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생정신 돋보인 켈리는 재계약 약속받아…선수들 두둑한 ‘포스트시즌 배당금’ 기다려
LG는 1995년부터 2022년까지 28시즌 연속 우승에 실패해 롯데 자이언츠(31년)에 이은 역대 최장기간 2위 기록을 이어왔다. 그러나 29시즌 만인 올해 마침내 '한국 프로야구 챔피언' 타이틀을 되찾으면서 불명예 기록 행진을 중단했다. 특히 올해 우승은 LG가 잠실구장에서 한국시리즈 피날레를 장식한 첫 번째 순간이라 더 뜻깊었다. 1990년엔 인천, 1994년엔 대구에서 우승 세리머니를 했던 LG는 2023년 마침내 잠실에서 마지막 승리를 거두고 홈팬들 앞에서 우승 축포를 터트렸다. 2만 3500석을 가득 메운 LG의 열성팬들은 뜨거운 환호와 눈물로 선수들과 우승의 감격을 공유했다.
#LG, 창단 후 세 번째 우승까지
LG가(家)의 야구 사랑은 세상에 익히 알려져 있다. 특히 야구단을 향한 고(故) 구본무 LG그룹 선대회장의 애정은 남달랐다. 럭키금성 시절이던 1990년 거액을 들여 MBC 청룡 야구단 인수에 앞장섰고, 새로 출발하는 야구단의 이름을 'LG 트윈스'라고 지었다. 럭키의 영문 이니셜 'L'과 금성의 영문 이니셜 'G'를 합친 이름이었다.
서울을 연고로 하는 LG는 초대 구단주인 구 선대회장의 전폭적인 지원 속에 첫해부터 통합 우승을 일궜다. 당대 최강팀이었던 해태 타이거즈의 4연패 독주를 끝내고 서울 연고 팀 사상 첫 우승을 차지했다. 한국시리즈에서 홀로 2승을 따낸 에이스 김용수가 MVP로 뽑혔고, 데뷔하자마자 '우승 포수'가 된 김동수가 정규시즌 신인왕에 올랐다.
LG는 4년 뒤인 1994년 또 우승했다. '스타 군단' LG가 완벽한 투타 밸런스를 뽐내며 승승장구하자 전국에 '신바람 야구' 신드롬이 일었다. 그해 입단한 류지현-서용빈-김재현 신인 삼총사는 단숨에 구단의 간판스타가 됐다. 한국시리즈에선 김용수가 1승 2세이브를 올려 또 MVP로 선정됐다. 구 선대회장은 이듬해 아예 그룹명을 'LG'로 바꿔 버렸다.
그러나 그 후 LG가 세 번째 우승 트로피를 받아들기까지는 29년의 세월이 더 필요했다. 인기와 실력을 빠르게 키워 단숨에 정상으로 질주한 LG는 이후 오랜 암흑기를 겪었다. 1997년과 1998년, 2002년 한국시리즈 준우승을 끝으로 내리막길이 시작됐다. 2003년부터 10년 연속 포스트시즌 무대를 밟지 못했다.
2013년 정규시즌 2위로 발돋움하면서 반등에 성공하는 듯했지만, 2015년 다시 9위로 처졌다. 2019년부터 지난해까지는 4년 연속 포스트시즌 진출에 성공하고도 매번 준플레이오프나 플레이오프에서 도전을 멈췄다. "우승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도리어 선수들의 발목을 잡은 탓이다.
염경엽 감독을 선임하고 새로 출발한 올해, LG는 전열을 재정비했다. 1994년 우승 때처럼, 개막 직후부터 선두권으로 치고 나갔다. 시즌 초반엔 SSG 랜더스·롯데 자이언츠 등과 '3강'을 이뤘지만, 달이 바뀌면서 경쟁 팀들은 하나씩 떨어져 나갔다. 6월 27일 SSG를 꺾고 선두로 도약한 뒤엔 순위표 맨 윗자리에서 내려오지 않았다. 올스타 브레이크 직후 7연승을 달려 독주 체제까지 굳혔다. 강력한 불펜이 버티는 '지키는 야구'와 팀 타율·출루율·장타율 1위의 막강한 타선을 앞세워 순조롭게 정규시즌 우승을 해냈다.
