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천동 식구파’ ‘3대 마약왕’ 검거 등 현지 경찰과 합동작전…검찰도 김성태 체포·마약 수사 등 성과
‘필리핀 사탕수수밭 살인사건’도 유명하다. 한국에서 금융 범죄를 저지르고 필리핀으로 도주한 한국인 세 명이 필리핀 현지에서 살해당한 사건으로 ‘텔레그램 마약왕 전세계’로 유명한 박왕열이 이 사건의 피의자인데 이로 인해 필리핀 현지에서 검거됐지만 탈옥해 마약왕이 됐다가 다시 검거됐다. 이 사건은 디즈니 플러스 오리지널 시리즈 ‘카지노’의 배경이 됐다.
또한 영화 ‘범죄도시2’의 빌런 강해상(손석구 분)은 필리핀 관광객 연쇄 표적납치 살인사건의 최세용을 모티브로 만든 캐릭터다. ‘범죄도시2’에선 필리핀이 아닌 베트남으로 한국 경찰이 출장을 떠나는 것으로 설정돼 있는데 ‘마석도’(마동석 분)와 ‘전일만’(최귀화 분) 반장이 그 주인공이다. 이처럼 최근에는 한국 경찰이 동남아시아 등 해외로 직접 떠나 현지 경찰과 합동작전을 벌여 범죄자들을 검거하는 일이 빈번해지고 있다.
#외국과 첫 합동작전
2015년 7월 8일 경찰청은 폭력조직을 결성해 1000억 원대 유사석유를 판매하는 등 각종 범죄에 저지른 뒤 필리핀으로 도주했던 ‘봉천동 식구파’ 두목 양 아무개 씨와 부두목 민 아무개 씨를 필리핀 현지에서 필리핀 이민청과 합동으로 검거했다고 밝혔다.
요즘에는 흔한 뉴스일지도 모르지만 당시에는 큰 화제가 됐다. 대한민국 경찰이 해외 현지에 직접 나가 외국 법집행기관과 합동작전을 펼쳐 범죄자를 검거한 첫 사례였기 때문이다. 사법주권 때문에 해외로 도피한 범죄자 검거는 현지 경찰에 요청해 이뤄질 수밖에 없었는데 성과는 미미했다. 그런데 이 사건으로 그 한계가 깨졌다. 양 씨와 민 씨 역시 2011년 10월 필리핀으로 도주해 인터폴 적색수배까지 내려졌지만 오랜 기간 검거가 이뤄지지 못했었다.
그만큼 동남아시아는 국내 범죄자들의 안전한 도피처였다. 양 씨와 민 씨는 필리핀으로 도주할 당시 가져간 범죄수익금으로 골프 등을 즐기며 호화롭게 지내왔으며 카지노에 관광객을 데려가 수수료를 받기도 했다. 2015년 7월 당시 이렇게 필리핀으로 도주한 한국인 적색수배자가 무려 86명이나 됐을 정도다.
이를 위해 경찰청은 필리핀 이민청장을 직접 만나 한국 경찰과의 필리핀 현지 합동작전을 합의했다. 합의 직후 본청 인터폴과 서울지방경찰청 인터폴추적팀으로 구성된 검거팀을 현지에 파견해 바로 검거에 성공했다.
#김종양 전 인터폴 총재 시절에 탄력
이후 경찰청은 꾸준히 동남아시아 등 해외로 도주한 범죄자 검거에서 실적을 올려왔다. 특히 인터폴 집행위원회 부총재를 지낸 김종양 전 인터폴 총재가 2018년 11월부터 2021년 11월까지 현직으로 활동하면서 국제공조가 더욱 탄력을 받았다.
2019년 4월 전북지방경찰청 사이버수사대는 해외 서버를 이용해 필리핀 현지에서 불법 사이트인 음란사이트와 도박사이트를 개설한 피의자를 필리핀 현지에서 검거했다. 인터폴 적색수배 이후 무려 10개월가량 필리핀 현지 사법당국과의 국제공조 수사를 이어가 필리핀 소재의 은신처를 파악해 피의자 검거에 성공했다.
당시 전북지방경찰청 사이버수사대 측은 “예전에는 해외 국가들과의 수사 공조가 잘 이루어지지 않아 피의자를 특정하고도 검거하지 못하는 일이 종종 있었는데, 최근에는 인터폴을 통한 국제공조가 활성화됐다”며 “최근 한국인 최초로 김종양 전 경기지방경찰청장이 인터폴 총재로 선임되면서 국제사회에서 국가 간 경찰활동 협업이 두드러지게 개선됐다”고 밝혔다.
2022년 5월에는 1485명으로부터 ‘돌려막기’ 방식으로 무려 1656억 원을 가로챈 사기 피의자가 베트남 공안과의 국제공조로 검거돼 국내로 송환됐다. 이 사건은 경찰이 다중피해 사기 집중 대응을 시작한 이후 첫 해외 송환 사례다.
