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영업자 “부도덕한 고객 차단” 주장에도 “차별 행위” 비판…노존 없애려면 성숙한 시민의식도 필요
노키즈존(No Kids Zone)은 영유아 및 어린이 출입을, 노시니어존(No Senior Zone)은 노인 출입을 금지하는 곳을 의미한다. 대체로 노키즈존은 13세 미만 어린이, 노시니어존은 60세 이상 노인의 출입을 거부한다. 일부 음식점과 카페 등 다중이용업소(이하 업소)를 중심으로 노키즈·노시니어존이 꾸준히 생겨나고 있다.
노키즈존을 둔 업소가 노시니어존을 둔 업소보다 더 많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전국 500여 곳 업소에 노키즈존이 있다. 지난 4일 ‘일요신문i’가 찾은 성수동·연남동·잠실 등 서울 유명 거리에선 노키즈존인 음식점과 카페를 심심찮게 볼 수 있었다. 노키즈존을 운영하는 일부 자영업자들은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고 주장한다. 서울 마포구 연남동에서 A 음식점을 운영하는 김 아무개 씨(41)는 “모든 부모가 그런 건 아니지만 몇몇 부모들은 아이가 뛰다가 음식점에 배치된 소품이 떨어지면 ‘뛰다가 그런 걸 어떡하나’라는 반응을 보이는 것뿐 아니라 소품이 떨어지면서 아이가 다치면 음식점 탓을 한다”며 “(노키즈존은) 몰상식한 부모를 막는 안전장치”라고 말했다. 서울 송파구 잠실에서 B 카페를 운영하는 이 아무개 씨(33)는 “아이들이 소리 지르거나 소란을 피워 다른 고객들이 자리를 금방 비우는 경우가 있다”며 “이럴 때 부모가 아이를 제지하지 않아 더 문제”라고 하소연했다.
대다수 시민들도 노키즈존의 필요성을 느끼고 있다. 지난 2월 한국리서치가 전국 18세 이상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여론조사를 실시한 결과, 전체 응답자의 71%가 ‘노키즈존을 허용할 수 있다’고 답했다. 노키즈존을 찬성하는 이유로 △다른 손님에 대한 배려 △매장 환경이나 분위기 개선 △어린이 안전사고 예방 등이 꼽혔다.
노시니어존도 속속 생겨나고 있다. 노시니어존은 올해 초 일부 음식점과 카페에서 ‘49세 이상 출입금지’ ‘60세 이상 출입금지’ 문구를 내걸면서 등장했다. 지난 9월 25일 프랜차이즈 카페 ‘빌리엔젤’ 직원이 노인 고객에게 ‘매장 이용 시간이 길다. 젊은 고객님들이 아예 이쪽으로 안 온다’며 나가라는 쪽지를 전한 일도 있었다. 빌리엔젤 본사는 노인 차별 의도가 없었다고 해명했지만, 직원이 쪽지에 ‘젊은 고객님들’이라고 적은 것을 두고 일각에선 “나이가 문제라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쏟아졌다. 빌리엔젤 본사는 같은 달 26일 공식 사과문을 게재하고 ‘고객 응대에 있어 나이, 성별, 인종, 이념 및 사상 등을 이유로 차별하는 행위가 잘못된 행위임을 인지하고 있다’고 밝혔다.
일부 자영업자의 입장을 이해하면서도 노존 운영은 적절한 대책이 아니라는 지적이 나온다. 노존 운영이 특정 세대를 차별하는 행위라는 목소리가 높다. 평소 노키즈존 여부를 확인하고 음식점·카페를 찾는다는 조은영 씨(31)는 “자영업자 입장에선 피해 가는 경우들이 있어 노존 운영을 하겠지만 모든 영유아, 어린이, 노인 등이 피해를 주는 건 아니지 않느냐”라며 “두 아이를 키우면서 사회적으로 차별을 받는 것 같아 속상하다”고 말했다. 앞서 빌리엔젤 사태를 우려스럽게 바라봤다는 송영호 씨(39)는 “노키즈존에 이어 노시니어존도 확산되기 직전 상태인 것 같다”며 “모든 시민이 함께 할 수 있는 공간이 점점 적어지는 것 같다. 이렇게 되면 세대 간 갈등이 더 커지지 않을까 우려된다”고 언급했다.
