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가해 기업들도 따라하면 피해자 지원 어려움 더욱 커져…“SK케미칼 분담비율에 불만 표출” 해석도
환경부에 따르면 애경은 지난 5월 가습기살균제 피해구제 분담금 추가 부과 조처를 취소해달라는 소송을 지난 5월 서울행정법원에 제기했다. 옥시도 같은 달 앞으로 분담금을 낼 수 없다는 내용을 담은 공문을 환경부에 전달했다.
가습기살균제 참사는 가습기살균제를 사용한 사람들의 폐에서 섬유화 증세가 나타나면서 대두됐다. 12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피해구제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으며, 조사가 진행되면서 피해자들이 계속 늘어나고 있다. 환경부는 2017년 가습기살균제 피해구제법 제정에 따라 옥시, 애경, SK케미칼 등 18개 사업자에 총 1250억 원 규모의 분담금을 걷었다. 이후 분담금이 소진되자 올해 5월 환경부는 23개 사업자에 2차 분담금을 걷었다. 애경과 옥시가 2차로 부과한 분담금은 각각 100억 원, 704억 원이다.
가습기살균제 피해구제를 위한 분담금은 가습기살균제 피해자 지원을 위해 사용된다. 가습기살균제 피해구제를 위한 특별법에 따르면 분담금의 75% 이상을 사용했을 경우 정부가 가해 기업들에 추가로 분담금을 징수할 수 있다. 법적으로 가습기살균제 피해구제 기업 분담금은 반드시 내야 하며 기한을 넘길 경우 가산금이 붙고 내지 않으면 세금을 미납했을 때와 마찬가지로 재산 등을 압류해 처리할 수 있다.
애경과 옥시는 환경부가 추가 부과한 분담금을 내긴 했다. 하지만 2차 분담금을 지급한 후 태도를 바꿔 행정소송을 제기하거나 환경부에 분담금을 낼 수 없다는 취지의 공문을 전달한 것이다. 애경과 옥시의 태도에 대해 적반하장이라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환경단체 글로벌에코넷의 김선홍 상임회장은 “소비자들에게 광고를 해서 물건을 팔 때는 언제고, 분담금을 내지 못하겠다는 기업의 이중적인 태도에 분노밖에 일어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최예용 환경보건시민센터 소장은 “완전히 적반하장으로 나오고 있다”며 “2016년 국회 국정조사 및 청문회, 2019년 사회적참사특별조사위원회 청문회 등에서 애경이 가습기살균제 참사에 대해 사과한 적이 있다. 그런데 분담금을 내지 못하겠다고 소송을 제기했다는 건 과거에 했던 사과가 거짓말이었다는 거다”라고 말했다.
애경과 옥시가 앞으로 분담금을 내지 않으면 가습기살균제 피해구제가 더 어려워질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가습기살균제 피해자 채경선 씨는 “현재도 치료비로 1000원이 든다고 하면 실질적으로 구제금으로 받을 수 있는 것은 50원도 안 된다”며 “옥시랑 애경이 앞으로 분담금을 내지 않으면 이마저도 지원이 어려워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현재 가습기살균제 피해구제는 가해기업들이 낸 분담금과 정부가 2017년 출연한 금액으로 이뤄지고 있다. 기업분담금이 1250억 원, 정부 출연금이 225억 원이다. 기업 분담금 1250억 원 중 60% 이상을 애경과 옥시가 내고 있다. 기업분담금을 가장 많이 내고 있는 두 기업이 추후 분담금을 내지 않을 시 피해자 치료 지원이 더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 가습기살균제 피해자 A 씨도 “아직까지 피해자로 인정받지 못한 사람들도 많아 앞으로 피해자 수가 더 늘어날 수도 있어 분담금이 더 많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며 “분담금으로 피해자들의 최소한 치료비나 요양수당 등을 지급하는 건데 분담금을 내지 않으면 피해자들이 더 힘들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가습기살균제 피해구제는 2014년 처음 시작됐다. 한국환경산업기술원 가습기살균제 피해지원 종합포털 통계자료에 따르면 올해 9월 30일 누계 기준 가습기살균제 피해 관련 구제급여 신청자는 7870명이며 이 중 5176명이 구제 인정을 받아 구제급여 지급 대상자가 됐다. 이 대상자 중 구제급여를 지급받은 인원은 3669명이다. 피해구제를 시작한 지 10년이 다 돼가지만 여전히 피해구제 급여를 받지 못한 피해자가 남아 있다는 것이다. 가장 큰 규모의 기업분담금을 내고 있는 기업들이 분담금을 내지 않으면 피해구제가 지금보다 더 어려워질 것으로 예상된다.