21년 만에 치른 한국시리즈에서도 LG는 거침없었다. 잠실에서 열린 1차전을 KT에 내줬지만, 이후 2~5차전을 내리 이겼다. 2차전과 3차전 모두 경기 막판 역전 홈런으로 승부를 뒤집는 명승부도 연출했다. 2차전에서는 박동원이 8회 말 역전 결승 2점홈런을 터트렸고, 3차전에서는 오지환이 9회 초 역전 결승 3점포를 쏘아올렸다. 시리즈의 흐름이 사실상 LG 쪽으로 완전히 넘어온 순간이었다. 5차전 9회 초 2사 후, 마무리 투수 고우석이 KT 마지막 타자 배정대를 2루수 플라이로 잡아내면서 LG는 한국시리즈 4번째 승리를 확정했다. 유광점퍼를 입은 팬들의 함성 속에 29년간 LG를 짓누르던 우승의 한도 훌훌 날아갔다.
#'MVP 롤렉스' 주인은 오지환
올해 한국시리즈 최고의 화제였던 'MVP 롤렉스'도 마침내 주인을 찾았다. LG 주장이자 주전 유격수인 오지환(33)이다. 앞서 언급한 구 선대회장은 1997년 해외 출장을 떠났다가 LG의 세 번째 우승을 기원하면서 롤렉스 손목시계를 샀다. 당시 돈으로 8000만 원 상당의 고가였다. 구 선대회장은 이 시계를 구단에 건네면서 "다음 한국시리즈 최우수선수(MVP)에게 선물하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끝내 그 시계의 주인공을 만나지 못한 채 2018년 세상을 떠났다. 그 후 LG 선수들은 모두 "내가 롤렉스 시계의 주인이 되겠다"는 꿈을 안고 뛰었다.
오지환은 올해 한국시리즈 MVP로 선정되면서 LG 구단 금고 속에 26년간 잠들어 있던 이 시계를 품에 안게 됐다. KBO 기자단 투표에서 총 93표 중 80표(86%)의 압도적인 지지를 얻었다. 3차전 결승 홈런을 포함해 5경기에서 타율 0.316, 홈런 3개, 8타점으로 맹활약한 덕이다. 2009년 LG 1차 지명으로 입단한 오지환은 2029년까지 LG와 장기 계약을 한 '원 클럽 맨'이다. 심지어 그는 입단 전에도 LG 팬이었다. LG가 한국시리즈 준우승을 한 2002년부터 '어린이 팬'이 됐고, 경기고 3학년 때인 2008년 자신의 소셜미디어에 "내심 LG는 내가 필요하겠지? 빨리 가고 싶다 LG 트윈스여!"라고 썼던 일화도 유명하다.
그런 오지환에게 이 시계는 '꿈'의 상징이었다. LG 구단의 역사와 전통이 서린, 하나밖에 없는 '우승 유산'이어서다. 그는 한국시리즈 하루 전 미디어데이에 참석해 "무조건 내가 롤렉스 시계를 갖겠다. 주장 직권으로 다른 선수를 지명하라고 해도 '나'에게 주겠다"며 의욕을 보였다. 그 모습을 본 투수 임찬규가 "만약 내가 MVP가 되더라도 그 롤렉스 시계는 형에게 주겠다. 나는 형에게 새 롤렉스를 사달라고 하면 된다"고 말했을 정도다. 오지환은 결국 각오 이상의 활약으로 LG가 배출한 역대 두 번째 한국시리즈 MVP에 올랐다. 우승이 확정되는 순간, 동료들과 부둥켜안고 뜨거운 눈물을 쏟아냈다.
그러나 정작 롤렉스 시계를 진짜로 받게 되는 순간이 오자 오지환은 한발 물러섰다. 그는 "내가 그 롤렉스 시계를 실제로 차고 다니기엔 부담이 된다. 그 시계는 선대회장님의 유품이기 때문"이라며 "일단 (현 구단주인) 구광모 LG그룹 회장님께 시계를 드리고, 나는 요즘 시대에 어울리는 다른 기념 시계를 받았으면 좋겠다. 선대회장님이 남기신 롤렉스 시계는 역사적인 의미가 있으니 (구단 사료실처럼) 많은 사람이 볼 수 있는 곳에 전시하는 게 더 좋을 것 같다"고 털어놨다. 그는 또 "그동안 LG 팬분들이 오래 기다리신 우승을 할 수 있게 돼 정말 좋다"라며 "기쁘고 울컥한 느낌이 든다. 그동안 LG에서 함께 야구했던 선배들도 많이 생각난다"고 감격했다.
