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데믹 여파 위메프 이직지원제도에 11번가 희망퇴직…알리, 쿠팡-네이버의 양강구도 위협할지도 주목
한때 총 거래액 기준 업계 1위 자리를 차지하기도 했던 11번가의 이 같은 소식에 업계는 예의주시하고 있는 모습이다. 현재 이커머스 업계는 쿠팡‧네이버쇼핑가 양강구도다. 하지만 알리익스프레스 등 해외 직구 플랫폼이 국내에서 영향력을 넓혀가면서 이 구도가 언제까지 이어질 수 있을지 의문이라는 목소리도 나온다.
공정거래위원회에 따르면 11번가는 지난해 기준 국내 온라인 쇼핑 시장에서 점유율 7%로 쿠팡‧네이버쇼핑‧신세계에 이어 4위를 차지하고 있는 사업자다. 오픈마켓으로 한정하면 쿠팡‧네이버쇼핑에 이어 3위로 점유율 12.74%를 차지하고 있다. 2018년 SK플래닛에서 독립 법인으로 출범하며 한국판 아마존으로 성장할 것이라는 기대감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쿠팡과 네이버가 대규모 투자를 통해 점점 점유율을 높여간 사이 11번가는 실적이 오히려 하락했다. 2020년부터 지난해까지 3년 연속 적자를 냈고 지난해는 영업손실 규모가 1500억 원을 넘어섰다. 올해 1~9월 누적 영업손실은 910억 원에 이른다.
최근에는 강제 매각설까지 불거졌다. 지난달 29일 투자은행(IB)업계에 따르면 11번가의 최대주주인 SK스퀘어는 이사회를 열고 재무적투자자(FI)의 보유지분 18.18%에 대한 콜옵션(우선매수청구권)을 행사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이에 국민연금 및 사모펀드 운용사 H&Q코리아로 이뤄진 FI는 드래그얼롱(동반매도권)을 활용할 수 있게 됐다.
사실상 SK스퀘어가 11번가를 손절한 게 아니냐는 얘기가 돌던 와중에 11번가의 희망퇴직 실시 공고까지 나면서 업계에서는 안타깝다는 반응이 나온다. 한 이커머스 업계 관계자는 “사실상 SK스퀘어가 회사(11번가)를 포기한 것 같아 많이 안타깝다”며 “11번가만 힘든 게 아니라 쿠팡이나 네이버도 속도조절을 하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올 만큼 이커머스 업계 모두가 힘든 고난의 행군을 하고 있는 것 같다”고 전했다.
앞서 지난 5월 위메프도 글로벌 이커머스 플랫폼 큐텐에 경영권을 매각한 후 이직 지원제도를 운영했다. 이직을 원하는 직원에게 3개월 치 월급을 특별 보상금 명목으로 제공하고 인력 효율화를 도모했다.
고물가‧고금리 영향으로 경기가 전반적으로 안 좋은 가운데 코로나19 엔데믹 수순을 밟으며 소비자의 수요가 점차 오프라인으로 이동하고 있는 점이 이커머스 시장에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 국내 온라인 쇼핑 거래액 증감률도 하락세를 기록하고 있다. 삼정 KPMG가 지난 11월 발간한 ‘격변기 맞은 이커머스, 기업의 생존 방향성은?’ 보고서에 따르면 2022년 연간 온라인 쇼핑 거래액은 209조 9000억 원으로 전년대비 10.3% 성장하는 데 그치며 성장세가 급격히 둔화했다. 과거 20% 내외의 높은 성장률을 기록하던 것과 달리 성장률이 둔화한 것으로 보고서는 분석했다. 보고서는 오프라인과 온라인 사이 선택적 소비가 가능해진 상황에서 이커머스 성장 둔화세가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내다봤다. 이에 그동안 기업들이 시장 점유율을 높이기 위해 출혈 경쟁을 지속했지만 최근 이커머스 업계에서는 내실 다지기에 나서며 안정적 기업가치를 유지하는 방향으로 전략을 선회한 것으로 보인다.
또한 주요 이커머스 기업들이 IPO를 통한 자금 조달에 나섰으나 최근 금리 인상으로 투자 심리가 위축되면서 올해 기업공개에 성공한 이커머스 기업은 전무했다. 지난 1월 컬리가 투자심리 위축을 이유로 상장을 철회했고 2월에는 오아시스가 수요예측에 실패하며 상장을 연기했다. 9월 상장을 목표로 했던 11번가와 올해 안에 상장 가능성이 점쳐졌던 SSG닷컴도 모두 시장 상황 등을 이유로 IPO를 잠정중단 또는 연기했다. 앞의 이커머스 업계 관계자는 “지금은 내실화에 만전을 기하고 있다”며 “내실과 성장을 같이 취하기 위해 핵심으로 가져갈 카테고리에 집중해 버티컬 서비스(특정 카테고리 상품만 전문적으로 판매하는 형태) 경쟁력 강화를 위한 투자를 해오고 있다”고 밝혔다.
이에 더해 글로벌 플랫폼 알리익스프레스까지 가격 경쟁력을 내세우며 국내 시장에서 점유율을 높여가면서 이커머스 업계의 태풍의 눈으로 작용할 것인지 업계가 주목하고 있다. 2018년 한국에 처음 진출한 알리익스프레스는 올해 1000억 원 규모의 투자를 선언한 뒤 공격적인 마케팅을 펼치고 있다. 앱·리테일 분석서비스 ‘와이즈앱·리테일·굿즈’에 따르면 지난 10월 기준 알리익스프레스 모바일 앱 국내 사용자 수는 613만 명으로 지난해 10월 297만 명이었던 것과 비교해 2배 증가했다. 알리익스프레스는 중국에서 제조한 제품을 직매입해 국내 업체보다 낮은 가격에 판매하고 있다. 중국 이커머스 업체 ‘핀둬둬’가 운영하는 ‘테무’도 7월 한국 진출 후 사용자가 급증했다.
물론 아직까지는 쿠팡에 대적할 만큼은 아니라는 게 업계의 정설이다. 알리익스프레스는 직구에 한정돼 있다는 점과 국내 물류센터 등을 구축하지 못했다는 점이 한계로 작용한다. 가품 논란도 넘어야 할 산이다. 서용구 숙명여대 경영학과 교수는 “최저가를 무기로 등장한 알리익스프레스의 공세에 아마 종합 쇼핑몰 형태의 쿠팡‧네이버쇼핑과 카테고리별로 버티컬 커머스 중 강한 기업 정도만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이라며 “알리익스프레스와 테무 등이 조만간 한국 이커머스 점유율을 10~20% 정도까지도 차지할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종우 아주대 경영학과 교수도 “이커머스 업계에서 경쟁에 밀린 업체들을 살펴보면 빠른 배송을 위한 풀필먼트(판매 상품의 입고, 보관, 제품 선별, 포장, 배송, 교환‧환불서비스 제공을 일괄 처리하는 것) 투자를 안 한 곳들이고 11번가 G마켓이 대표적인 곳”이라며 “지금은 그걸(풀필먼트 투자) 잘했기 때문에 쿠팡이 선두를 지키고 있으나 앞으로는 알리익스프레스가 충분히 쿠팡을 위협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앞의 삼정KPMG 보고서는 “이커머스 상위 사업자 간 패권 다툼은 지속될 전망”이라며 “시장 내 주도권 확보‧유지를 위해 이커머스 생태계 확장 및 물류비‧마케팅비 등 비용 절감 가능 방안을 동시에 모색하며 기업가치 제고에 나설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김정아 기자 ja.ki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