애경과 옥시가 분담금을 내지 않으면 다른 기업들의 분담금도 걷기 어려울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옥시와 애경 이외에도 가습기살균제 피해분담금을 부과하는 기업으로는 SK케미칼, SK이노베이션, 롯데쇼핑, 홈플러스, LG생활건강, 이마트, GS리테일 등이 있다. 최예용 소장은 “다른 가해기업들은 조정안도 찬성하고, 기금도 냈지만 애경과 옥시의 입장을 주시하고 있을 것”이라며 “특히 애경이 행정소송에서 승소하면 냈던 돈을 돌려받을 수도 있어서 재판 결과를 지켜볼 것”이라고 말했다. 앞의 A 씨는 “가습기살균제 참사의 가장 책임이 많이 지고 있는 기업들이 분담금을 내지 않겠다고 하면 그 외 다른 가해 기업들도 똑같이 분담금을 내지 않으려 할 가능성이 있다”며 “그렇게 되면 분담금은 더 줄어들어 피해구제가 더 힘들어 질 것”이라고 말했다.
애경과 옥시가 분담금을 내지 않으려는 이유가 가습기살균제 원료물질을 제조한 SK케미칼의 분담금 비율을 현저히 낮게 조정한 것에 대한 불만이라는 해석도 있다. 가습기살균제 피해자 B 씨는 “나도 옥시 가습기살균제 단독 사용자라서 솔직히 옥시가 정말 싫다”며 “그런데 SK케미칼이 원료 물질을 만들었으니 옥시만큼 금액을 부담하는 게 맞다고 본다”고 말했다. 조순미 가습기살균제 피해자 단체 빅팀스 위원장은 “옥시와 애경 입장에서 원료물질을 만든 SK케미칼의 분담비율이 잘못됐다고 생각해 그것에 대한 압박으로 소송을 제기하거나 환경부에 공문을 보낸 것 같다”고 말했다.
옥시와 애경의 기업분담금은 합해서 60%가 넘어가지만 SK케미칼의 분담금 비율은 기업분담금 총액의 17%를 차지한다. 지난 9월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에서 열린 가습기살균제 피해구제 관련 공청회에서 옥시와 애경은 원료물질 제조업체 분담률을 높여야 한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애경에 가습기살균제 피해구제 분담금 추가 부과 조처를 취소해달라는 소송을 낸 이유에 대해 물었지만 애경 관계자는 “자세한 이야기는 다음달 24일 재판이 열리면 들을 수 있을 것 같다”며 “지금은 특별히 말씀을 드리기 어렵다”고 말했다. 애경이 제기한 소송의 첫 재판은 오는 11월 24일로 예정돼 있다. 옥시레킷벤키저에도 환경부에 분담금을 낼 수 없다는 공문을 전달한 이유가 무엇인지 물었지만 답변을 들을 수 없었다.
가습기살균제 피해구제 분담금에 대한 기업들의 반발에 대해 환경부 관계자는 “특별법에 따라 분담금 부과를 계속 진행할 예정”이라며 “그들의 의사는 의사일 뿐이고, 법에 따라 절차를 거쳐 진행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기업에서 제기한 소송이나 보낸 공문에 대해 따로 피해자들에게 유포할 수는 없다”며 “행정적인 사안이다 보니 알릴 수 있는 사항이 아니다”라고 전했다.
이민주 기자 lij9073@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