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 정부 외면, 노사 갈등, 배임 혐의 ‘암초’ 헤쳐야…포스코 “아직 정해진 것 없어”
10월 17일 재계에 따르면 포스코홀딩스는 최근 대표이사 선임과 관련한 이사회 운영 규정 개편안을 논의 중이다. 포스코홀딩스의 현행 이사회 규정은 현직 대표가 연임 의사를 밝힐 경우 타 후보를 모집하지 않은 채로 연임 여부를 우선 심사하도록 돼 있다. 포스코홀딩스는 현직 대표가 연임을 원하더라도 공모를 거쳐 타 후보들과 경쟁을 벌이도록 할 계획으로 전해진다. 얼핏 보면 현직인 최정우 회장에게 불리한 시스템이다. 하지만 최 회장이 회장 선임 과정에서 생길 수 있는 잡음을 사전 차단하기 위한 개편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재계 한 관계자는 “구현모 전 KT 대표가 3수 끝에 낙마하고 KT가 장기간 대표 부재 상황을 겪은 것을 보며 포스코도 깨달은 점이 있을 것”이라며 “안 그래도 여권의 시선이 차가운 상황에서 최대한 잡음을 없애려는 제스처를 취해야 연임 가능성이 열리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국감에 등장 않는 까닭이…
최정우 회장을 향한 윤석열 정부의 시선은 차갑기만 하다. 윤석열 정부 출범 후 최정우 회장은 대통령이 참석하는 재계 행사에서 늘 배제돼 왔다. 포스코 측은 그때마다 “다른 비즈니스 일정이 있다” 등의 해명을 내놨지만 이를 그대로 믿는 이는 드물다. 정권의 외면을 받으면 포스코그룹 회장직을 원활하게 수행하기 어렵다는 평가가 나온다.
포스코가 2000년 민영화된 이후 연임에 성공한 회장은 있었지만 두 번째 임기까지 제대로 마친 경우는 없었다. 모두 정권이 바뀐 후 중도 퇴임했기 때문이다. 최정우 회장의 임기는 내년 3월 주주총회까지다. 과거 선례를 살펴보면 두 번째 임기 만료를 앞둔 최 회장이 이례적일 정도다.
최정우 회장은 지난해에 이어 올해 국정감사에서도 여당 측 요구에 따라 국회에 출석할 예정이었다. 최 회장은 지난해 태풍 힌남노가 포항시를 휩쓸던 당시 골프를 치고 미술 전시회를 찾았다는 사실이 드러나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증인으로 채택됐다. 올해 국회 소환 사유도 골프와 연관돼 있다. 최 회장은 태풍 카눈이 북상하는 와중 사외이사들과 캐나다를 방문해 함께 골프를 쳤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그러나 최정우 회장은 올해 국정감사에 등장하지 않을 전망이다. 최 회장이 투자 유치를 위해 유럽 출장길에 올랐기 때문이다. 더불어민주당은 지난 10월 13일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산자위) 국정감사 도중 단독으로 전체회의를 열어 최 회장 대신 정탁 포스코인터내셔널 부회장을 증인으로 채택했고, 국민의힘 의원들은 이에 반발해 단체 퇴장하는 일도 벌어졌다. 재계 다른 관계자는 “최 회장이 야당 측 인사라는 점이 극명히 드러난 사례”라고 평가했다.
산자위 소속 여당 의원들은 이날 퇴장 직후 기자회견을 열어 “(야당이) 절대 다수 의석의 힘을 빌려 자당의 입맛에 맞는 증인 채택을 의결했다”며 “민주당이 최정우 회장을 지키는 호위무사가 됐다”고 비판했다. 이에 산자위 소속 민주당 의원도 입장문을 통해 “민주당 위원 중 누구도 최정우 회장의 증인 채택을 요청한 적이 없고, 오히려 해당 사안에 대해 답변할 수 있는 계열사 대표를 요청해 왔다”며 “그런데 갑자기 국민의힘은 최정우 회장을 채택하라고 요구하면서 아니면 합의 못 한다고 선언했다”고 반박했다.
