적 상황을 말하고 있었다.
그는 남한의 중견 정치인 몇 명의 이름을 거론하면서 정말 나쁜 놈이라고 했다. 남한의 대통령선거 무렵 중국 베이징에서 남한 정치인과 북의 공작책임자가 만난 적이 있었다고 했다. 그는 경호원의 자격으로 그 비밀 회담을 옆에서 직접 지켜봤다고 했다. 그는 남한의 정치인이 휴전선 지역에서 전쟁 분위기를 만들어 달라고 요청했다는 것이다. 대통령선거전에서 이기기 위해 북에 도발을 요청하는 정치인은 역적이 아니냐고 했다.
그는 일제강점기 북한지역에서 검찰 서기를 했던 이회창 대통령 후보 아버지에 대한 자료를 보기도 했다고 말해주었다. 이회창 후보는 아들이 돈을 주고 병역을 면제 받았다는 가짜뉴스가 퍼지는 바람에 지지율이 11.8%포인트(p)가 떨어졌다. 누군가의 정치공작에 의해 실패의 쓴 잔을 마셨다.
세월이 흐른 후 그 사건을 조사했던 검사를 만난 적이 있다. 검찰은 조사를 시작하자마자 바로 가짜뉴스라는 걸 확인했다고 했다. 수사 결과를 발표하려고 할 때 발표를 지연시키라고 위에서 압력이 내려왔다고 했다. 검사의 그 고백을 들으면서 그 정치공작은 핵심권력과 연결이 되어 있음을 느꼈다.
권력투쟁이란 옛날부터 형제나 부모까지도 죽이는 그런 피냄새가 나는 것인가 보다. 나는 정보기관에 근무한 적이 있다. 그곳에 있어 보면 권력의 이면을 엿볼 수 있을 때가 많다. 최고 권력의 관심사는 퇴임 후의 안전이다. 자기를 지켜줄 후보가 후임 대통령이 되어야 했다. 자기가 임명한 대법원장은 사법의 방파제였다. 반대자가 대통령이 되면 큰일이 난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겉으로는 공정한 선거를 말하지만 대통령의 속은 그게 아닌 것 같았다. 대통령이 원하지 않는 후보를 낙마시킬 자료들을 정보기관에 요구하는 것 같았다. 저인망 어선으로 훑듯이 대통령 후보들의 일생에 걸친 별별 정보들이 다 수집되었다. 진짜도 있고 가짜도 있었다. 소문도 있었다. 그런 것들이 언론을 통해 증폭되어 나가면 여론이 그에 따라 들끓었다. 불륜이나 뇌물은 결정적인 독약이었다.
주저앉혀야 할 후보에게 그 독약을 마시고 감옥으로 갈 것이냐 아니면 후보에서 물러날 것이냐의 선택을 강요하기도 했다. 문제는 권력의 칼자루를 잡은 사람이 자기가 미워하는 사람에게만 그 칼을 사용한다는 것이었다. 공정하지 않았다. 대통령이 집무실에서 재벌들의 돈을 직접 받아 챙기기도 했다.
나는 그런 더러운 정치판들을 잠시 들여다 본 적이 있다. 제도권 야당도 속성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폭력조직의 대부로 알려진 전설적인 인물의 고백을 들은 적이 있다. 그는 야당 원로 정치인의 사주로 전당대회를 아수라장으로 만들고 당 총재의 방에 들어가 도끼를 들고 죽인다고 협박을 한 적이 있었다고 했다. 가장 야만적이고 원색적인 폭력공작이었다. 해방 이후 많은 정치인들이 살해되기도 한 게 우리의 정치사다.
민주주의를 해치는 진짜 악인은 공작을 하는 하수인들이 아니라 그 공작의 이익을 취하는 존재들이었다. 그들이 피리를 불면 하수인들은 춤을 추었다. 가짜뉴스를 만든 김만배의 인터뷰 사건도 그런 저질의 정치공작이 아닐까.
우리의 민주주의는 피를 먹고 자랐다. 어느 정도 민주화가 달성되니까 수챗가의 독초처럼 가짜뉴스의 정치공작이 번지고 있다. 그런 정치공작의 수사는 복잡한 증거싸움도 아니고 법리공방도 아니다. 심플하고 간단하다. 수사나 재판의 지연이 오히려 문제일 수 있다. 신속하게 뿌리를 뽑아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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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상익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