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값·소득·고용 등 조작’ 중간 감사 발표…여 ‘일벌백계’ 요구, 야 ‘지수 산출 방식 달라’ 방어
#부동산원 통계에 외압 행사 의혹
10월 19일 오전 국회 국토교통위원회는 한국부동산원과 주택도시보증공사(HUG) 등에 대한 국정감사를 진행했다. 이날 핵심 쟁점은 문재인 정부 통계조작 의혹이었다. 9월 15일 감사원은 문재인 정부 시절 청와대와 국토교통부가 2017년 6월부터 2021년 11월까지 총 94차례에 걸쳐 부동산원의 통계 작성에 부당한 영향력을 행사해 통계 수치를 조작하게 했다고 중간 감사 결과를 발표했다. 문재인 정부 인사들이 부동산뿐 아니라 가계소득, 고용 분야에서도 통계를 조작했다는 것이 감사원 판단이다.
감사원은 청와대(11명), 국토부(3명), 통계청(5명), 부동산원(3명) 등 22명에 대해 통계법 위반, 직권남용, 업무방해 등의 혐의로 검찰에 수사를 요청했다. 장하성 김수현 김상조 이호승 전 청와대 정책실장을 비롯해 홍장표 전 경제수석, 황덕순 전 일자리수석, 김현미 전 국토부 장관, 강신욱 전 통계청장 등이 수사 대상 명단에 올랐다.
통계 조작 사건을 배당받은 대전지검은 통계청, 부동산원, 국토부, 기획재정부, 고용노동부에 대한 압수수색을 한 데 이어 관련 실무자를 불러 조사하며 수사에 속도를 내고 있다. 통계청은 검찰 수사 대상에 오른 통계청 4급 직원 2명을 별도의 보직 없이 본청 발령을 냈다. 국토부는 1급 공무원 2명에 대한 수사 개시를 검찰로부터 통보받은 뒤 이들을 직위해제했다. 이들은 통계 조작을 요구한 곳으로 지목된 국토부 주택토지실 책임자인 주택토지실장과 주택정책관 등을 지냈다.
국민의힘은 국정감사에서 문재인 정부 통계 조작 의혹에 대한 일벌백계를 요구하고 나섰다. 서일준 국민의힘 의원은 “지역 부동산원 지사장이 국토부로 호출돼 소명을 해야 했고, 일선 조사원까지 국토부로 호출됐다고 하는데 원장님 이 사실을 알고 계십니까”라며 물으며 “감사원 발표 자료에 구체적 증언이 포함돼 있고 조작, 요구, 은폐라고 적시돼 있는 만큼 전 정권의 부동산 통계조작은 사실로 보인다”고 했다.
정동만 국민의힘 의원은 “부동산 통계 조작 과정에서 부동산원 직원들이 청와대에 수시로 방문했다. 공표 전 통계를 청와대에 제공하면서 절차도 무시했다”며 “통계법에 따르면 작성중인 통계나 작성된 통계를 공표 전에 제공 또는 누설할 경우 3년 이하 징역 또는 30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돼 있다”고 말했다. 아울러 “국민을 속이고, 시장을 왜곡시킨 문재인 정부 통계 조작은 일벌백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 의원은 “공표 전 통계를 청와대에 제공해도 됩니까. 어떻게 생각하냐”고 손태락 부동산원장에게 질의했다. 손 원장은 “법상으로 문제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답했다. 이어 정 의원은 “부동산원에 대한 청와대와 국토부의 외압 행사 관련한 경찰청 정보 보고가 있음을 알고도 조치가 안 됐다. 2021년 2월에 취임한 손 원장도 이 같은 사실을 파악하고 있었느냐”고 물었다. 손 원장은 “최근 감사원 결과를 보고 안 부분이 많이 있다”고 답했다.
박정하 국민의힘 의원은 문재인 정부가 통계 조작을 위해 ‘전국주택가격동향 업무세칙’에서 검증 조항을 삭제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박 의원은 “문재인 정부 시절 통계 조작이 있었다고 알려진 2017년 11월 ‘전국주택가격동향조사 업무 세칙’에서 가격 검증 및 심사 조항이 없어졌다”고 따져 물었다. 문재인 정부가 부동산 통계를 조작하기 위해서 검증 의무 조항을 삭제했다는 것이 박 의원 측 주장이다.
이에 대해 부동산원 관계자는 “검증 조항을 뺀 것은 같은 내용이 7조에 있어 중복을 피하기 위해 세칙을 손본 것”이라며 “지난해에는 주무부서 역할 등을 분명히 하기 위해 조항을 새로 만들었다”고 해명했다.
