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합과 희생 안건 내세웠지만 빈손…비대위 전환 및 주류 불출마 등 불씨 남아
빈손이나 다름없다.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참패 후 출범한 인요한 혁신위는 대통합과 희생을 핵심 안건들로 내세웠다. 전자의 경우 이준석 전 대표, 후자는 장제원 의원을 비롯한 윤핵관이 중심인물이었다. 이를 위해 인요한 위원장은 이 전 대표에게 연일 러브콜을 보내는 한편, 장 의원 등을 향해선 험지 출마 또는 불출마 압박 시그널을 보냈다.
이슈를 끄는 데 성공하긴 했다. 인요한 위원장에게 언론의 스포트라이트가 쏟아졌다. 강서구청장 선거 후 위기감이 가득했던 국민의힘 내부에서도 인 위원장을 향한 기대감이 커지기 시작했다. 인 위원장 뒤에 윤석열 대통령이 있다는 얘기도 쏟아졌다. 이를 바탕으로 인 위원장이 광폭행보를 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정치신인 인 위원장 앞에 놓인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이준석 전 대표는 인 위원장 구애에 선을 그었다. 이 전 대표는 11월 4일 자신의 토크 콘서트를 방문한 인 위원장에게 ‘미스터 린턴(인 위원장 영어 이름)’이라 부르며 “당신은 오늘 이 자리에 올 자격을 갖추지 못했다”고 영어로 말했다. 인 위원장이 수모를 당했다는 반응이 나왔다. 그럼에도 인 위원장은 “그의 마음을 풀기 위해 끝까지 노력할 것”이라고 했다.
윤핵관과 중진들의 희생도 없었다. 인 위원장이 겨눴던 김기현 대표와 장제원 의원 등은 오히려 지역구 세몰이에 나서며 혁신위를 당혹케 했다. 이는 지도부와 혁신위 간 갈등으로 비쳤고, 공천을 둘러싼 여권 파워게임 양상으로 번졌다. 비대위 전환 가능성까지 거론되는 등 무성한 소문들이 제기됐고, 당은 소용돌이에 빠졌다. 이는 혁신위에도 부담으로 작용했다.
이런 상황에서 터진 ‘실언’은 인 위원장 입지를 빠르게 좁혔다. 인 위원장은 11월 26일 이 전 대표를 향해 “준석이는 도덕이 없다” “부모 잘못이 크다”는 발언으로 비판을 받았다. 다음 날 바로 사과하긴 했지만 이를 계기로 인 위원장을 향한 비토 기류가 당을 휘감았다.
앞서 인 위원장은 “낙동강 하류 세력은 뒷전에 서라”고 했다가 ‘농담’이라며 해명했고, 김한길 국민통합위원장과 “매일 전화하는 사이”라고 했다가 ‘잘못된 보도’라며 진화에 나선 바 있다. 당 안팎에선 인 위원장의 연이은 설화가 총선 악재가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왔다. 국민의힘 한 초선 의원은 “‘준석이 발언’이 결정타였다. 팽팽하던 힘의 무게추가 지도부로 쏠리게 된 사건”이라고 말했다.
인 위원장은 혁신위의 희생 안건을 다시 꺼내들며 배수진을 쳤다. 혁신위의 조기 해산까지 언급하는 등 영남권 중진과 윤핵관들을 몰아세웠다. 하지만 ‘대답 없는 메아리’에 그쳤다. 김기현 지도부는 혁신위 안건을 제대로 다루지 않았다. 아예 무반응으로 일관하는 경우도 많았다. 혁신위를 향해서는 공공연하게 “얼굴마담”이라는 비아냥거림을 내놓기도 했다. 인요한 혁신위와 김기현 지도부 간 감정의 골은 깊게 패여만 갔다.
