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은·이나현 자매, ‘프로 2세’ 악지우·최민서 눈길…“연구생 참가 대회 1년에 한두 번, 실전 경험 기회 되길”
한국 바둑 미래의 별들이 총 출동한 대회인 만큼, 쌀쌀한 날씨가 무색하게 대회장엔 치열함과 긴장감이 감돌았다. 한 수, 한 수 최선을 찾아가는 참가자들의 표정은 시종 진지했고 대국이 끝난 후에는 패배의 아쉬움과 승리의 짜릿함이 그대로 드러났다. 그 나이다운 모습이 고스란히 엿보이기도 해 신선한 느낌까지 들었다.
김원양 일요신문사 대표이사의 개회사가 끝난 뒤 본격적인 승부 무대의 막이 올랐다. 예선리그는 4인 1조로 구성된 조에서 풀리그를 통해 가려진 상위 2명이 본선 토너먼트에 진출하는 방식이다.
경기가 시작되자 대회장 분위기가 일변했다. 치열하게 돌 나르는 소리와 초읽기 시계가 부지런히 돌아가면서 “마지막 10초, 하나, 둘, 셋, 넷…” 초읽는 소리가 대회장 곳곳을 메웠다. 더불어 앳된 얼굴들은 긴장감과 집중력으로 인해 빨갛게 물들어 갔다.
대회장에는 자매가 같이 참가해 눈길을 끌기도 했다. 나란히 오전 대국을 이기고 본선에 진출한 이정은 양(16)과 이나현 양(14)은 바둑꿈나무 자매로 화제를 모았다. 둘은 모두 한종진 바둑도장에서 수련 중이다.
현 여자연구생 랭킹 2위인 언니 이정은 양은 얼마 전 끝난 여자연구생 입단대회에서 2위에 머물러 아쉽게 프로 입단에 실패했다. 장수영바둑도장의 박병규 원장은 “이번에 실패하긴 했지만 이미 뛰어난 기량을 갖추고 있기 때문에 자매의 입단은 시간문제”라고 기량을 높이 평가했다.
이정은, 이나현 자매는 “도장에서 함께 공부하고는 있지만 절대 대국은 하지 않는다”면서도 누가 더 센 것 같으냐는 질문에는 서로 자신 있다는 표정을 지어 보여 웃음을 자아내게 했다. 김채영-김다영 자매에 이어 또 하나의 자매 프로기사가 탄생될지 주목된다.
대를 이은 2세 바둑 꿈나무들도 참가해 화제를 모았다. 현재 한국바둑중학교에 재학 중인 악지우 양(14)과 양천대일바둑도장에서 수학 중인 최민서 양(14)이 그 주인공.
악지우 양의 할아버지는 이세돌, 최철한, 강동윤 9단 등 숱한 천재들을 길러낸 명조련사 고 권갑용 9단이고 모친은 권효진 8단이다. 당연히 악지우 양의 목표는 ‘가업’을 이어받는 일. 할아버지와 아빠(중국에서 활동 중인 웨이량 7단), 그리고 엄마처럼 프로기사가 되는 게 목표다.
권효진 8단이 입단에 성공한 때가 1995년. 아버지 권갑용에 이어 권효진이 입단하면서 한국 바둑계에는 최초의 부녀 프로기사가 탄생했었다. 그리고 다시 30년 가까운 세월이 흘러 이제 그 딸은 자신의 딸을 프로기사로 키우고 있다. 권효진과 악지우, 이번엔 국내 첫 모녀 프로기사가 탄생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또 한 명의 유망주 최민서 양은 현 여자연구생 랭킹1위로 그의 부친은 아마추어 강자 최호철이다. 고려대 기우회 출신의 최호철은 전국 무대에서 맹활약하고 맹장으로 몇 년 전엔 아마랭킹 1위에도 올랐었다. 최민서 양도 고스란히 아빠의 피를 물려받았는지 힘이 좋고 두터운 스타일이라는 평. 큰 이변이 없는 한 내년쯤이면 프로 무대에서 모습을 볼 수 있을 것 같다는 게 박병규 원장의 귀띔이었다.
유재성 한국중고바둑연맹 사무국장은 “연구생과 청소년들이 참가할 수 있는 바둑대회는 1년에 겨우 두 번 정도밖에 없다”며 “이번 대회를 통해 많은 실전 경험을 쌓으면서 자신의 실력도 테스트해볼 기회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날 대회 심판위원장을 맡은 조연우 2단은 “이번 대회에 참가한 학생들을 보니 실력은 물론 바둑을 대하는 자세도 무척 진지해서 앞으로가 기대된다”고 말하면서도 “중·고등학생들의 경우 어릴 때부터 배워온 바둑이지만 이제 진로를 고민해야 할 시점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이번 대회를 통해 과연 바둑이 내가 계속 걸어갈 길이 맞는지 진지하게 고민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조언했다.
오후 6시에 끝난 이날 대회 중등 최강부에서는 정원찬 군(산본바둑도장)이 김기원 군(한국바둑중 3년)을 꺾고 우승을 차지했다. 우승한 정원찬 군은 “하루 일곱 판을 소화하기가 만만치 않았지만 우승해서 기쁘다. 프로기사가 되는 것이 꿈이지만 아직 멀었다고 생각한다. 그래도 2년 안에는 입단하고 싶다. 포커페이스를 유지하는 것이 자신 있고, 형세판단 능력은 좀 더 키워야 한다. 중국 커제 9단 스타일의 바둑을 좋아한다”고 소감을 밝혔다.
또 고등 최강부 우승자인 김현석 군(충암바둑도장)은 “우승해서 기쁘고 이번 우승을 계기로 더 열심히 공부하겠다”고 짧게 각오를 다졌다.
이 밖에 함께 치러진 고등부 갑조 결승전에서는 이은수 군(한국바둑고)이 장시원 군을 꺾고 우승을 차지했으며, 중등부 갑조 결승전에서는 최경서 군(한국바둑중)이 같은 학교 장재우 군을 꺾고 우승을 차지하는 등 한국바둑중고등학교 학생들의 선전이 돋보였다.
7회째를 맞은 일요신문배 전국 중고생 바둑왕전은 바둑의 저변 확대와 미래를 육성하는 등용문의 역할을 해왔다. 비교적 짧은 연조에도 현재 신예 프로기사로 활발히 활동 중인 한상조, 박상진, 백현우, 박지훈, 양유준, 박동주 등을 비롯해 여자바둑리거 허서현, 김경은, 이나경 등도 모두 이 대회 입상자들이다.
유경춘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