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0년 전통 ‘다카라즈카’ 소속 배우 투신 사망…언어 폭력 외 고데기 신체 폭력 확인
다카라즈카 가극단은 미혼 여성들로만 이뤄진 뮤지컬 극단이다. 한큐전철의 창립자 고바야시 이치조가 1913년 7월 창단했다. 현재도 일본을 대표하는 인기 극단으로 꼽힌다. 배우들은 전원 다카라즈카 음악학교 학생들과 졸업생으로 구성되는데, ‘다카라젠느’ 통칭 ‘젠느’라고도 불린다.
알려진 바에 의하면 “해당 음악학교는 입학 정원이 40명뿐이라 시험을 위해 따로 양성학원을 다니며 엄청난 노력을 쏟는 소녀들이 많다”고 한다. 입학하더라도 혹독한 훈련을 견디며 졸업해야만 다카라즈카 가극단 무대에 설 수 있다. 요컨대 ‘다카라젠느’는 그 좁은 문을 뚫고 선발된 인재들이다. 하지만 지나친 경쟁심은 비극을 부르고, 최악의 사태를 초래하기도 한다.
효고현의 한 아파트에 요란한 사이렌을 울리며 구급차가 달려온 것은 9월 30일 이른 아침이었다. 아파트 부지에 쓰러져 있던 것은 다카라즈카 입단 7년 차인 젠느, 아리아 키이였다. 경찰은 “아리아가 아파트 17층에서 살고 있었으며 옥상에서 추락했다”고 밝혔다. “외부 상처나 방어 흔적이 발견되지 않았고 침입 흔적이 없는 것으로 보아 극단적 선택을 시도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한다.
사태의 배경으로는 8개월 전 보도된 주간지의 ‘집단 괴롭힘 의혹’이 시초라는 의견이 많다. 주간문춘은 2023년 2월 9일호에서 “다카라즈카 가극단 5번째 조인 ‘소라구미’의 선배들이 고데기로 후배 A의 얼굴에 화상을 입혔다”면서 집단 괴롭힘 의혹을 제기했다. 기사에는 “이마에 쭈글쭈글 물집이 잡힐 정도로 화상을 입었으며 오랫동안 붉은 자국이 남았다”고 적었다. 이에 대해 당시 가극단은 “전혀 사실무근”이라며 왕따설을 부인한 바 있다.
아리아의 사망 직후 주간문춘(2023년 10월 12일호)은 “피해자 A가 아리아였다”는 사실을 밝히며 “그녀를 극단적 선택으로 몰아넣은 것은 가극단 내 만연한 괴롭힘이었다”고 공개했다. 또한 “2월 보도 직후부터 시작된 집요한 ‘범인 찾기’로 아리아가 힘들어했다”고도 했다. 아리아는 사망 전날인 9월 29일 연극 ‘파가드(PAGAD)’ 첫 무대에 올랐으며, 공연이 끝난 후 어머니에게 “정신적으로 붕괴하고 있다”는 취지의 메시지를 보낸 것으로 알려졌다.
사망 이틀 전인 28일엔 “선배들에게 집단 괴롭힘을 당했다”는 증언도 나왔다. 극단의 한 관계자는 “연습 중 선배 4명이 아리아를 둘러싸고 ‘거짓말쟁이’ ‘정신력이 부족하다’ ‘후배들 실수는 모두 네 책임’이라는 등의 언어폭력을 했다”고 주간문춘에 전했다.
파장이 커지자 극단 측은 공연 일정을 취소하고 자체 조사팀을 꾸려 아리아의 사망 경위를 조사하고 있다. 극단 측은 고데기 관련 보도에 대해 “내부 조사 결과 그런 일은 없었다고 한다”며 왕따설을 재차 부인했다. 다만 “실수로 고데기가 얼굴에 닿았다는 증언은 있어서 확인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주간문춘에 의하면, 다카라즈카 가극단 내 투신 사건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5년 전인 2018년 6월에도 선배들의 갑질로 음악학교 예과생(1년생)이 기숙사 발코니에서 투신한 사건이 있었다. 주간문춘은 “집단 괴롭힘이나 사건이 불거지면 그때마다 다카라즈카 가극단은 은폐하고 사실무근으로 일관해 왔다”고 지적했다. 더욱이 “부정적인 기사라도 실린 날이면 외부누설한 ‘범인’ 색출이 집요하게 이뤄진다”면서 “성추행 사건을 오랫동안 은폐해온 대형 연예기획사 쟈니스와 같은 구조”라고 비판했다.
