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탄대로 달리다 월드컵 실패로 행정가 변신…그라운드 복귀 후 제2의 전성기 ‘활짝’
평소 냉정해 보이는 표정이 트레이드 마크인 홍명보 감독도 활짝 웃는 모습을 보였다. 행정가 생활을 하다 다시 현장으로 돌아온 2021년 이후, 두 번의 리그 우승을 달성했다. 지도자로서 제2의 전성기를 열었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위기 넘긴 2연패
지난 시즌 울산에 17년 만의 리그 우승을 안겼으나 홍명보 감독은 안주하지 않았다. 우승에 큰 공을 세운 공격수 마틴 아담(헝가리)을 보유했으나 주민규라는 또 다른 대형 공격수를 영입했다. 루빅손(스웨덴), 보야니치(스웨덴), 아타루(일본), 김민혁 등을 영입하며 보강에 집중했다. 선수단에는 "작년 우승을 누가 기억하나, 어제 내린 눈이다. 보이지도 않는다"며 경각심을 가질 것을 요구했다.
개막 직후부터 선두권으로 치고 나가며 시즌 내내 1위 자리를 지켰다. 상대에 선제골을 내주더라도 동점을 만들거나 역전을 해내는 등 지난 시즌 우승으로 만든 '위닝 멘털리티'를 선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연속 우승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시즌 내내 선두를 달렸으나 팀 내부적으로 위기도 있었다. 여름 이적시장에서 울산은 주전 미드필더 박용우를 알 아인(아랍에미리트)에 내줬다. 팀의 수비를 보호하고 경기를 조립하는 박용우의 공백은 컸다. 이전까지 리그에서 2패만 내줬으나 박용우가 빠진 울산은 5패를 기록했다. 이에 더해 주요 자원들이 아시안게임에 차출돼 어려움은 배가됐다. 그럼에도 홍명보 감독은 승점 손실을 최소화하며 우승을 거머쥐었다. 선수 활용 폭을 다양하게 가져가며 승점을 쌓았고 마침내 2연패를 달성했다.
#국가대표 상처 치유
홍명보 감독은 선수 시절 말미, 은퇴 이후 행정가가 되겠다는 진로를 밝힌 바 있다. 하지만 당시 위기를 맞은 대표팀 상황에, 다급해진 대한축구협회는 그를 코치로 불러들였다.
갑작스레 시작한 지도자 생활이지만 차분히 단계를 밟아 나갔다. 코치의 일원으로 2006 독일 월드컵에 참가한 그는 동남아에서 열린 2007 아시안컵에서는 수석코치 신분이 됐다. 2009년부터는 본격 감독직에 올랐다. U-20 월드컵에서 구자철, 김영권 등을 주축으로 한 대표팀을 이끌고 8강 무대를 밟았고 2010 광저우 아시안게임에서 동메달을 획득했다. 2012 런던 올림픽에도 메달 획득에 성공, 선수뿐 아니라 지도자로서도 성공적인 커리어를 작성했다.
A대표팀이 흔들리는 상황에서 그는 다시 한 번 부름을 받았다. 2014 브라질 월드컵 본선 직전 지휘봉을 잡고 대회에 임했으나 조별리그 3경기 1무 2패로 맥없이 무너졌다. 월드컵 실패의 원흉으로 지목되며 많은 지탄을 받았다. 당초 계약은 월드컵 이듬해 아시안컵까지였고 성과에 따라 다음 월드컵까지 재계약할 수 있는 옵션도 있었으나 월드컵에서 돌아온 직후 사퇴를 해야 했다. 이어 중국 무대로 떠났으나 강등을 경험하는 등 실패를 반복했다. 일부에선 '더 이상 지도자 생활을 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냉정한 평가를 내리기도 했다.
이후 홍명보 감독의 선택은 행정가였다. 월드컵을 앞두고 또 다시 혼란을 겪던 대한축구협회에 전무이사로 취임했다. 김판곤 국가대표 감독선임위원장을 선임하고 파울루 벤투 감독과 김학범 감독 등을 취임시키는 등 약 3년간의 행정가 행보는 긍정적 평가를 받았다.
협회 전무이사 임기를 마친 홍명보 감독은 울산의 요청을 받고 그라운드로 돌아왔다. 당시 울산은 수년간 투자를 지속하며 우승을 염원하던 시기였다. 홍 감독 취임 직전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에서 우승해 '잘해도 본전'이라는 이야기가 나올 수 있는 상황이었다. 취임 첫해 리그 준우승으로 아쉬움을 남겼으나 2년 차부터 연속 우승으로 지도자 생활 중 '제2의 전성기'를 열었다.
