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터운 선수층이 최고의 무기로 작용…가장 큰 우승 원동력은 염경엽 감독 리더십”
2002년 1차 지명으로 LG에 입단했던 박 위원은 프로 첫 시즌에 한국시리즈 무대를 밟았다. 플레이오프 5차전 MVP를 받을 정도로 포스트시즌에서 좋은 활약을 펼쳤던 박용택은 LG가 삼성한테 2승 4패로 패하는 바람에 우승이 좌절됐던 경험을 잊지 못한다. 이후 10년 동안 암흑기를 겪었던 LG의 간판타자 박용택으로선 ‘가을야구’에 대한 회한이 클 수밖에 없다.
17일 서울 강남의 한 음식점에서 만난 박용택 해설위원은 LG 우승 확정 당시의 심경을 묻자 “기분이 묘했다”는 말로 다음과 같은 내용을 설명했다.
“먼저 감동적이고, 감격스럽긴 했다. 내 인생의 절반인 20년을 LG 트윈스와 함께했는데 그 팀이 29년 만에 한국시리즈 우승을 이뤘으니 얼마나 감격스러웠겠나.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아쉬움도 컸다. ‘이 우승이 뭐라고 난 19년 동안 한 번도 경험하지 못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난해 은퇴식 전에 우승했다면 또 다른 감정이 들었을 것이다. 정말 오랫동안 기다리고 소원했는데 그걸 은퇴 후 야구장 밖에서 바라봐야만 했고, 선수들이 축하의 세리머니를 하는데 난 선수들이 느끼는 그 감정을 만끽할 수 없다는 현실이 조금 슬프기도 했다.”
박 위원은 우승 직후 LG에서 동고동락했던 구단 관계자들과 지도자들이 떠올랐는데 가장 감동을 준 이들은 잠실야구장을 노란색으로 물들인 LG 팬들이었다고 한다.
“LG가 우승하기 전부터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 선수들의 활약에 환호와 탄식을 반복하던 팬들이 우승이 확정되자 서로 부둥켜안고 눈물 흘리며 기뻐하는 모습을 보니까 나도 모르게 거기에 빠져들게 되더라. 얼마나 좋으면 저런 감정을 표출할까 싶었다. 우승 이후 많은 분들로 부터 연락을 받았다. 나를 아주 잘 아는 지인들은 “우승해서 기쁘긴 하지만 박용택이 없어 아쉽다”라고 말하거나 “우승은 축하할 일인데 기분이 좀 그러니 소주나 한잔하자”는 사람들도 있었다. 내가 선수 생활하면서 얼마나 우승을 원하고 기다렸는지 잘 알기 때문에 그런 내용을 보낸 것 같다.”
박 위원이 보는 LG의 한국시리즈 우승 요인은 무엇일까. 그는 LG의 두터운 선수층을 꼽았다.
“해설을 위해 현장을 가보면 상대 팀 감독들이 가장 많이 하는 얘기가 LG는 상대하기 까다로운 팀이라는 내용이었다. 보통 한 경기에 두세 번 찬스가 나오기 마련인데 LG랑 하면 매 이닝 찬스를 내주게 된다면서 매 이닝이 위기라 투수 교체 타이밍을 잡는 게 정말 어렵다고 말씀하시더라. 투수들도 지난해 구원왕인 고우석과 홀드왕인 정우영이 올 시즌 아프거나 부진에 빠질 때가 있었는데 무너지지 않고 다른 선수들이 그 자리를 메워줬다. 그리고 정규시즌 우승 확정 후 모든 투수들이 컨디션 조절 잘해서 7, 8명의 투수들이 필승조로 활약했다. 이런 LG를 어느 팀이 이길 수 있겠나. LG의 두터운 선수층은 최고의 무기가 될 수 있었다.”
한국시리즈 3차전을 현장에서 중계한 박 위원은 3-4 상황에서 LG가 박동원의 홈런으로 역전을 이뤘고, 재역전을 허용했다가 마지막 오지환의 3점포로 다시 승기를 가져온 상황을 보고 “이번 한국시리즈는 박동원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한다.
“9회초 오지환의 3점포도 인상적이었지만 3차전 6회 박동원의 투런포가 한국시리즈 전체를 통틀어 가장 중요한 홈런이었다고 생각한다. 그 역전 투런포가 없었다면 이후 오지환의 3점포도 나오기 어려웠을 것이다. 3차전 박동원의 투런포는 한국시리즈 우승의 중요한 터닝 포인트로 작용했다.”
LG의 상징인 ‘유광 점퍼’는 박 위원의 작품이나 마찬가지다. 2011시즌 초반 LG가 좋은 성적을 이어가자 선수 박용택은 인터뷰를 통해 “LG 팬들은 이제 장롱에 묵혀둔 유광 점퍼를 꺼내라”라는 내용의 메시지를 전달했다. 그러나 그 해 LG는 ‘가을야구’에 오르지 못했고, 박 위원의 당시 메시지는 놀림거리가 됐다. 그 후 박 위원한테는 ‘유광택’ ‘잠바택’이라는 별명이 추가됐다. 박 위원은 잠시 생각에 잠기다 유광 점퍼 관련해서 이런 내용을 풀어낸다.
“그 말을 할 때까지만 해도 팀 성적이 정말 좋았다. 2011년 5월까지 팀 성적이 상위권에 있었던 터라 인터뷰할 때 숨어있는 LG 팬들 모두 나오라고, 옷장에 있는 유광 점퍼들 다 꺼내라고 말한 게 성적이 떨어지면서 가을야구에 실패했고, 이후 조롱의 대상이 되면서 LG의 상징이 됐다. LG의 우승을 염원하는 팬들은 가을에 입는 점퍼를 여름부터 입고 다니거나 성적이 좋지 않아 화가 난 일부 팬들은 유광 점퍼를 불에 태우기도 했다. 그런 유광 점퍼를 이번 한국시리즈 동안 원 없이 볼 수 있었다. 모두 즐겁고 행복한 기분으로 옷장에서 꺼내 입고 다니셨을 거라고 믿는다.”
박 위원은 LG 우승의 가장 큰 원동력은 염경엽 감독의 리더십이라고 설명했다. 염 감독이 KBSN스포츠 해설위원으로 활동할 때 야구와 관련된 많은 대화를 나누며 염 감독의 인간적인 면모를 엿볼 수 있었다는 박 위원은 “오랜 현장 경험과 야구 지식, 노하우 등이 한데 어우려져 올시즌 성적을 내는 강팀으로 LG를 이끌었다”며 염 감독의 리더십을 높이 평가했다.
이영미 스포츠전문기자 riverofly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