2022년 경찰청은 사기 범죄 특별단속을 벌이며 외사국과 수사국이 국외 도피 경제사범 일제 합동 점검에 돌입했고 그 과정에서 2022년 3월 해당 피의자를 적색수배했다. 경찰청 인터폴국제공조과가 피의자가 출국한 국가인 베트남에 공조 요청을 해 베트남 공안으로부터 베트남 입국 사실을 확인한 뒤 주변 인물 수사와 비자 정보 등으로 단서를 입수해 결국 검거에 이르렀다.
#‘동남아 3대 마약왕’ 검거
경찰이 외국 경찰과 공조해 중요 용의자를 검거한 사례 가운데 가장 눈길을 끄는 사건은 바로 ‘동남아 3대 마약왕’의 검거다. 필리핀을 중심으로 활동하던 ‘텔레그램 마약왕 전세계’ 박왕열과 탈북자 출신으로 베트남, 태국, 캄보디아 등을 거점으로 활동하던 ‘탈북 마약왕’ 최 아무개 씨, 그리고 닉네임 ‘사라 김’으로 알려진 ‘동남아 마약왕’ 김 아무개 씨 등이다.
필리핀 사탕수수밭 살인교사 사건 피의자이기도 한 ‘텔레그램 마약왕 전세계’ 박왕열은 2020년 10월 필리핀에서 검거됐고, 2022년 4월에는 ‘탈북 마약왕’ 최 씨가 캄보디아에서 검거돼 국내로 송환됐다. 최 씨 검거는 경찰이 국정원, 검찰, 인터폴 등 공조수사를 통해 일궈낸 쾌거였다.
가장 상선으로 알려진 ‘동남아 마약왕’ 김 씨는 2022년 7월에 검거됐다. 경찰은 이미 수년 전에 김 씨 관련 정보를 입수했지만 동남아시아를 기반으로 활동하고 있어 본격적인 수사에는 어려움이 있었다. 결국 2019년 6월 경찰은 김 씨를 인터폴 적색수배 명단에 올리면서 김 씨의 주요 활동무대로 알려진 베트남과의 공조수사가 시작됐다.
김 씨 거주지는 베트남 호찌민으로 알려졌지만 더 이상의 정보에 다가가는 데에는 한계가 있었다. 거주지를 주기적으로 옮기는 등 김 씨는 경찰 수사에 철저하게 대비하고 있었다. 게다가 2020년 초부터 코로나19 팬데믹(대유행)이 시작되면서 한동안은 한국 경찰이 베트남을 오가는 것조차 힘들었다.
이런 상황에서 2022년 5월 신빙성 높은 첩보를 입수한 경찰청은 베트남 공안과의 협의를 거쳐 2022년 5월 공동조사팀을 현지에 파견했지만 별다른 성과는 없었다. 그리고 다시 새로운 첩보를 입수한 경찰은 2022년 7월 경찰청 인터폴 계장과 베트남 담당, 인천경찰청 국제공조팀원, 경기남부경찰청 수사관 등으로 구성된 검거 지원팀을 베트남 호찌민으로 파견해 7월 17일 베트남 공안과 함께 베트남 호찌민 소재의 김 씨 주거지를 기습해 검거하는 데 성공했다.
사실 경찰이 입수한 정보 속 거주지에는 김 씨가 없어 베트남에 도착한 검거 지원팀은 당황스러운 상황에 몰리기도 했다. 그렇지만 베트남 공안이 새로운 거주지를 파악하면서 예정대로 17일 검거 작전이 시작됐고 새로운 거주지로 이사해 아직 짐도 풀지 못한 상황에서 김 씨는 검거 지원팀에 검거됐다. 이틀 뒤인 19일에 바로 국내로 송환됐는데 그만큼 베트남 공안과 한국 경찰의 국제 공조는 매우 성공적이었다.
강기택 경찰청 인터폴국제공조과장은 김 씨 검거 및 송환 과정을 설명하며 “베트남 공안부와 지속적인 공조를 통해 동남아 마약밀수 조직의 최상선 총책을 검거한 우수 사례”라며 “앞으로도 해외 거점 범죄에 대응하기 위해 외국 경찰과 국제 공조를 강화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FBI도 못잡는다” 공언한 엘, 한국과 호주 합동작전으로 검거
2022년 12월에는 동남아시아를 벗어나 호주와의 수사 공조에서도 커다란 성과를 냈다. 바로 제2의 n번방 사건(일명 ‘엘’ 사건)의 피의자 ‘엘’의 검거인데 “FBI에서 텔레그램 서버 해킹할 수 있을 정도는 돼야 나 잡을 수 있다”고 공언했던 엘을 한국 경찰이 호주 경찰과의 합동수사로 검거해냈다. 텔레그램 ‘n번방 사건’을 취재해 디지털 성착취 범죄를 공론화해 조주빈·문형욱 등의 검거를 이끌어 낸 추적단불꽃의 ‘단’ 원은지 씨가 엘에 대한 취재를 시작한 지 11개월, 엘의 존재가 세상에 알려진 지 3개월 만인 2022년 11월 24일 엘이 검거됐다.
