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교육청, 회의록 위조 정황에 ‘이사 연임’ 등 3건 무효 결정…장남 이석준 상속 작업도 제동
이런 가운데 관정재단이 교육청에 허위로 의심되는 증언 및 자료 제출로 면피를 시도한 정황이 추가로 드러나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린다. 내용을 자세히 보면 설립자의 장남인 이석준 삼영화학그룹 회장을 중심으로 한 상속 시도라는 분석이 나온다.
#가짜 이사회 '들통'
일요신문 취재를 종합하면 서울시교육청은 11월 24일 관정재단에 이사회 승인취소 처분을 통보했다. 관정재단이 2023년 8월 11일 이사회(정관 변경·이사 연임의 건)와 8월 30일 이사회(정관 변경의 건)에서 의결한 안건 3건의 승인을 무효로 한다는 내용이다.
8월 11일 이사회는 관정재단 이사 5명 가운데 의결정족수 기준인 3명의 연임을 의결했다. 해당 안건이 취소됨에 따라 관정재단은 사실상 이사회 공백에 놓이게 됐다. 교육청이 재단법인의 이사회를 취소한 경우는 거의 없다. 이런 사례가 '아시아 최대' 장학재단인 관정재단에서 벌어졌다는 점에서 눈길을 끈다.
구체적으로, 교육청은 관정재단이 8월에 이사회를 열지 않았으나 개최한 듯 꾸며내 각 안건들을 의결했다고 판단했다. 이 기간 이사회 회의에 참여하지도 않은 신동렬 이사장의 직인이 찍힌 허위 의결서 등이 교육청에 제출돼 왔다는 의혹도 사실로 확인했다(관련기사 [단독] 누가 왜 이사장 직인 찍었나…'1조 기부왕'의 관정재단 수사 임박).
관정재단 측은 '전화통화로 이사회를 소집·진행했다'고 주장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관정재단이 8월 이사회 직후 교육청에 제출한 당시 회의록들은 전부 전화통화가 아닌 한 공간에 다 같이 모여 진행한 것처럼 작성된 상태였기 때문이다. 관정재단으로서는 문제를 해명하려다 회의록 위조까지 드러낸 셈이다.
교육청은 "2023년 8월 11일과 30일 이사회를 개최한 사실이 없고 그 회의록 또한 허위로 작성·제출한 사실을 확인했다"며 "관정재단 이사장은 이런 일이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법인 운영에 철저를 기하길 엄중히 경고한다"고 밝혔다.
#상속 작업 '멈춤'
관정재단은 난처한 기색이 역력하다. 8월 이사진 연임이 취소되며 그 뒤로 개최한 이사회의 효력도 사라지고 말아서다. 임명이 취소된 이사들이 의결한 사안은 의미가 없다는 뜻이다. 교육청도 이를 고려해 2023년 9월 19일 개최된 이사회를 승인하지 않고 있다. 이는 관정재단이 추진해온 상속 작업에 매우 커다란 걸림돌이 될 전망이다.
9월 19일 이사회는 '설립자인 고 이종환 삼영화학그룹 전 회장의 직계비속(가족)은 재단 운영에 임직원 등으로 관여할 수 없다'는 정관 20조를 없애기로 의결했다. 이 전 회장의 유훈을 백지화한 조치라 커다란 논란을 부른 이사회였다. 지난 9월 13일 세상을 떠난 고인은 '가족은 관정재단 운영에 관여해선 안 된다'는 유훈을 생전에 공공연히 남겨왔다(관련기사 [단독] '가족은 관여하지 말랬거늘…' 삼영 이종환 '1조 기부왕'의 버려진 유훈).
특이한 대목은 관정재단이 교육청 조사 과정에서 '정관 20조 삭제'가 오히려 설립자의 뜻이라며 하루빨리 승인해 달라고 요구했다는 점이다.
관정재단은 교육청에 공문을 보내 "이 전 회장이 8월 9일부터 병석에 계시며 가족들은 매일 위문과 간병에 진심을 다했다"며 "위안을 받은 이 전 회장은 가족들과 크게 화해하기에 이르렀다"고 했다. 그러면서 "정관 20조 삭제를 만장일치로 의결한 이사회는 그러한 고인의 유훈을 반영한 결과"라고 강조했다.
