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거운’ 그녀의 치명적인 약점 하나…
▲ 1940년대 미국을 대표하던 섹스심벌 라나 터너. |
1940년대의 라나 터너는 1950년대의 마릴린 먼로와 동의어였다. 북유럽의 여러 혈통이 섞인 외모에 섹시한 글래머 바디의 그녀는 틴에이저 시절부터 극장에서 살았고, 패션 디자이너 아니면 배우가 되겠다는 꿈을 품었다. 15세 때 카페에서 콜라를 마시다가 우연히 영화 전문 기자의 눈에 띄면서 배우가 된 그녀는 <그들은 잊지 않을 것이다(They Won’t Forget)>(1937)로 데뷔했다. 단역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타이트한 파란색 스웨터를 입은 그녀의 모습에 남성 관객들은 ‘스웨터 걸’이라는 닉네임을 붙였고, 2차 대전 시기엔 대표적인 핀업 걸이 되었다.
MGM 전속이었던 그녀는 스물네 살 때 주급 4000달러를 받는 톱클래스 여배우가 되었고, 정부와 짜고 남편을 죽이는 <포스트맨은 벨을 두 번 울린다>(1946)로 영화사에 남을 팜파탈 자리에 등극했다. 35-23-35의 판타스틱 바디를 자랑하던 그녀의 섹스어필 이미지는 카메라 앞에서만 유효한 것이 아니었다. 라나 터너는 1940년대 할리우드를 대표하는 스타이자 플레이걸이었다. 당시 MGM 스튜디오의 간부 한 명은 이렇게 말했다. “그녀에게 성적 도덕관념이란 없었다. 스튜디오 인부 중에 타이트한 바지를 입은 근육질 남성을 보면, 언제나 자신의 분장실로 끌어들였다.”
“난 한 남자와 살며 일곱 명의 아이를 낳고 싶었다”던 그녀는 일곱 명의 남편과 여덟 번 결혼식을 올렸으며, 아이는 한 명뿐이었다. 하지만 사실 그녀에게 결혼은 별 의미 없었다. 그녀는 남편보다 열 배는 많은 수의 남자와 관계를 맺었다. 상대역을 맡은 남자 배우는 언제나 그녀의 연인이 되었다. 폴 뉴먼, 숀 코너리, 리처드 버튼, 렉스 해리슨, 에롤 플린, 미키 루니, 로버트 테일러, 제임스 스튜어트, 클라크 게이블, 존 가필드, 프랭크 시내트라, 타이론 파워, 커크 더글러스, 딘 마틴 등등. 그녀와 함께 침실에 들어갔던 배우들 명단은 할리우드 고전 시대 남성 스타의 명단과 거의 일치했다. 수많은 감독들과 제작자들도 그녀의 치마폭에 휩싸였으며, 벅시 시겔 같은 갱스터, 조 루이스 같은 복서, 하워드 휴즈 같은 거물 기업인 그리고 케네디까지 줄잡아 70여 명이 ‘스웨터 걸’의 연인이었다.
그렇다고 그녀의 삶이 화려한 것만은 아니었다. 1950년대 라나는 슬럼프를 겪었다. 세 번째 남편인 기업가 헨리 토핑의 사업이 흔들렸고, 네 번째 남편인 렉스 바커(타잔 캐릭터로 유명한 배우)와의 결혼도 4년 만에 끝났다. 우울증에 자살을 기도하기도 했고, 양성애자였던 배우 타이론 파워의 아이를 유산하기도 했다. MGM과의 계약이 끝나면서 든든한 후원자도 없어졌다. 이때 한 남자가 팬이라면서 매일 꽃과 메시지를 보내왔다. 자신을 ‘존 스틸’이라고 밝힌 그 남자는 만남을 청했다. 라나가 거절하자 그는 그녀의 집까지 찾아왔다. 큰 키에 허스키한 목소리와 검은 머리카락의 핸섬한 남자. 1957년 봄의 일이었다.
▲ 라나는 마피아의 중간보스 쟈니 스톰파나토(왼쪽)를 사귀면서 위기에 봉착했다. |
라나가 그의 정체를 안 건 <페이톤 플레이스>(1957)를 찍을 무렵이었다. 라나는 일단 놀랐다. 그리고 보수적인 1950년대에 여배우로서 경력을 유지하려면 그와의 관계를 끝내야 한다고 생각했고, 다른 남자들과 만나면서 쟈니를 멀리 했다. 하지만 쟈니는 집요했다. 그리고 잔인했다. 어느 날엔 소방 계단으로 라나의 아파트에 침입해, 베개로 그녀를 질식시켜 죽이려고도 했다. 피크는 영국에서 <다른 시간 다른 장소(Another Time, Another Place)>(1958)를 촬영할 때였다. 쟈니는 영국까지 따라갔고 촬영장 한구석에서 눈을 번뜩이며 그녀를 주시했다. 라나는 자신의 연기가 위축되는 걸 느꼈고 무엇보다 두려웠던 건 언론이었다. ‘마피아의 연인’이라는 사실이 보도되면 그녀의 이미지는 바닥으로 떨어질 게 분명했다. 둘은 충돌했고 라나가 경찰에 전화를 하려 하자 쟈니는 그녀의 목을 졸랐다. 게다가 쟈니는 라나가 상대역인 숀 코너리(라나 터너보다 9살 연하로 당시 28세)와 사귈까봐 노심초사했다. 하루는 총을 들고 위협하다가 코너리에게 총을 빼앗기고 얻어맞은 적도 있었다. 이 사건을 빌미로 라나 터너는 런던 경찰국에 전화해 쟈니를 추방하고 촬영을 마쳤다.
라나는 촬영 후 멕시코의 아카풀코 해변에서 휴가를 보낼 예정이었다. 비행기를 갈아타기 위해 코펜하겐 공항에 내렸을 때 그녀는 멕시코 행 티켓을 들고 자신을 기다리는 쟈니를 발견했다. 그렇게 원하지 않은 둘만의 휴가를 보낸 라나는 LA로 돌아왔고 <페이톤 플레이스>로 여우주연상 후보에 올라 오스카 시상식에 참석했다. 쟈니가 에스코트를 하겠다고 윽박질렀지만 그녀는 어머니와 딸 등과 함께 레드 카펫을 밟았다. 시상식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와 오랜만에 가족들끼리 시간을 가졌다. 집 밖에서 몇 시간 동안 기다리던 쟈니는 라나에게 다가갔고, 둘은 심하게 다투었으며, 라나의 얼굴엔 멍이 들고 말았다. (다음 호에 계속)
김형석 영화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