서울경찰청은 해외 기업에 140차례에 이르는 압수수색영장을 집행하며 필요 자료 확보에 돌입해 IP(인터넷 접속) 주소 등을 통해 엘의 신원을 특정했다. 바로 경찰은 엘의 체포영장을 발부받아 인터폴 적색수배를 했고, 호주 경찰과 합동으로 ‘인버록 작전’에 돌입했다. 서울경찰청 사이버범죄수사대 수사관과 호주 연방경찰(AFP) 아동보호팀이 함께 ‘인버록 작전’을 진행했는데 엘의 도주 및 증거 인멸을 우려해 작전을 극비리에 진행했으며 엘이 몰래 숨겨 놓은 다른 전자기기를 찾기 위해 탐지견까지 동원됐다. 결국 합동수사팀은 시드니 교외에 있는 엘의 주거지 등을 압수수색한 뒤 엘을 체포했다. 경찰은 한국 국적인 엘이 2010년부터 호주에 살았던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법무부 차관까지 나선 김성태 검거
2023년에는 검찰의 굵직한 해외 공조수사가 큰 성과를 냈다. 2023년 1월 10일 오후 7시 50분(한국시각) 즈음 태국 빠툼타니의 한 골프장에서 골프를 치던 김성태 전 쌍방울그룹 회장과 양선길 현 쌍방울그룹 회장이 태국 경찰에 검거된 것.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변호사비 대납 의혹 등 여러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던 김 전 회장은 2022년 5월 해외로 도피했다.
한국 검찰은 태국 경찰은 공조수사에 돌입해 2022년 12월 초 태국 파타야에서 김성태 전 회장의 매제 김 아무개 씨를 검거했다. 그는 김 전 회장의 금고지기로 굵직한 자금 거래를 모두 알고 있는 인물이다. 김 씨 관련 수사를 진행하던 검찰은 김 씨가 파타야와 빠툼타니를 자주 오간 정황을 파악했다. 빠툼타니는 방콕 북부에 위치한 도시로 고급 골프장이 위치한 곳인데 김 전 회장이 평소 골프를 즐겼다.
문제는 태국과의 수사 공조가 원활하게 이뤄질 수 있느냐다. 필리핀 베트남 등과는 한국 경찰이 현지 수사기관과 수사 공조 경험이 많지만 태국과는 아주 원활한 편은 아니었다. 게다가 공조수사 주체도 이번은 경찰이 아닌 검찰이다. 그렇지만 2022년 8월 28일 법무부와 유엔마약범죄사무소(UNODC), 태국 반부패청 등이 공동 주최한 ‘동남아 반부패 콘퍼런스’에 참석하기 위해 태국 방콕을 방문한 이노공 법무부 차관이 태국 대검찰청에서 싱하차이 타니손 검찰총장을 만나 김성태 전 회장 검거 및 국내 송환을 논의해 “수사에 잘 협조하겠다”고 약속을 이끌어 냈다.
그렇게 1월 10일 빠툼타니의 한 골프장에서 검거된 김성태 전 쌍방울그룹 회장과 양선길 현 쌍방울그룹 회장은 1월 17일 국내로 송환됐다.
#검찰도 해외 현지에서 마약 총책 검거하는 성과 올려
검찰은 마약 관련 해외 공조수사에서도 큰 성과를 올렸다. 8월 10일 부산지방검찰청 마약범죄 특별수사팀은 2022년 12월부터 2023년 3월까지 불과 3개월 동안 마약류 6576g(시가 약 216억 원)을 국내로 밀수한 조직을 적발해 총책과 마약 운반책 2명 등 3명을 구속기소했다.
부산지검은 3월 25일 김해공항에서 마약 운반책 2명을 검거해 구속했다. 이들은 필로폰 약 968g과 엑스터시 239정, 케타민 약 101g 등을 팬티에 숨긴 채 태국발 항공기를 타고 김해공항으로 입국하려다 적발됐다. 이들을 통해 마약 밀반입 총책의 인적사항을 특정한 부산지검은 바로 체포영장을 발부 받고 여권 무효화 및 인터폴 적색수배 조치까지 취했다.
또한 관련 정보가 ONCB(태국 마약청)에 파견 중인 검찰 마약수사관에게 전달됐고 DEA(미국 마약청)가 입수한 총책의 태국 현지 정보도 확보됐다. 이렇게 부산지검은 ONCB, DEA 등과의 긴밀한 공조수사를 통해 태국 파타야 소재의 은신처를 확보해 6월 2일 총책을 검거하는 데 성공했다. 총책이 검거된 파타야 소재의 은신처는 수영장이 달린 고급빌라였다. 게다가 고급빌라 내부는 유흥주점처럼 꾸며져 있었다. 이번에도 태국 수사기관과 원활한 수사 공조가 이뤄져 6월 2일 검거된 총책은 7월 26일 국내로 송환돼 바로 다음 날 구속됐다.
신민섭 기자 leady@ilyo.co.kr
전동선 프리랜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