집단 괴롭힘 문제는 재판에서도 드러난 적이 있다. 다카라즈카 음악학교 96기생 S 양이 2009년 학교를 상대로 소송을 낸 사건이다. 2008년 4월 입학한 S 양은 불과 반년 뒤 ‘절도’ 등을 이유로 퇴학 통보를 받았다. S 양은 “그런 사실이 없다”며 퇴학 취소를 제기했는데, 결국 법정에서 밝혀진 것은 S 양을 향한 동급생들의 집단 괴롭힘이었다.
학교 기숙사에서 S 양의 빨래가 쓰레기통에 버려져 있다거나 “죽어버리면 좋겠다”는 등의 언어폭력에 시달렸고, S 양이 끓인 차는 아무도 입을 대지 않는 음습한 왕따가 이어졌다. 뿐만 아니라 퇴학 처분의 직접 원인이 된 절도 행위조차 동급생이 거짓 밀고를 한 것이었다. 놀랍게도 거짓말의 계기는 “가장 예쁜 것은 음악학교 1학년 S 씨”라는 인터넷에 올라온 글 때문이었다고 한다. 재판부는 S 양의 주장이 옳다고 보고 퇴학 처분이 취소됐지만, 그녀가 꿈꾸던 다카라즈카 무대에 오르는 일은 이뤄지지 않았다.
화려하고 아름다운 무대를 보여주는 다카라젠느, 어째서 무대 뒤는 이토록 살벌할까. 현역 다카라젠느는 “결국 모두 1위라는 하나의 목표를 지향하는 경쟁자다. 그 속에서 발목잡기와 질투가 생겨난다. 오히려 그런 오기가 없으면 위로 올라갈 수 없다”고 밝혔다. 일본 매체 ‘여성세븐’은 “삐뚤어진 경쟁에는 다카라젠느가 처한 환경이 원인이 되고 있다”고 분석한다.
다카라젠느가 되어도 실태는 초봉 100만 원대, 연봉은 2000만 원 정도에 아르바이트도 금지다. 커리어를 쌓으면 CF나 잡지, TV 출연, 이벤트 등의 일을 할 수 있지만, 당연히 ‘인기’가 없으면 제의가 들어오지 않는다. 여성세븐은 “소속된 조 내 서열을 올리지 않으면 언제까지나 고달픈 생활로 감수해야 한다”며 “퇴단 후 연예계에서 활약할 수 있는 사람은 극히 일부. 재적 시 얼마나 서열을 올려놓느냐가 중요해진다”고 전했다.
“집단으로 통제하고 강요하는 다카라즈카 전통도 문제”라는 지적도 나온다. 현역 다카라젠느는 “무대에 서는 이상은 관객에게 최고의 무대를 선사해야 한다. 그런 대의명분 때문에 어떤 고난도 다 같이 맞선다는 분위기다. 다만 그것 때문에 엄격한 말이나 난폭한 말을 하는 것이 다반사다. 보기에 따라서는 갑질, 집단 폭력으로도 받아들여질 수 있다”고 털어놨다.
퇴단한 전 다카라젠느는 이렇게 말했다. “그 시절로 다시는 돌아가고 싶지 않다. ‘다카라즈카의 전통’ ‘선배도 걸었던 길’이라며 내가 당한 일을 후배들에게 반복했던 것을 이제는 뉘우친다. 화려한 외면을 유지하려고 하기 전에, 손을 써야 할 것은 척박한 가극단 내부의 참상이다.”
강윤화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