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금리 기조 속 사업다각화 등 돌파구 필요…리스크 크고 단기 성과 어려워 회의적 시선도
#전업 카드사 중 가장 늦게 출사표
삼성카드가 11월 29일 신기술사업금융업을 신규 등록했다. 국내 전업 카드사는 본업인 카드 업무 외 리스·할부·신기술 등은 라이선스를 등록한 후에야 겸업이 가능하다. 그간 8개 전업카드사 중 유일하게 신기술사업금융업 라이선스를 취득하지 않고 있던 삼성카드가 새롭게 벤처 투자에 합류할 의사를 밝힌 셈이다.
신기술사업금융업은 성장성이 높은 신기술사업기업 등에 투자해 이익을 실현하는 벤처캐피탈 사업이다. 중소·벤처기업에 투자해야 하는 의무비율이 없기 때문에 투자 범위가 넓다. 설립한 지 7년이 되지 않은 기업에만 투자할 수 있는 중소기업창업투자회사와 달리 기간 제한도 없고 지분 이익에 대한 비과세 혜택도 제공받을 수 있어 선호도가 높은 편이다.
특히 국내에서는 대기업들도 앞다퉈 뛰어들고 있다. 2021년 공정거래법이 개정되면서 대기업의 기업주도형 벤처캐피탈(CVC) 설립이 가능해지자 동원그룹을 필두로 GS그룹, 효성그룹 등이 관련 시장에 진출했다. 올해 하반기에도 지난 9월 26일 LX벤쳐스가, 10월 20일에는 포스코기술투자가, 11월 30일에는 두산인베스트먼트가 신기술사업금융업을 등록했다. 현재 동국제강도 CVC 설립을 공식화한 상태다. 유동성이 위축된 시기에 기업들이 미래 먹거리를 발굴할 기회로 벤처 투자를 눈여겨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국내 카드사 중에서는 업계 1위인 신한카드가 신기술사업 투자에 가장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신한카드의 신기술금융 자산은 2019년 55억 원, 2020년 72억 원, 2021년 816억 원, 2022년 1011억 원으로 꾸준히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올해 6월 말 기준 카드업계 신기술금융자산 규모는 총 1074억 원으로 이 중 신한카드가 차지하는 비중만 92.7%다.
기존 카드사 본업인 신용판매 수익만으로는 성장이 쉽지 않은 만큼 향후 신기술금융 관련 투자가 늘어나리라는 전망도 나온다. 서지용 상명대 경영학과 교수는 “최근 투자 수요가 있고 벤처캐피탈 시장의 성장 가능성이 전망되기 때문에 수익화 가능성을 따져보고 라이선스가 필요하다고 생각해 진입한 것 같다”고 말했다.
삼성카드는 현재 1위 신한카드 뒤를 바짝 추격하고 있다. 올해 3분기 삼성카드는 전년 동기 대비 0.8% 감소한 1395억 원의 순이익을 달성했다. 신한카드의 순이익은 1522억 원으로 전년 대비 13% 감소했다. 두 카드사의 순이익 차이는 127억 원으로 격차는 매 분기 줄어들고 있다. 서지용 교수는 “업황은 안 좋은데 수익을 내야 하는 상황이기 때문에 유일하게 신기술사업금융업 라이선스가 없던 삼성카드가 투자의 적기를 놓치지 않으려고 일단 움직인 것 같다”고 말했다. 한 신용카드사 관계자는 “여러 시도를 할 수 있게끔 가능성을 열어놓는 측면에서 라이선스를 취득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사업 진출 효과는 ‘글쎄’
삼성카드는 최근 김대환 대표의 유임을 발표했다. 이번 대표직 유임 결정으로 김대환 대표의 임기는 2026년 3월까지 늘어났다. 김 대표의 어깨는 과거에 비해 한층 무거워졌다. 장·단기 카드대출, 할부·리스 부문 등에서 수익이 감소세를 보이고 있다. 올해 3분기에는 카드사 본업인 신용판매에서 성장세를 보이긴 했지만 고금리 기조가 이어나갈 것을 고려하면 사업 다각화 등 돌파구가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대출이 어려워지면서 중저신용자들이 리볼빙이나 카드론으로 몰려와 연체율과 함께 카드사들의 대손충당금이 뛰어오르고 있다. 정부에서 연체자들을 구제하기 위해 워크아웃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기 때문에 내년까지도 정상 영업은 어려운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올해 11월 13일 삼성카드를 비롯한 삼성그룹 금융계열사들이 금융 통합 플랫폼인 ‘모니모’를 통해 마이데이터 서비스를 시작했지만 후발주자인 데다 마땅한 수익모델이 없는 탓에 큰 효용을 누리기 마땅찮다는 분석이다.
이런 가운데 신기술사업금융업이 어느 정도 효과를 낼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실제 신한카드를 제외한 나머지 카드사들이 신기술사업금융업 투자에 미온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금융감독원 금융통계정보시스템에 따르면 하나카드와 현대카드, 비씨카드는 신기술사업금융업 투자를 집행하지 않고 있다. 올해 6월 기준 KB국민카드와 롯데카드, 우리카드의 신기술금융자산 규모는 각각 40억 5400만 원, 22억 8600만 원, 15억 원으로 규모가 미미하다는 평가다. 신한카드 역시 당분간은 투자 규모를 더 확대하지 않고 유지한다는 입장이다.
신기술사업금융업은 특성상 단기간에 수익을 내기 어렵고 투자 위험 부담도 높다는 지적이 나온다. 특히 벤처캐피탈사와 달리 카드사의 경우 겸업으로 신기술사업금융업를 영위하기 때문에 전문투자 심사역 등 대규모 투자가 쉽지 않다. 삼성카드의 신기술사업금융업을 신규 등록이 찻잔 속의 태풍으로 그칠 것이라는 시각도 나오는 까닭이다.
일각에서는 삼성그룹 계열사 중에서 삼성벤처투자가 이미 신기술사업금융업을 영위하고 있는데도 삼성카드가 신규 등록했다는 점에서 삼성그룹 내 신기술사업금융업 투자 주체가 변경될 가능성도 있는 것 아니냐는 의견도 나온다. 삼성생명 등 삼성금융 계열사 간 벤처투자조합 결성 등을 위한 목적으로도 해석될 수 있다는 것이다. 여신금융업권 한 관계자는 “가능성은 있지만 아직 구체적으로 알 수 있는 내용은 없다. 혹은 다른 카드사들처럼 대규모 투자보다는 핀테크사들과 전략적으로 협업하면서 수익을 내기 위해 신기술사업금융업을 등록한 것일 수도 있다”고 분석했다.
이와 관련, 삼성카드 관계자는 “당사 사업과 관련이 있는, 향후 성장 가능성이 유망한 플랫폼 기업 등과의 제휴 강화를 위해 신기술사업금융업 라이선스를 취득했다”며 “중장기적으로 회사 본업 및 신사업의 핵심 역량을 확보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김정민 기자 hurrymi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