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원, 집값 지수 관련 청와대 정책실장 4명 등 수사 요청…문재인 “고용률 최고” 재임 시절 성과 제시하며 반박
감사원이 문재인 정부 부동산 통계조작 의혹을 쏘아 올렸다. 9월 15일 최달영 감사원 제1사무차장은 중간 감사결과 발표 브리핑에 나섰다. 최 사무차장은 “청와대와 국토교통부 등은 통계청과 한국부동산원(옛 한국감정원)을 압박해 통계수치를 조작하거나 통계 서술 정보를 왜곡하는 등 불법행위를 한 사실이 확인됐다”고 밝혔다.
최 사무차장은 “청와대와 국토부는 2017년부터 2021년까지 최소 94회 이상 한국부동산원 통계 작성에 부당한 영향력을 행사해 통계수치를 조작하게 했다”고 했다. 감사원에 따르면 장하성 전 청와대 정책실장은 “주 1회 통계공표로는 (부동산) 대책 효과를 확인하기 부족하다”는 취지로 국토부에 3가지 통계에 대한 사전보고를 요구한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3가지 통계는 집값 변동률에 대한 확정치, 주중치, 속보치였다. 확정치는 집값 변동률과 관련해 7일 동안 조사를 진행한 뒤 완료 이튿날 공표하는 수치다. 주중치는 3일 동안 조사한 뒤 보고되는 수치이며, 속보치는 7일 동안 조사한 수치를 즉시 보고하는 수치다. 통계법에 따르면 작성 중인 통계를 공표 이전 다른 기관에 제공하는 것은 위법이다.
감사원 중간감사결과 발표에 따르면 문재인 정부가 속보치나 확정치가 주중치보다 높게 보고될 경우 사유를 보고하라고 압박했을 뿐 아니라, 나중엔 주중치도 실제 수치보다 낮게 조작하라는 지시를 내린 정황이 포착됐다. 감사원은 이 같은 통계수치 유출 및 조작이 장하성 전 정책실장 이후 후임자로 근무했던 김수현, 김상조, 이호승 전 정책실장 때도 계속됐다고 보고 있다.
2022년 9월부터 지난 3월까지 감사관 28명을 투입한 감사 중간결과 내용이다. 감사원은 청와대와 문재인 정부 핵심 수뇌부들에 대한 수사를 요청했다. 수사 요청 대상엔 장하성, 김수현, 김상조, 이호승 등 문재인 청와대에서 정책실장을 지냈던 이들이 모두 포함됐다. 홍장표 전 경제수석, 황덕순 전 일자리수석 등 청와대 참모들뿐 아니라 김현미 전 국토교통부 장관, 강신욱 전 통계청장 등도 수사 요청 대상 리스트에 이름을 올렸다.
정치권에선 검찰의 본격적인 수사가 돌입되면 최종 타깃은 ‘VIP’ 문재인 전 대통령이 될 것으로 관측한다. 보고 라인의 정점에 있는 문 전 대통령이 이러한 내용을 인지하고 있었을 가능성 때문이다. 한 여권 관계자는 “집값 통계조작 내용에 따라 청와대 수뇌부 및 전 정부 국무위원급 인사들에 대한 수사가 진행된다면, 그 다음 단계로는 이 보고를 최종적으로 받은 문 전 대통령에 대한 수사가 이뤄지지 않겠느냐”고 조심스런 예측을 내놨다.
한 야권 관계자는 “윤석열 정부 초기부터 감사원이 ‘고래사냥’ 운운하며 거물급 인사에 대한 표적감사를 예고했다”면서 “이번 감사원의 부동산 통계조작 관련 중간발표는 사실상 전 정부에서 ‘대왕고래’라고 할 수 있는 문재인 전 대통령에 대한 표적감사 의지를 표면화한 것으로 본다”고 했다. 이 관계자는 “이번 감사원 중간발표는 전 정권 파헤치기에만 집중하는 윤석열 정부의 기조를 다시 확인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비판했다.
9월 20일 송언석 국민의힘 의원실은 문재인 정부 당시 민관 통계격차가 이명박 정부 대비 90배 이상 차이 났다는 취지 자료를 공개했다. 한국부동산원과 KB부동산 매매가격지수를 비교한 자료였다. 이명박 정부 당시 두 곳이 내놓은 부동산 관련 민관 통계 격차는 0.4%포인트(p)였고, 문재인 정부 땐 부동산 관련 민관 통계 격차가 36.1%p까지 벌어졌다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문 전 대통령은 9월 17일 소셜미디어를 통해 한국노동사회연구소가 작성한 ‘문재인 정부 고용노동 정책 평가’ 보고서를 공유하며 간접적으로 반박에 나섰다.
