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형 임성빈 씨에 수여한 증서 “군형법 위반, 반납하라” 통보…임 씨 사건 상소권 회복, 초병 살해 증거 없어
이들은 서울 진입 과정에서 군경과 교전을 벌였다. 이 과정에서 경찰 2명, 민간인 6명이 사망했다. 공작원 24명 가운데 20명도 사망했다. 4명만이 살아남았다. 생존 공작원 4명은 초병(기간병) 살해 혐의로 군사법원에 넘겨졌다. 1심과 2심에서 모두 사형을 선고받았다. 이들은 상고를 포기했다. 그러면서 가족조차 모르게 사건 이듬해인 1972년 3월 10일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사형당한 이들은 당시 20대 청춘이던 김병염, 김창구, 이서천, 임성빈 씨 4명.
#사형당한 4명, 유공자로 전혀 인정받지 못해
노무현 정부이던 2005년 5월 ‘국방부 과거사진상규명위원회(과거사위)’가 발족했다. 과거사위는 실미도 사건 공작원 유해 발굴 작업에 나섰다. 그 결과 실미도 사건 나흘 후인 1971년 8월 27일 경기도 고양시 서울시립 벽제 공동묘지에 사망한 공작원 20명이 가매장된 것으로 드러났다. 하지만 사건 이듬해 사형당한 4명의 유해는 아직도 찾지 못하고 있다. “실미도 사건은 끝나지 않았다”는 목소리가 들리는 것도 이 때문이다. 사형 공작원 4명의 유족들과 국방부 등은 현재 유해 발굴을 추진하고 있다.
실미도 사건 당일 사망한 공작원 20명의 유족들은 이명박 정부 시절부터 현재까지 특수임무공로자 유족증이나 특수임무유공자 증서 등을 받고 있다. 하지만 어찌된 영문인지 사형당한 4명은 유공자로 전혀 인정받지 못했다.
이에 사형당한 임성빈 씨 유족은 지난 7월 31일 특수임무유공자 신청을 했다. 그리고 마침내 지난 8월 7일 특수임무유공자 증서를 받았다. 윤석열 대통령과 박민식 국가보훈부 장관 명의로 발급한 증서다. 임 씨가 사형당한 지 51년 만이다. 임성빈 씨에게 수여된 특수임무유공자 증서엔 이같이 적혀 있다.
‘우리 대한민국의 오늘은 특수임무유공자의 공헌과 희생 위에 이룩된 것이므로 이를 애국정신의 귀감으로 삼아 항구적으로 기리기 위하여 이 증서를 드립니다. 2023년 8월 7일 대통령 윤석열. 이 증서를 특수임무유공자증부에 기재합니다. 국가보훈부 장관 박민식.’
그런데 임 씨 유족은 9월 15일 인천보훈지청 직원으로부터 전화 한 통을 받았다. “유공자 증서를 반납하라”는 통보였다. 증서를 받은 지 불과 39일 만이었다. 시쳇말로 증서에 잉크도 채 마르기 전이었다.
#보훈부 “군형법 위반 뒤늦게 알아…유공자증 반납요청”
인천보훈지청은 국가유공자 등 예우 및 지원에 관한 법률(국가유공자법) 제79조와 특수임무유공자 예우 및 단체설립에 관한 법률(특수임무유공자법) 제80조를 거론했다. 그러면서 임 씨를 포함해 사형당한 4명이 해당 법률에 적용될 수 없는 비(非)해당자들로 결정났다고 했다.
국가유공자법 제79조에 따르면 국가보안법, 형법,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법률,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 군사기밀보호법, 전기통신사업법 위반으로 실형을 선고받고 그 형이 확정된 사람은 국가유공자법 적용 대상에서 제외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특수임무유공자법 제80조 역시 마찬가지다.
국가유공자법 제79조와 특수임무유공자법 제80조에 따르면 형법 등을 위반해 금고 1년 이상 실형을 선고받고 그 형이 확정된 사람은 이 법들 적용 대상에서 배제된다.
임성빈 씨 유족은 황당하면서도 분노가 치밀었다고 한다. 이에 인천보훈지청이 임 씨 유족에게 우편 발송한 증서반납요청 통지서를 수취 거부했다. 그러면서 윤석열 대통령과 박민식 국가보훈부 장관, 박용주 인천보훈처장 등에게 9월 18일 진정서를 보냈다.
임성빈 씨 유족인 임충빈 실미도 유족회 회장은 윤석열 대통령 등에게 보낸 진정서에서 “임성빈 혐의인 군형법 제59조는 국가유공자법 제79조나 특수임무유공자법 제80조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군형법 제59조에 따르면 초병을 살해한 사람은 사형 또는 무기징역에 처하도록 명시돼 있다. 1971년 8월 23일 실미도 공작원 24명이 실미도를 벗어나 서울로 진입할 때 초병 18명을 살해했다는 것이다.