#사상 첫 파업 위기
최정우 회장이 정권의 외면을 받는 가운데 포스코 사내 분위기도 심상치 않다. 포스코 노조는 사측과 24차까지 임단협(임금 및 단체협약) 교섭을 벌였으나 협상에 실패하고, 지난 10월 10일 중앙노동위원회에 단체교섭 조정신청을 냈다. 사실상 파업을 위한 절차에 돌입한 셈이다. 포스코 노조는 조합원 찬반투표만 거치면 바로 파업에 나설 수 있다. 포스코 노조가 파업을 진행하면 이는 포스코 창사 이래 첫 파업이다.
포스코 사측은 기본임금 16만 2000원 인상, 일시금 600만 원 지급, 격주 4일제 도입 등을 제시했다. 그러나 포스코 노조는 포스코의 매출 대비 인건비 비중이 4.4%에 불과하다며 임금 대폭 인상을 요구하고 있다. 포스코 노조원은 최근 1만 명을 넘어서 최정우 회장이 이를 무시하기는 어렵다.
포스코는 태풍 힌남노 피해 당시 필사적인 노력으로 “다시 짓는 게 낫다”는 말까지 나왔던 고로 3기를 모두 복구하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직원들의 노고에 대한 보상은 미미했고, 임원들만 거액의 보상을 받았다는 평가다. 포스코 직원의 평균 급여는 지난해 상반기 4950만 원에서 올해 상반기 5200만 원으로 5.05% 상승했다. 반면 같은 기간 최정우 회장의 보수는 18억 8400만 원에서 23억 8000만 원으로 26.33% 늘었다.
또 포스코홀딩스는 지난 4월 임원들에게 2만 7030주에 달하는 자사주를 ‘스톡그랜트’ 방식으로 지급했다. 스톡그랜트는 회사 주식을 무상으로 주는 방식의 인센티브다. 일정 기간이 지나야 행사할 수 있는 스톡옵션과 달리 바로 사용이 가능하다. 최정우 회장은 당시 포스코홀딩스 임원 중 가장 많은 주식을 받았다. 최 회장이 받은 주식은 1812주로 지급 당일 종가 기준 6억 원이 넘었다.
#심상찮은 움직임
포스코 사내에서도 최정우 회장을 겨냥하는 움직임이 감지된다. 최 회장은 회사 차량을 가족들에게 제공했다는 이유로 배임 혐의에 대한 수사를 받고 있다. 이 수사는 익명의 제보로 시작된 것으로 알려졌다. 재계 또 다른 관계자는 “최 회장의 행보를 잘 아는 지근거리 인사까지 ‘스크래치’를 내려 드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최정우 회장에 대한 구설수가 커지자 재계에서는 후임자에 대한 하마평이 오간다. 최근 들어서는 구체적인 후보의 이름까지 언급되고 있다. 포스코그룹의 전직 최고위 임원들은 물론이고, 국내 굴지의 대기업 출신 유명 전문경영인(CEO)의 이름도 거론된다. 일각에서는 KT의 사례에 비춰 ‘포스코 카르텔’ 파괴를 위해 외부 출신 회장이 등장할 가능성도 언급한다. 포스코는 민영화 이후 내부에서만 회장이 나왔다.
타 소유분산 기업과 다른 포스코의 지분구조도 최정우 회장 연임에 걸림돌이 될 전망이다. 포스코홀딩스의 최대주주는 지분율 7.72%의 국민연금이고, 이외에는 이렇다 할 대주주가 없다. 반면 KT는 신한은행, 현대자동차 등 대주주가 존재하고, KT&G는 외국계 투자은행이 최대주주다. 따라서 포스코그룹은 상대적으로 국민연금 입김이 거셀 수밖에 없다는 평가를 받는다.
포스코홀딩스 관계자는 향후 회장 선임 계획과 최정우 회장의 연임 가능성 등에 대해 “아직 아무것도 정해진 것이 없다”고만 밝혔다.
민영훈 언론인
박형민 기자 gody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