과연 사실일까. 이 전 회장의 자녀는 2남 4녀다. 일요신문이 복수의 친자녀들에게 직접 확인했으나 "가족이 관정재단에 관여할 수 있다는 취지의 유훈은 일절 들어본 바 없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신동렬 관정재단 이사장한테도 '새 유훈이 담긴 공증문서 등 자료가 있는지'를 물었지만 대답을 듣지 못했다.
게다가 신 이사장은 이 전 회장이 타계하기 불과 약 일주일 전인 9월 초순까지도 고인이 병원에 입원한 사실 자체를 모르고 있었다. 신 이사장을 비롯한 관정재단 임·직원들의 대화 녹취록에서 확인된 사항이다.
결국 무리한 주장을 교육청에 호소한 셈인데, 이 전 회장 장남인 이석준 현 삼영화학그룹 회장의 재단 운영 활로를 열어주려는 의도로 보는 시각이 많다. 실제 관정재단은 이 전 회장이 장남을 '명예이사장'으로 기록한 문건을 교육청에 근거로 제시하기도 했다. 다만 명예이사장은 상징적인 자리일 뿐 운영에는 개입하지 않는 게 일반적이라 설득력은 물음표에 그쳤다.
물론 이석준 회장이 어떤 형태로든 운영에 관여할 가능성이 높다고 보는 쪽도 적지 않다. 10월 29일에는 이석준 회장과 신 이사장이 서울 용산 동부이촌동 한 카페에서 대화를 나누는 장면이 포착됐다. 관정재단 운영에 관한 일이 아니라면 두 사람이 만날 이유는 없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황제라면' 논란에서 또…
'가족 관여 금지'를 천명한 이 전 회장의 유훈은 재단 경영권을 상속하는 대신 사회에 공헌해 투명하고 지속가능한 운영을 당부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그러나 여러 사회 고위층들을 중심으로 관정재단을 둘러싼 의혹이 계속되는 탓에 문제가 복잡해지고 있다. 예컨대 성균관대 총장을 지낸 신동렬 이사장과 박근혜 정부 당시 교육부 장관을 지낸 서남수 전 장관이 관정재단 이사다. 서남수 전 장관은 2014년 세월호 참사 직후 유족들이 모인 강당에서 라면을 먹는 모습이 찍혀 이른바 '황제라면' 논란을 촉발한 장본인이다.
현재 신 이사장과 서 전 장관은 검찰 수사 대상에 올랐다. 교육청 조사 결과에서 밝혀진 신 이사장 직인 무단 사용과 이사회 허위 회의록 작성 등의 과정에 개입됐다는 등의 이유로 피소돼 서울중앙지검 형사 제8부에 사건이 배당됐다.
서 전 장관은 교육청 조사에서 "관정재단 사무국장으로부터 이사회를 개최하되 대면은 불가능하다는 전화 연락을 받았으며, 안건이 통과됐다는 내용으로 회의록을 작성한다기에 승인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일요신문과 통화에서는 "어떻게 설명을 드려야 할지 모르겠으나 앞으로 저희 나름대로의 계획은 갖고 있다"며 "여러 가지 아쉬움이 남는다"고 털어놓았다.
서 전 장관은 "피소된 사실은 중요하지 않게 생각한다"며 "무엇보다도 타계하신 이종환 전 회장께서는 이석준 회장을 명예이사장으로 기록한 문서도 남겨 놓으셨는데, 이는 가족의 재단 운영 관여를 분명히 허락하신 것"이라고도 주장했다. 이어 "이석준 회장께서 이사진과 만나는 경우가 있긴 하나 상속 등 여러 현안을 상의할 일이 생길 때 의견을 나누는 정도"라며 "이를 마치 뭔가 감춘 채 밀담을 나눴다는 듯 바라봐선 곤란하다"고 말했다. '상속 등 현안 논의가 운영 개입 아닌지' 등을 묻는 질문에는 "그건 억지 논리"라고 일축했다.
관정재단은 이종환 전 회장이 한국의 노벨상 수상자 육성을 목표로 2000년 설립했다. 그는 세상을 떠날 때까지 이 재단에 사재 약 1조 7000억 원을 쾌척했다. 2022년 기준 관정재단의 총자산은 6401억 1822만 원이다. 이 가운데 약 5700억 원이 토지와 건물 등 부동산 자산이다. 장부가액일 뿐 각각의 시장가치를 평가하면 1조 원이 넘는다는 분석도 존재한다.
주현웅 기자 chescol2@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