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명 유괴해 팔아 넘긴 위화잉, 즉각 항소…5살 때 납치 양뉘화 “부모님 묘 앞에서 유괴범 엄벌 맹세”
양뉘화는 다섯 살이던 1995년을 잊지 못한다. 부모님이 일을 하러 나가고 혼자 집에 있던 양뉘화는 이웃에 살던 한 위화잉의 손에 끌려가 기차를 타고 허베이성으로 갔다. 위화잉은 양뉘화를 한 청각장애인 남성에게 돈을 주고 팔았다. 그때부터 양뉘화는 ‘리쑤옌’이라는 이름으로 살아가기 시작했다.
양뉘화는 어릴 때의 일을 어렴풋이 기억했다. 하지만 진짜 부모님을 찾기에 양뉘화는 너무 어렸고, 자연스럽게 새로운 가정에 녹아들었다. 새로운 아버지는 양뉘화에게 정성을 다했지만 너무 가난했다. 양뉘화는 어릴 때부터 생계를 위해 온갖 일을 해야만 했다. 이런 상황 속에서도 양뉘화는 언젠가 꼭 부모님을 찾겠다는 생각을 버린 적이 없었다고 한다. 2012년 결혼해 세 아이를 낳은 후 양뉘화의 간절함은 더욱 커졌다.
양뉘화는 2021년 소셜미디어(SNS)에 가족을 찾는다는 내용의 영상과 글을 올렸다. 그리고 기적처럼 사촌 여동생을 만나게 됐다. 여동생에 따르면 양뉘화의 부모는 유괴사건이 벌어진 후 충격을 받아 병을 얻었고, 1997년 무렵 세상을 떴다. 양뉘화는 2022년 5월 공안에 유괴범을 검거해 달라고 신고했고, 같은 해 6월 위화잉이 체포됐다.
공안이 위화잉을 조사한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위화잉은 1993년부터 1996년까지 구이저우성과 충칭에서 총 11명의 아이를 유괴한 뒤 허베이성 등에 돈을 받고 팔았던 것으로 나타났다. 당시 위화잉과 함께 범죄에 가담했던 일당은 모두 사망한 상태였다. 당국은 위화잉을 포함해 11명의 아이들 DNA를 확보, 가족 찾기에 나섰고 모두 성공했다.
1963년생인 위화잉은 충칭에서 남편을 만나 1992년 아이를 낳았다. 하지만 남편은 범죄를 저질러 투옥됐고, 위화잉은 당장 먹고 살 길이 없었다. 위화잉은 해서는 안 될 일을 택했다. 바로 브로커에게 자신의 아이를 판 것이다. 당시 위화잉이 친아들을 넘기고 받은 돈은 5000위안(91만 원)이었다. 위화잉은 이때 알게 된 브로커들과 함께 본격적으로 ‘아이 장사’에 나섰다. 심지어 자신의 친척 아이도 유괴를 했다.
양뉘화는 그동안 위화잉을 잊지 못했다고 말했다. 양뉘화는 “나를 끌고 가면서 ‘여자 아이는 잘 팔리지 않는다’고 했다. 그래서인지 나에게 매우 못되게 굴었다. 나를 때리거나 죽이겠다고 협박했다. 끓는 물에 머리를 데이기도 했다”고 말했다. 양뉘화는 9월 18일 사형선고 이후 위화잉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느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이렇게 말했다.
“더 할 말이 없다. 또 사과를 기대하지도 않는다. 첫 재판 때 위화잉이 법정에서 사과를 했다면 모르겠다. 아마 진심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위화잉은 사과하지 않았고, 태도도 나빴다. (사형 선고 후) 사과를 하더라도 분명 진심이 아닐 것이다. 위화잉이 사과하더라도 받아들이지 않겠다.”
2023년 7월 14일 첫 재판에서 양뉘화는 28년 만에 위화잉을 만났다. 법정에서 양뉘화는 흘러내리는 눈물을 멈출 수 없었다. 양뉘화는 법정 진술에서 “내가 평생 미워했던 사람이었다. 부모님 묘 앞에서 유괴범에게 반드시 엄벌을 내리겠다고 맹세했었다”면서 재판부가 사형을 선고하기를 바란다고 했다.
재판은 속전속결로 이뤄졌다. 양뉘화조차도 “이렇게 빨리 판결이 나올지 몰랐다”고 했다. 결과 역시 양뉘화가 원했던 사형이 나왔다. 구이양시 법원은 “위화잉은 불법 이익을 얻으려 아이를 유괴했다. 죄질이 극도로 좋지 않다. 또 사회적 위해성도 크다. 따라서 엄중히 처벌해야 한다”면서 사형을 선고했다.
양뉘화는 고향으로 돌아가 부모님에게 제사를 지내고, 유괴범 사형 소식을 알리겠다는 소감을 밝혔다. 양뉘화 측 변호인 왕원광은 “판결 결과에 만족한다. 이번 판결이 유괴범들에게 경종을 울리고, 또 아이를 잃은 부모들에게 격려가 될 것”이라고 했다. 위화잉 측은 항소를 제기했다. 이를 놓고도 많은 중국인들이 분개했다.
양뉘화는 “사형이 선고됐지만 그렇다고 나는 원래의 가정으로 돌아갈 순 없다. 이 아쉬움은 평생 남을 것이다. 어릴 때부터 진짜 부모님 밑에서 자랐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위화잉이 죽는다고 내가 다시 자랄 수 있는 건 아니다. 다만, 부모님께 판결문을 드릴 수 있어 위안이 된다”고 했다.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서 양뉘화는 “열심히 일하고 돈을 벌고 싶다. 부귀에 대해서 말하는 게 아니다. 아이들과 시간을 많이 보내고 싶다”고 말했다.
양뉘화는 자신과 비슷한 처지의 가족들을 돕는 일도 할 것이라고 밝혔다. 양뉘화는 2021년 부모를 찾은 후 ‘가족 찾기’ 단체에 가입해 자원봉사자로 활동해왔다. 자신의 경험을 개인 SNS 계정에 올렸고, 지금은 수십만 명의 팔로어를 보유하고 있다. 양뉘화는 “10여 명의 아이들이 잃어버린 가족을 찾을 수 있도록 도왔다”면서 “유괴를 당했던 아이들이 SNS로 연락을 해와 조언을 구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양뉘화는 “가족 찾기에 성공한 사람으로부터 감사의 문자를 받을 때 행복하다. 그들이 재회하는 것을 보면 마치 내가 집에 가는 듯한 느낌이 든다”면서 “앞으로도 유괴된 사람, 가족을 찾는 사람 등을 돕기 위해 온라인에서 계속 남아 있을 것”이라고 했다.
중국=배경화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