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타이어 비자금 소송 때 ‘허위 문서 제출’ 피소…금감원 “미 법원도 ‘정부기관’ 인정했다“
A 씨 측은 지난 6월 미국 뉴욕남부연방법원에 금감원을 상대로 ‘타인의 계약에 고의적인 방해 등 불법행위에 대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A 씨는 2000년대 초반부터 미국에서 조양래 명예회장 등 한국타이어그룹(현 한국앤컴퍼니그룹) 총수 일가의 수천억 원대 해외 비자금 관련 소송을 진행해왔다.
소송에서 쟁점은 한국타이어의 한국법 위반 여부였다. 이를 입증하기 위해서는 금감원 진술이 필요했다. 미국 뉴욕남부연방법원은 2005년 6월 금감원 뉴욕 사무소에 관련 증언 및 자료제출을 명령했다. 하지만 금감원은 미 외국주권면제법(외국 국가는 미국 법원의 재판권으로부터 면제된다)을 근거로 뉴욕남부연방법원에 “금감원은 대한민국의 정부기구”라는 입장을 내 증언 명령을 거부했다.
문제는 금감원이 대한민국의 정부기구가 아니라는 점이다. 금감원은 금융위원회로부터 행정권을 위임받아 금융사들을 관리·감독하는 업무를 수행하고 있지만, 공공기관이 아니다. 지난 1999년 은행감독원, 증권감독원, 보험감독원, 신용관리기금 등 4개 감독기관을 통합해 설립한 무자본 특수법인이다. 감독대상인 금융사가 납부하는 감독 분담금, 증권신고서 제출시 납부하는 발행 분담금, 한국은행 출연금 등으로 운영된다.
실제 당시 뉴욕남부연방법원 재판부에서도 “금감원은 외국주권면제법에 따른 면책특권을 받을 자격이 없다”고 증언 및 자료 제출을 재차 명령했다. 이에 A 씨는 같은 해 8월 법원에 금감원의 ‘법정모독’을 신청, 금감원 뉴욕사무소장이 구금될 위기에 처했다.
그러자 주미한국대사관은 미 국무부에 외교공한을 보냈다. 외교공한에는 “한국의 금감원은 미국 SEC(증권거래위원회)와 FRB(연방준비제도이사회)를 합친 기관에 해당한다. 소환장을 거부하는 것은 법에 가능하기 때문”이라며 “미 뉴욕남부연방법원이 금감원을 법정모독에 처하면 한국과 미국 정부의 관계에 바람직하지 않은 영향을 가져올지 모른다는 우려가 있다”고 밝혔다.
이어 주미한국대사관의 재경참사관도 뉴욕남부연방법원 담당재판부에 “외국주권면제법이 부여한 자격에 따라 금감원은 ‘외국 국가의 기관’으로 간주돼야 한다. 금감원은 정부기구의 집행부로서 금융감독위원회의 지시에 따라 금융기관을 조사 감독하고 있다”고 서한을 발송했다. 주미한국대사관까지 나서 다시 한 번 금감원이 ‘정부기관’임을 강조한 것.
이를 통해 금감원은 법정모독 적용을 모면했고, A 씨 측은 ‘한국타이어가 한국법을 위반했다’는 금감원의 증언을 확보하지 못해 한국타이어와의 소송에서 패소했다.
이에 A 씨 측은 거짓 공문서 등 불법행위로 인해 한국타이어와의 소송에서 패하는 피해를 입었기 때문에, 이번에는 금감원을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A 씨는 “금감원이 정부기관이 아님에도 정부기관이라고 미국 연방법원을 상대로 허위 문서를 보냈다. 이어 금감원 뉴욕사무소장이 법정모독으로 구금 위기에 빠지자, 주한미국대사관까지 나서 거짓으로 보호했다”며 “이에 따라 나는 한국타이어 측에 패소해 막대한 금전적·심리적 피해를 입었다. 이에 손해배상 소송을 냈다”고 설명했다.
금감원은 뉴욕남부연방법원 재판부 측에 ‘소장을 송달받지 못했다’ ‘금감원은 대한민국의 정부기구다’ 등의 이유를 들어 소송을 각하해줄 것을 요청한 것으로 전해진다. 하지만 재판부는 오히려 금감원의 절차 무시 문제 등을 들어 각하 신청을 각하했다.
금감원에서는 미국 법원에서의 피소 사실에 대해 인정했다. 금감원 관계자는 정부기관이라고 주장한 것에 대해 “정부기관이냐 아니냐 판단을 미국 법에 따라 해야 하는데, 이미 미국 법원에서 금감원이 정부기관에 해당한다고 지위를 인정받은 바 있다”고 설명했다.
한편, A 씨는 조양래 명예회장 일가의 해외 비자금이 이후 이명박 전 대통령 측에 넘어가, 이 전 대통령의 비자금이 됐다고 주장하고 있다.
민웅기 기자 minwg08@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