이런 상황에서 혁신위는 내홍에 휩싸였다. 쇄신 대상으로 거론됐던 영남권 중진들과 가까운 것으로 알려진 일부 혁신위원이 인 위원장을 향해 반기를 들었다는 말이 흘러 나왔다. 혁신위원들끼리 충돌하는 모습이 곳곳에서 포착됐다. 혁신위로선 내우외환에 빠진 셈이었다. 국민의힘 핵심 관계자는 “인 위원장이 공천관리위원장을 요구했다는 소식이 알려진 후 한 혁신위원이 ‘자기 정치를 위해 혁신위를 들러리로 세우고 있다’고 인 위원장을 성토해 소동이 벌어진 적도 있다”고 귀띔했다.
혁신위를 둘러싼 잡음이 끊이지 않자 국민의힘 시선은 용산으로 향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직접 교통정리에 나서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됐다. 좌초 위기에 몰린 혁신위로서도 입장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혁신위 측은 “당의 기득권 저항을 극복하기 위해선 대통령이 직접 나서줘야 한다”는 취지의 메시지를 대통령실 측에 꾸준히 보내며 SOS를 친 것으로 전해졌다. 험지 출마 또는 불출마 기로에 놓인 인사들도 대통령실 핫라인을 가동하며 분주히 움직였다.
결론부터 말하면 윤 대통령은 김기현 지도부 손을 들어준 것으로 보인다. 대통령실 정무라인 인사들은 김기현 지도부와 인요한 혁신위 간 갈등이 불거진 후 중재에 나섰다. 이 과정에서 영남권 인사들의 수도권 출마 안건은 논의를 더 이상 이어가지 않는 쪽으로 의견이 모아졌다고 한다. 이를 두고 인요한 혁신위의 ‘판정패’라는 평가가 나왔다. 혁신위가 밀어붙이던 희생 요구 역시 동력을 잃었다.
영남권 중진들은 보란 듯 지역구 행사를 다녔고, 윤핵관들 역시 불출마 가능성을 일축했다. 이를 지켜보는 혁신위 측에선 별다른 카드를 내놓지 못했다. 이런 상황에서 12월 6일 윤 대통령 부산 방문에 김기현 대표가 동행했다. 또 이날 간담회엔 부산을 지역구로 두고 있는 윤핵관 장제원 의원이 참석했다. 공교롭게도 둘 모두 인 위원장이 ‘쇄신 대상’으로 콕 집었던 의원들이다.
다음 날인 12월 7일 인 위원장은 혁신위의 활동 종료를 선언했다. 그는 “국민 눈높이에서 국민이 뭘 원하는지 잘 파악해 50%는 성공했다고 생각한다”고 자평했다. 혁신위가 최대 안건으로 제시했던 희생 사례가 나오지 않았다는 점에서 ‘절반의 성공’이라는 평가에 대해선 회의적 반응이 주를 이룬다. 혁신위 내부에선 조기 해산에 대해 반대하며 임기를 지켜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왔던 것으로 전해진다.
혁신위 해산을 두고 책임론이 불거질 수도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당초 ‘전권’을 보장한다던 김기현 대표가 혁신위와 대립한 것을 두고서다. 혁신위 활동은 끝났지만 그 리스크는 계속 될 수 있다는 의미다. 안철수 의원은 12월 7일 SBS 라디오 ‘김태현의 정치쇼’에 출연, “전권을 주겠다고 했는데, 무권”이라며 김 대표를 비판했다. 안 의원은 조기 해산을 발표한 직후 인 위원장과 만나서도 “치료법을 제안했지만 환자가 거부했다”며 지도부를 꼬집었다.
김기현 체제를 대체할 비대위 카드 불씨가 살아있다는 관측이 나오는 배경이다. 혁신위의 희생 안건 역시 유효하다는 분석이다. 한 수도권 의원은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참패를 벌써 잊은 모양이다. 혁신위가 왜 나왔는지 기억해야 한다. 당 지도부와 대통령실 모두 주류 희생을 외면하긴 어려울 것”이라고 했다. 그는 “총선을 앞두고는 혁신위 안건 일부가 수용될 것으로 보인다. 실제 대통령실에서 인 위원장이 지목했던 몇몇 의원들을 상대로 불출마를 설득하고 있는 것으로 들었다”고 덧붙였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