#'염VP' 주인공과 켈리의 재계약
한국시리즈 공식 MVP는 오지환에게 돌아갔지만, LG 포수 박동원(33)과 투수 유영찬(26)도 특별한 개인상을 받게 됐다. 염경엽 LG 감독이 직접 고른 '염VP(염경엽+MVP)'로 뽑혔기 때문이다. 염 감독은 한국시리즈를 앞두고 '우승 공약' 하나를 내걸었다. "공식 MVP 외에 한국시리즈에서 맹활약한 선수에게 사비로 상금 1000만 원을 주겠다"는 내용이었다. 1000만 원은 기자단 투표로 뽑는 한국시리즈 MVP 상금과 똑같은 금액이다.
박동원은 2차전과 3차전에서 중요한 홈런을 때려내 시리즈 중반까지 오지환과 한국시리즈 MVP 경쟁을 펼쳤다. 그러나 오지환이 4차전에서도 3경기 연속 홈런 행진을 이어가면서 확실히 승부가 갈렸다. 자연스럽게 박동원은 유력한 '염VP' 수상 후보가 됐다. 그와 동시에 4년 차 불펜 투수 유영찬도 염 감독의 눈도장을 받았다. 유영찬은 한국시리즈 3경기에서 6이닝을 소화하면서 3피안타 1실점으로 역투했다. 특히 선발투수 최원태가 1회도 못 채우고 내려갔던 2차전에서 눈부신 활약을 했다. 5회 2사 1·2루에서 LG의 여섯 번째 투수로 마운드에 올라 7회까지 2⅔이닝을 완벽하게 막아냈다. 극적인 역전승의 발판을 마련한 일등공신이었다. 염 감독은 우승을 확정한 뒤 "박동원과 유영찬에게 500만 원씩 나눠줄 생각이다. 박동원도 잘했지만, 유영찬도 마운드의 숨통을 틔워주는 역할을 잘 해냈다"고 칭찬했다.
그러나 염 감독은 시상식 이후 열린 선수단 회식에서 두 선수 모두에게 1000만 원씩 주기로 마음을 바꿨다. 박동원이 염 감독을 찾아와 "둘 다 1000만 원씩 주시면 안 되냐"고 요청했기 때문이다. 알고 보니 둘의 동반 수상 소식을 들은 LG 선수들이 유영찬의 올해 연봉(3100만 원)을 언급하면서 "FA(프리에이전트)로 60억 원을 번 박동원이 유영찬에게 상금을 양보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 게 그 배경이었다. 압박(?)을 견디다 못 한 박동원이 결국 감독에게 'SOS'를 쳤고, 우승으로 기분이 좋았던 염 감독은 망설임 없이 상금을 두 배로 올렸다는 후문이다.
이뿐만 아니다. 장수 외국인 투수 케이시 켈리(33)는 한국시리즈에서 보여준 희생정신 덕에 MVP보다 더 값진 '재계약' 약속을 받았다. 2019년 입단한 켈리는 지난 4년간 명실상부한 LG의 에이스로 활약했지만, 올해 정규시즌에는 전반기 평균자책점 4.44를 기록하면서 눈에 띄게 흔들렸다. 또 다른 외국인 투수 아담 플럿코가 전반기 11승 3패, 평균자책점 2.21로 맹활약한 것과 대조적이었다. 우승을 노리던 LG는 한때 켈리의 교체까지 검토하다 적임자를 찾지 못해 포기하기도 했다.
그러나 후반기 들어서는 상황이 달라졌다. 부상으로 이탈한 플럿코가 복귀를 차일피일 미루는 사이 켈리가 다시 에이스의 무게를 짊어졌다. 후반기 12경기에서 4승2패, 평균자책점 2.90으로 살아나면서 위기에 빠진 팀을 지켜냈다. 한국시리즈에서도 마찬가지였다. 플럿코는 재활 방식과 실전 복귀 시점을 놓고 구단과 갈등을 빚다 끝내 짐을 싸서 미국으로 돌아갔지만, 켈리는 1차전(6⅓이닝 2실점 1자책점)과 5차전(5이닝 1실점)에서 연이어 호투하면서 에이스의 역할을 다했다.