지방자치단체 차원의 대응도 나오고 있다. 전국에서 두 번째로 노키즈존 비율이 높은 제주도에서는 올해 초 일명 ‘노키즈존 금지 조례’가 처음 발의됐다. 노키즈존 운영 업체를 처벌하거나 불이익을 주는 내용은 담기지 않았지만 영유아나 어린이 동반 고객을 출입하지 못하게 하는 행위를 하면 안 된다는 내용이 골자다.
현재 노존 운영을 영업방침으로 내세운다고 해서 자영업자가 법적 처벌을 받진 않는다. 다만 국가인권위원회는 2017년 노키즈존에 대해 차별 행위라고 판단했다. 법률사무소 승소의 정훈태 대표변호사는 “자영업자는 자신의 재산권을 행사하는 것이기 때문에 (노존 운영이) 법으로 위배되는 것은 아니다”면서도 “영유아, 노인 등을 헌법에서는 사회적 약자라고 판단하기 때문에 이들의 출입을 합리적인 이유 없이 거부하는 건 사회적 약자를 배려해야 한다는 헌법 정신에는 어긋난다고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노키즈·노시니어존 운영 방침을 심각하게 바라보고 있다. 김윤태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는 “영유아나 노인을 서로 배려하고 돕는 존재로 생각하지 않고 유모차 끌고 왔다고 혹은 나이 든 어른이 왔다고 해서 눈치 주고 구역을 나눠 못 들어오게 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며 “사회적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문화적 분위기가 마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일부 시민의 부도덕한 행위를 모든 시민에게 일반화시켜선 안 된다는 주장도 나온다. 유팔무 한림대 사회학과 명예교수는 “소수의 잘못된 행동으로 모든 이들의 출입을 막는 건 옳게 보이지 않는다”며 “저출산·고령화 시대에 사회 구성원들 간 배려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노존 운영의 근본적 원인 해결이 먼저라는 목소리도 높다. ‘고객은 왕’이라는 인식으로 아이들을 앞세우는 부모나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부당한 요구를 하는 노인들의 시민의식이 개선돼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방증하듯 지난 5월 시장조사 전문기관 엠브레인 트렌드모니터가 전국 성인 1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61.9%가 노키즈존에 찬성한다는 입장을 밝혔으며, 찬성자 중 절반 이상은 자녀가 있는 기혼자인 것으로 나타났다.
4세 아이를 양육 중인 민정빈 씨(32)는 “아이를 가진 입장에서 노키즈존은 안타깝지만 카페나 음식점 등에서 시끄럽게 돌아다니고 사고 치는 아이들을 보면 불편하다”고 말했다. 민 씨는 “일부 부모의 몰지각한 행동이 노존 운영을 확산시켰다고 본다”며 “우리(부모들)가 먼저 바꿔나가야 한다”고 전했다. 노시니어존도 마찬가지다. 서울 종로구 종로3가의 한 카페에서 근무하는 직원 C 씨는 “이 매장도 노시니어존이었으면 좋겠다”며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무례하게 행동하는 노인 고객이 많다”고 말했다. C 씨는 “외부 음식을 가져와서 먹고 흘려도 치우지 않고 나가든지 소리 지르듯 전화를 받는다든지 다양한 일이 많다”며 “제재를 하면 도리어 한 소리 듣는다”고 털어놨다.
영유아, 노인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개선되도록 성숙한 시민의식도 필요하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정훈태 변호사는 “노키즈·노시니어존 근본적 원인을 개선해야 한다”며 “노존 운영을 없애려면 일부 부모와 노인들에 성숙한 시민의식이 요구된다”고 강조했다.
정소영 기자 upjsy@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