임충빈 회장은 “특수임무유공자법은 실미도 피해자와 북파공작원 등 특수임무유공자 명예회복과 유족 예우를 위해 제정된 법”이라며 “정작 특수임무유공자법 제정 계기가 된 실미도 사건 피해자들을 특수임무유공자법 적용 대상에서 배제한다는 건 너무 부당한 처사”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에 대해 인천보훈지청은 “(임성빈 씨 유족이) 7월 31일 고 임성빈 님의 특수임무유공자 등록을 신청해 특수임무공로자 등록 결정을 (8월 7일) 안내 받았다. 하지만 이후 고인(임성빈)께서 군사재판으로 사형된 사실이 확인돼 이미 결정된 걸 취소했다”며 “군형법 제59조 범죄는 형법 제250조 살인 범죄와 본질적으로 차이가 없다. 범죄 구성요건이 중첩되므로 (국가유공자법과 특수임무유공자법 등) 법 적용 배제 대상에 해당된다”고 밝혔다.
이처럼 국가보훈부는 임성빈 씨가 군형법(초병 살해)을 위반했으며 이는 형법을 위반한 것과 같다고 논리를 내세운다. 그로 인해 임 씨가 사형당했으며 이 같은 사실을 뒤늦게 알게 돼 유공자 증서 반납을 요청했다는 것이다.
#국방부 조사 결과, 사형 4명의 초병 살해 기록 없어
국가유공자법 제79조와 특수임무유공자법 제80조는 모두 ‘형이 확정된 자’를 대상으로 하고 있다. 그런데 임성빈 씨는 지난 9월 5일 법원 결정으로 상소권이 회복됐다. 서울고법 형사8부는 임 씨의 여동생 임충빈 씨가 대리 청구한 상소권 회복 신청을 받아들였다.
재판부는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 위원회(진실화해위) 조사 결과 (실미도 사건 당시) 공군 관계자들이 임성빈 씨에 대해 대법원에 상고하지 못하도록 회유한 것이 인정된다”는 결정을 내렸다. 그러면서 대법원 상고심에 계류 중이다. 따라서 실미도 사형 공작원 4명을 ‘형이 확정된 자’라고 단정 지을 수 없는 상황이다.
인천보훈지청은 이와 관련해 “현재 서울고법 결정에 따라 상소권이 회복된 점은 (임성빈 씨 유족의) 진정서가 접수돼 알게 된 사실”이라며 “향후 대법원 판결로 고인 명예가 회복돼 (국가유공자법, 특수임무유공자법 등) 법 배제 대상이 아닌 것으로 판단될 경우 유공자 등록을 재신청하기 바란다”고 밝혔다.
현재 대법원에 계류 중인 상고심에서 임성빈 씨 등 사형당한 4명에 대한 무죄 판결이 날 경우 다시 유공자 등록을 신청할 수 있다는 얘기다. 다만 유공자 등록을 재신청한다고 해서 유공자로 인정될지는 미지수다.
임충빈 회장은 “오빠(임성빈)의 특수임무유공자증서는 윤석열 대통령, 박민식 국가보훈부 장관 명의 증서다. 이를 반납하라는 건 경악할 노릇이다. 국가는 고인들과 유족들에게 대대손손 사무치도록 아프게 한다”며 “진실화해위 권고대로 국가는 국가가 저지른 천인공노할 실미도 사건을 국가가 마무리하는 게 마땅하다”고 역설했다.
진실화해위는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 기본법’이 개정됨에 따라 2020년 12월 10일 재출범했다. 항일독립운동, 해외동포사,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희생, 권위주의 통치 시절 일어났던 인권침해 등을 조사하고 진실을 밝히는 독립 조사기관이다. 진실화해위는 국가가 공작원들을 실미도에 감금해 가혹행위를 하는 등 인권 침해를 가했다고 결론지었다. 그러면서 사건 진상을 왜곡, 축소, 은폐하는 등 조작했기 때문에 과거사정리법이 정한 진실규명 대상에 해당한다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인천보훈지청은 “국가보훈부는 진실화해위 결정을 존중한다”면서도 “이와 별개로 특수임무유공자 등록은 특수임무유공자법에 따라 결정됐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임 회장은 또 “실미도 사건 당시 24명 탈출 과정에서 사망한 20명은 형식적인 법적 처벌이 없다는 이유로 특수임무국가유공자가 됐다”며 “살아남아 재판을 받고 사형당한 4명은 법적 처벌 기록이 있다는 이유로 국가유공자가 될 수 없다는 논리는 형평성에 맞지 않다. 실미도 사건 본질은 같은데 형식 논리로 차별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2005년 5월 발족했던 국방부 과거사정리위 조사 결과 사형당한 공작원 4명이 초병을 살해했다는 증거나 기록은 없다. 이에 대해 국가보훈부는 9월 26일 “과거사정리위 결정을 존중한다”면서도 “이와 별개로 특수임무유공자 등록은 특수임무유공자법에 따라 결정된다”는 입장을 거듭 밝혔다.
임성빈 씨와 함께 사형당한 김창구 씨 유족도 최근 특수임무유공자 신청을 했다. 하지만 인천보훈지청으로부터 ‘비해당자’라는 통보를 받았다. 김창구 씨 역시 임성빈 씨와 마찬가지로 초병을 살해해 군형법 제59조를 위반했다는 이유에서다. 52년 전 실미도 사건은 2023년 현재진행형이다.
김지영 기자 young@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