염 감독도 켈리의 희생정신과 책임감을 가장 높이 사면서 이와 관련한 에피소드 하나를 공개했다. 3차전을 앞두고 켈리에게 "혹시 팀이 지면 (사흘만 쉬고) 4차전 선발로 나갈 수 있겠느냐"고 묻자 켈리가 흔쾌히 "그렇게 하겠다"고 답했다는 것이다. LG가 3차전을 이겨 켈리의 4차전 등판 계획은 없던 일이 됐지만, 염 감독은 그 순간 '내년 시즌에도 함께하겠다'는 마음을 굳혔다. 염 감독은 "팀을 먼저 생각하는 켈리의 마음이 참 좋다. 그런 외국인 선수가 한 명 있으면, 나중에 새로운 외국인 선수가 왔을 때도 팀에 큰 도움이 된다"며 엄지를 치켜세웠다.
#MVP 아니어도 두둑한 '가을 보너스'
MVP와 '염VP'를 놓친 선수들도 '우승 보너스'는 모두 함께 받을 수 있다. 두둑한 포스트시즌 배당금이 이들을 기다린다. KBO리그 규정 47조 '수입금의 분배 항목'에 따르면, KBO는 포스트시즌 입장 수입 중 행사 진행에 필요한 제반 비용을 제외한 수익금을 포스트시즌에 진출한 5개 팀에 고루 분배한다. 정규시즌 우승팀이 총 배당금의 20%를 먼저 가져가고, 나머지 액수를 한국시리즈 우승팀(50%), 준우승팀(24%), 플레이오프에서 패한 구단(14%), 준플레이오프에서 패한 구단(9%), 와일드카드 결정전에서 패한 구단(3%) 순으로 나눠준다. 정규시즌과 한국시리즈 통합 우승을 차지한 LG는 올해 구단에 배분되는 수익금의 60%(20%+잔여 80%의 절반)를 확보할 수 있다는 의미다.
올해 포스트시즌 14경기 전체 입장 수입은 약 96억 2000만 원이다. 그중 49%로 추산된 제반 비용을 빼면 49억 원이 남는다. LG는 그중 정규시즌 우승 배당금 9억 8000만 원과 한국시리즈 우승 배당금 19억 6300만 원을 합쳐 총 29억 4300만 원을 받게 된다. 지난해 우승팀 SSG 랜더스가 받은 34억 6000만 원보다는 적은 금액이다. 한국시리즈 1~5차전이 연속 매진돼 흥행에 성공했지만, LG가 1패만 하고 시리즈를 끝내면서 지난해(6경기)보다 한 경기를 덜 치른 영향을 받았다. 그러나 한국시리즈 준우승팀 KT가 9억 4255만 원, 플레이오프 패배팀 NC 다이노스가 5억 4980만 원, 준플레이오프 패배팀 SSG가 3억 5340만 원, 와일드카드 결정전 패배팀 두산 베어스가 1억 1780만 원을 각각 받는 것과 비교하면, 통합 우승팀의 풍성한 수확을 실감할 수 있다.
여기에 LG그룹에서 주는 우승 보너스를 더하면 총액은 더 늘어난다. KBO와 10개 구단은 성적에 따른 보너스 지급에 상한선을 두고 있는데, 우승팀의 모기업이 줄 수 있는 우승 보너스는 야구단이 받는 전체 배당금의 50%까지로 제한돼 있다. 따라서 LG그룹은 배당금 29억 4300만 원의 50%에 해당하는 14억 7150만 원을 선수단에 우승 보너스로 지급할 수 있다. 모두 합해 총 44억 1450만 원이 쌓이는 셈이다. 이렇게 모인 배당금과 보너스는 선수들의 성적과 기여도를 기준으로 등급을 나눠 배분된다. A등급을 받은 선수는 1억 원 이상의 보너스를 손에 쥘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29년 만의 우승 열매가 이렇게나 달콤하다.
배영은 중앙일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