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레잉 코치서 감독대행으로, P급 라이선스도 획득…7경기서 승점 11점 따내며 기대 이상 성과 보여
수원 삼성 구단이 지난 2일 2023 K리그1 최종전을 마지막으로 K리그2행이라는 결과를 맞이했다. 강등이 결정된 순간, 경기장을 찾은 팬들은 이를 받아들이기 어려워 보였다. 경기 종료 이후 선수단이 골대 뒤 응원석을 향해 서자 많은 팬들이 야유를 보냈다. 소수는 연막탄을 던지거나 그라운드로 난입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기도 했다. 경기장 밖에서는 팬들이 선수단 버스를 막아서기도 했다.
혼란 속에서도 시즌 마지막 7경기를 이끈 염기훈 감독대행은 박수를 받았다. 구단 수뇌부가 차례로 사과를 건내고 염 대행이 마이크를 잡자 팬들은 고유의 응원가로 화답했다. '가왕' 조용필의 곡 '여행을 떠나요'에 염 대행을 위한 가사를 붙인 그 응원가다. 사과의 말을 전하려던 염 대행의 눈에서는 눈물이 흘렀다.
염기훈 감독대행은 어느 때보다 험난한 시즌을 보냈다. 2022시즌을 마치고 은퇴 기로에 섰으나 플레잉코치로서 한 시즌 더 그라운드에 서기로 했다. 이번 시즌 5월까지 컵대회 포함 4경기에 나섰다. FA컵에서는 90분을 소화하며 2도움을 기록하기도 했다.
선수보다 코치 역할에 집중하는 듯했던 그는 별안간 팀의 지휘봉을 잡았다. 구단이 리그 7경기를 남겨둔 시점, 기존 김병수 감독을 경질하고 그를 감독대행 자리에 앉힌 것이다. 팬들 사이에선 '팬들이 비판하기 힘든 레전드 염기훈을 방패막이로 쓰려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왔다.
4개월 전까지 선발로 출장하던 플레잉 코치에서 임시 사령탑으로 신분이 바뀐 염기훈 감독대행은 부임 이후 첫경기 패배로 흔들리는 듯했지만 이내 승점을 쌓으며 희망의 불씨를 살렸다.
염 대행은 자신이 이끈 7경기에서 3승 2무 2패를 기록, 승점 11점을 얻어냈다. 이전까지 수원이 31경기에서 승점 22점을 따낸 것을 감안하면 기대 이상의 성과였다. 조기에 강등 확정이 될 수 있던 위기에서 벗어났고 최종전까지 생존 경쟁을 이어온 것도 염 대행의 성과였다.
실제 맞이한 다이렉트 강등은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여러 경우의 수를 고려해야 하는 구단 입장에서 이 같은 결과가 구상에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현실은 더욱 차가웠다.
시즌이 막판으로 흐르던 시점, 축구계에선 염 대행이 정식 감독이 될 수도 있다는 이야기가 돌았다. 구단이 강등이 되더라도 7경기만 지휘한 염 대행에게 책임을 물을 수는 없기에 염 대행 체제로 새롭게 시작한다는 이야기도 전해졌다. 시즌 막판 급박하게 돌아가는 상황 속에서도 염 대행은 P급 라이선스 교육에 참여, 소문에 박차를 가했다.
하지만 다이렉트 강등이 현실이 되며 미래는 알 수 없게 됐다. 염 대행은 수원 사령탑 자리에 부담을 느끼는 것으로 알려졌다. 당초 선수 생활을 마치더라도 수원과 염 대행의 동행은 지속될 것으로 보였다. 비록 수원이 염 대행의 프로 데뷔 팀은 아니지만 그는 팬들이 가장 사랑하는 선수였다.
수원 구단과 염 대행의 결별은 상상하기 어렵다. 어떤 식으로 인연을 이어갈지 관심이 집중된다. 본인이 고사한다면 강제로 지휘봉을 맡길 수는 없다. 사령탑을 경험한 인물이 코치로 있는 상황에서 외부 인사가 감독으로 선임되는 것도 부담이 될 수 있다. 구단 최고 레전드 염기훈을 둘러싼 수원의 선택이 어떻게 내려질지 지켜볼 일이다.
김상래 기자 scourge@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