김정재 국민의힘 의원은 “KB부동산 통계와 부동산원 통계 숫자 차이가 아니라 부동산원 통계가 외압에 의해 조작됐다는 게 핵심 쟁점”이라며 “관계기관이 필요하다고 요청하면 통계를 사전에 받아도 된다는 것이 민주당 주장이다. 하지만 관계기관이 업무수행을 위해서 필요하다고 요청하는 건 작성된 통계만 해당된다. 문재인 정부가 보고받은 통계는 작성 중 통계인데, 이게 사전에 유출된 건 명백한 법 위반”이라고 말했다.
검찰의 칼날이 문재인 전 대통령으로까지 이어질 수 있을지 관심이 모아진다. 10월 20일 대전지검은 세종시에 있는 대통령기록관 등을 압수수색하며 통계 조작 의혹 당시 청와대 관련 문건을 확인하고 있다. 이번 압수수색은 10월 19일 시작됐으며, 검찰은 대통령 기록물 중 당시 관련 자료를 선별해 열람하는 방식으로 압수수색을 진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방어전 나선 민주당
민주당은 방어전에 나섰다. 우선 조오섭 민주당 의원이 중간 감사 발표를 지적했다. 그는 “진행 중인 감사는 비공개가 원칙이다. 국민적 관심이 크거나 감사 진행 상황을 공개하지 않을 경우 불필요한 의혹 제기 등이 우려되는 감사 사항은 공개할 수 있다”면서도 “최종 감사보고서 공개 전에 중간발표를 한 내역은 이명박 정부 1건, 박근혜 정부 4건이었는데 윤석열 정부는 1년 6개월밖에 안 지났는데 5건이나 된다. 문재인 정부 때는 (한 건도) 없었다”고 말했다. 이어 “참 이상하다. 보수 정권에서 중간 발표를 많이 한다. 국민들이 납득하기 쉽지 않을 것으로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조 의원은 “감사는 유죄 여부를 판단하는 자료 조사 단계에 불과하고, 위법 여부가 확정된 것도 아니다”며 “그런데 판사가 판결을 내리는 것처럼 공개하는 감사는 정치적 표적 감사일 수밖에 없다. 망신주기 감사다. 이는 전현희 전 국민권익위원장 사례 때도 이미 나온 거고, 그래서 공수처(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가 감사원 압수수색 등 수사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윤석열 정부는 검찰과 감사원 등 사정기관을 동원해서 전 정부를 표적 감사하고 있다고 생각이 든다”고 지적했다.
감사원 감사 방법에 대해서도 문제를 제기했다. 허영 민주당 의원은 “2013년 국제통화기금(IMF),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등이 공동 출간한 주택가격지수 가이드북에 따르면, 정확한 자료 생산을 위해선 조사 결과를 그대로 집계하는 것이 아니라 오류를 수정하고, 지나치게 값이 높거나 낮은 이상치 등을 보정하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며 “이것을 조작이라고 정치 감사하고 감사 조작을 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한준호 민주당 의원은 감사원 중간 감사 결과에 대해서 “수학을 단순히 산수로 보고 무식하게 접근한 방식이고, 의도가 있을 것”이라고 꼬집었다. 그는 “부동산원과 KB부동산 통계가 다르니 조작이라고 하는데, 부동산원은 제본스지수라는 기하평균을 내고 있다. KB는 칼리지수라는 산술통계를 내고 있다”며 “기하평균과 산술평균, 즉 지수 산정 방법이 다른데도 불구하고 기준일자만 맞춰서 비교하고 있다, 부동산원과 KB 통계가 같은 지수 산출 방식을 활용했다면 감사원 결과처럼 다른 결과값이 나왔겠냐”고 말했다.
한 의원은 “주중 조사는 통계보단 수량적 정보일 가능성이 있다. 주중 조사는 공표가 안 된다. 공표해서 여론을 조작하는 방법으로 활용된 게 아니다”며 “(당시 청와대가 보고받은) 속보치(7일간 조사 후 즉시 보고), 주중치(3일간 조사 후 보고)는 발표가 되지 않는 수치다. 공표를 해 여론조작을 할 방법으로 활용된 게 아니다. 또한 작성 중인 통계와 작성된 통계는 각각의 예외조항이 존재한다”며 김정재 의원 발언에 반박했다.
감사원에 따르면 문재인 정부 청와대 인사들은 국토부에 집값 변동률 ‘확정치’(7일간 조사 후 다음 날 공표)를 공표하기 전 주중치와 속보치를 보고하라고 요구했다. 이때 속보치와 확정치가 주중치보다 높게 보고될 경우 사유를 보고하라고 압박하거나 수치를 조작하라고 지시했다는 것이 감사원 판단이다.
손태락 한국부동산원장은 여야 의원들 질의에 대해 “통계작성 기관의 장으로서 이런 일로 심려를 끼쳐드린 데 대해 국민들에게 대단히 송구하다”고 고개를 숙이면서도 “수사 중인 사안으로 답변이 곤란하다”고 여야 의원들 대부분 질의에 즉답을 피했다.
허일권 기자 onebook@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