문 전 대통령은 해당 보고서를 인용해 “문재인·민주당 정부 동안 고용률과 청년 고용률은 사상 최고, 비정규직 비율과 임금격차 감소 및 사회보험 가입 확대, 저임금 노동자 비율과 임금 불평등 대폭 축소, 노동 분배율 대폭 개선, 장시간 노동 및 실노동 시간 대폭 단축, 산재사고 사망자 대폭 감소, 노동조합 조직원 수와 조직률 크게 증가, 파업 발생 건수와 근로손실 일수 안정, 고용안전망 사각지대 해소 등을 확인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감사원발 부동산 통계조작 의혹과 관련해 고용노동 성과를 제시하며 반박 의사를 내비친 것으로 풀이된다.
앞서의 여권 관계자는 “문 전 대통령이 감사원 감사 중간발표 이후 자신의 고용노동 분야 성과를 제시했는데, 감사원 중간발표에 나온 이야기는 부동산 분야 이야기”라면서 “문재인 정부가 부동산 관련 통계를 조작했는지 여부에 대한 반박이 아니라, ‘이건 잘했다’는 식 말 돌리기 반박”이라고 지적했다.
한덕수 국무총리는 문 전 대통령 반박성 포스트에 재반박을 하기도 했다. 한 총리는 9월 19일 열린 출입기자단 간담회에서 “(문재인 전) 대통령께서 통계나 그때 정책이 굉장히 좋았다고 말씀하시는 게 굉장히 이례적”이라면서 “(2023년 고용률이 그때보다 더 높아졌는데) 올해 수치가 역사상 이룰 수 없는 최고치이고, 이를 이길 정부는 없을 것이라 이야기하고 싶지 않다”고 했다.
아울러 한 총리는 감사원 중간 감사발표와 관련해 “그런 일(부동산 집값 통계조작)은 가정 상황으로라도 생각하고 싶지 않고, 정말 있어선 안 된다”면서 “국가는 정확한 통계를 항상 보장해야 하고, 정확한 통계가 나와야 국제사회에서도 우리에 대한 평가가 있게 된다”고 했다.
대통령실은 감사원 중간발표 이후 전 정부에 대한 압박 수위를 높였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감사원 중간발표와 관련해 “주식회사 문재인 정권 회계조작 사건”이라면서 “문재인 정부가 국민을 기망했다”는 강도 높은 입장을 표명했다.
9월 20일 윤재옥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교섭단체 대표연설을 통해 “최근 감사원 감사로 드러난 부동산 통계조작 역시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심각한 도전이 아닐 수 없다”면서 “지난 정부는 정책을 고치는 대신 통계를 조작했다. 상상도하기 힘든 국기문란 행위”라고 문재인 정부에 대한 공세 수위를 높였다. 윤 원내대표는 “정부가 국민이 부여한 권력을 이용해 가짜 통계와 가짜뉴스를 생산한 것”이라면서 “관련자 엄단은 물론 다시는 정치권력이 국가 통계에 손 댈 수 없게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여의도 정가에선 이번 감사원 중간 감사결과 발표가 ‘문재인 부동산 정책’뿐 아니라 ‘소득주도성장’이란 키워드로 대표되는 문재인 정부 경제 정책 전반에 걸친 강도 높은 감사 시발점이 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감사원은 공공기관 및 공직자가 추진했던 공식적인 행동에 위법 사항이 있었는지를 견제하고 감시하는 헌법기관”이라면서 “전 정부가 추진했던 부동산·고용·기업 정책 등 전반에 걸친 감사를 통해 경제정책 전반에 걸친 시시비비를 가리려는 취지로 강도 높은 감사가 이어질 것으로 본다”고 했다.
정치평론가 채진원 경희대 공공거버넌스연구소 교수는 문재인 정부 부동산 집값 통계조작 의혹과 관련해 “부동산 가격으로 인해 자산가치가 불어나는 것 자체가 소득주도성장에 위배된다”면서 “결과적으로 부동산이 폭등해 소득주도성장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과도기적 상황에서 통계지표를 이심전심으로 좋은 게 좋은 것이라는 식으로 행했던 부분이 표면적으로 드러나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야권에서 전 정부에 대한 감사를 감사원발 표적수사라고 비판하는 것과 관련해 채 교수는 “문재인 정부 당시에도 ‘적폐청산’이라는 이름으로 전 정부에 대한 대대적인 진상규명이 이뤄졌다”면서 “윤석열 정부가 전 정부 정책에 대한 진상을 규명하는 것도, 야권이 표적감사 가능성을 제기하는 것도 정치적 시각에서 바라본다면 ‘상수’라고 볼 수 있다”고 했다.
채 교수는 “다만 통계조작 관련 감사가 정당하고 부당한지 여부는 국민이 판단할 몫”이라면서 “축구에서 우리 팀이 골 넣으면 잘한 것이고 상대팀이 골 넣으면 치사하다는 식 아군·적군 관점은 내로남불이라는 평가를 받을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이동섭 기자 hardout@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