2023시즌을 치르는 중 울산은 홍명보 감독과 재계약을 발표했다. 공식 발표에는 2026년까지 홍 감독과 함께하는 계약 기간만 담겼다. 재계약에 따른 연봉은 10억 원으로 알려졌다. 이는 국내 프로 스포츠 지도자 중 첫 10억 원대 연봉이다. '영원한 리베로'로 불리던 선수 시절에 이어 지도자로서도 성공시대를 이어가고 있는 홍명보 감독이다.
#카리스마의 대명사
홍명보 감독은 매경기 참신한 전술을 들고 나와 승리를 가져가는 화려한 '전술가형 감독'은 아닌 것으로 평가받는다. 올림픽, 월드컵 등에 나서던 국가대표 감독 시절부터 두 명의 미드필더를 두고 안정적으로 중원을 지키는 4-2-3-1 포메이션을 선호한다. 해외 축구 정보 사이트에서도 홍 감독이 선호하는 포메이션으로 이를 못 박았을 정도다.
울산에서도 디테일한 변화는 있었지만 큰 틀은 유지하는 선택을 했다. 하지만 선수단을 관리하고 선수들에게 동기부여를 하는 측면에서는 최고라는 평가다. 특히 최근 국내 리그에서 각 구단이 자체적으로 제작하는 다큐멘터리 콘텐츠가 발달하며 라커룸 내부나 훈련 중 상황이 팬들에게 전달되고 있는데, 홍명보 감독이 선수들을 질타하는 과정에서 라커룸 물품을 걷어차는 등 다소 과격한 모습도 그대로 공개됐다. 이 같은 장면은 종종 이슈로 떠오르기도 했다.
축구계 인사들은 "평소 절대 저렇게 감정을 표출하는 사람이 아니다. 그런 점을 알기에 감독이 저런 모습을 보이면 선수단에 각성 효과가 있는 것"이라고 짚었다. 한 관계자는 "오히려 홍명보 감독이기에 이런 상황이 나오는 것"이라며 "홍 감독이 딱딱한 사람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어떤 면에서는 굉장히 열려 있다. 이미 2012년 올림픽을 준비하는 과정에서도 다큐 제작에 동의한 사람이다. 홍명보라는 사람이 감독이기에 울산에서 그런 영상을 제작하고 팬들이 즐길 수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홍 감독과 선수 시절을 함께하기도 했던 이상윤 MBC 스포츠플러스 해설위원은 "선수 때도 '카리스마의 대명사' 아닌가. 훈련이나 경기 중 뒤통수가 따가워서 뒤를 돌아보면 후배인데도 홍 감독이 강한 눈빛을 쏘고 있었다(웃음). 그때도 말 한마디에 무게감이 있었다"며 "울산 정도 더블 스쿼드를 구축한 팀이라면 출전 시간이 적은 선수가 있을 수밖에 없다. 그러다보면 팀 안팎으로 불만이 터져 나오는데 울산은 그런 잡음이 없었다. 그런 관리가 홍 감독의 힘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홍 감독은 현역 시절 국가대표 등 팀의 주장을 여러 차례 역임했다. J리그에서 뛰던 시절에도 리그 최초 외국인 주장으로 활약하기도 했다.
이 해설위원은 홍 감독의 축구에 대해서는 "이번 시즌 초반 새로운 면을 발견하기도 했다. 울산을 상대하는 팀은 다들 수비적으로 내려서는 선택을 한다. 거기에 대응하는 울산이 다양한 옵션으로 상대를 공략하며 반짝이는 모습을 보였다"면서 "박용우가 이탈하면서 그런 모습을 지속적으로 가져가지는 못하더라. 공백을 완벽하게 메우지는 못한 것 같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홍 감독과 해외 지도자와 비교를 했을 때, 펩 과르디올라나 위르겐 클롭 같은 전술가적인 유형은 아니다. 과거 맨유를 이끌었던 알렉스 퍼거슨 감독 유형에 가깝다고 본다. 결국은 결과를 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홍명보 감독의 말대로 우승은 어제 내린 눈이다. 홍 감독과 울산은 이어지는 AFC 챔피언스리그, 2024시즌 K리그에서 또 다시 성과를 내야 한다. 다가오는 겨울 과제는 선수단 구성이다. 울산은 평균 연령 28.7세로 리그에서 가장 나이가 많은 팀이다. 성공시대를 이어가는 홍명보 감독이 향후 어떤 모습을 보일지 궁금증을 자아낸다.
김상래 기자 scourge@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