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방침 따라 최근 논의, 스마트원자로 투자 축소 우려…한전KPS “손 떼는 것은 아냐”
스마트파워는 2014년 ‘스마트원자로’의 상용화 및 수출을 위해 설립된 법인이다. 스마트원자로는 한국원자력연구원이 개발한 한국형 중소형 모듈 원자로다. 원자력안전위원회는 2012년 스마트원자로에 대한 표준설계인가를 결정했다. 소형 일체형 원자로로는 세계 최초의 표준설계인가다. 표준설계인가는 어디서나 해당 기술 그대로 원자로를 만들어도 좋다는 일종의 품질보증서다.
스마트원자로의 특징은 주요 기기를 압력용기 안에 모두 집어넣은 일체형이라는 것이다. 지진 등의 사고가 발생해도 방사성 물질의 외부 유출을 막을 수 있다. 스마트원자로는 대형 원전에 비해 발전량이 낮아 소규모 전력 생산에 용이하다.
#한전KPS, 현재 지분 4.14% 보유
일요신문 취재 결과, 한전KPS는 최근 이사회에서 스마트파워 지분 매각을 논의했다. 한전KPS는 현재 스마트파워 지분 4.14%를 갖고 있다. 한전KPS 외에 포스코이앤씨(옛 포스코건설), 대우건설, 일진파워, 금화PSC, BHI, 수산ENS, 금양산업개발 등 13개 회사가 스마트파워 주주로 등재돼 있다.
한전KPS는 정부 정책에 따른 것이라고 밝혔다. 한전KPS 관계자는 “기획재정부(기재부)가 2022년 발표한 공공기관 혁신 가이드라인에 출자회사 지분을 정리하라는 내용이 있었다”며 “아직 구체적인 매각 대상이나 일정 등은 정해지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한전KPS의 스마트파워 지분 매각 논의에 대해 일각에서는 우려를 제기하고 있다. 원전업계에서 스마트원자로 사업에 대한 잠재력을 높게 평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전KPS의 재무 상황이 나쁜 것도 아니다. 분기보고서에 따르면 한전KPS의 부채비율은 2023년 9월 말 기준 23.84%에 불과하다. 한전KPS는 2022년 1306억 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했고, 2023년 1~3분기에도 1402억 원의 영업이익을 거두는 등 흑자 경영을 이어가고 있다.
스마트파워 지분 매각이 한전KPS 재무에 큰 도움이 된다고 장담할 수도 없다. 특히 스마트파워 매각가 산정에 어려움을 겪을 전망이다. 스마트파워는 비상장기업인데다 2022년 5억 원의 적자를 거두는 등 이렇다 할 수익도 내지 못하고 있다. 스마트원자로가 상용화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전KPS가 스마트원자로에 대한 사업성을 낮게 보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기재부가 2022년 7월 발표한 가이드라인에 명시된 지분 매각 대상은 고유·핵심업무와 무관하거나 출자목적을 달성한 회사의 지분, 투자손실 확대 등 출자금 회수가 불투명한 회사의 지분이다. 스마트파워의 경우 출자목적을 달성했다고 보기는 어려우므로 ‘출자금 회수가 불투명한 회사’로 분류된 셈이다.
실제 스마트파워는 최근 스마트원자로 관련 주도권을 상실하는 모양새다. 한국원자력연구원은 지난 12월 11일 스마트파워가 아닌 현대엔지니어링과 ‘한국형 SMR(소형모듈원자로) 해외 수출을 위한 업무협약(MOU)’을 체결했다. 두 회사는 이번 MOU 체결을 계기로 스마트원자로 해외 수출을 본격화할 계획이다. 현대엔지니어링은 스마트원자로 실증 및 상용화를 위한 사업개발과 자금조달, EPC(설계·조달·시공) 등을 담당하고, 한국원자력연구원은 원자로 설계와 인·허가 등의 지원 업무를 맡는다.
이와 관련, 한국원자력연구원 관계자는 “과거에는 한전 주도로 스마트원자로 관련 수출을 진행했지만 현재는 환경이 바뀌어 민간 주도로 진행하려 한다”고 밝혔다.
#'정부 투자 필요' 업계 한목소리
한국은 2015년 사우디아라비아와 ‘한-사우디 스마트원전 건설 전 상세설계(PPE) 협약’을 체결했고, 2018년 12월에는 안전성이 향상된 피동형 스마트 원전인 ‘스마트100’ 개발을 완료했다. 피동형 원전의 특징은 외부 전력이나 추가 냉각수 공급 없이 자동으로 냉각되는 것이다. 스마트파워도 당시 PPE에 참여하면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이후 한국과 사우디아라비아의 협력이 흐지부지되면서 스마트100이 상용화되지는 못했다.
스마트원자로가 상용화되지는 못했지만 원전업계에서는 표준설계인가를 받은 만큼 수년 내 상용화가 가능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스마트원자로 관련 기술력이 신기술 개발 동력이 될 수도 있다. 유재선 하나증권 연구원은 “(한국 원전업계는) 기존 SMR 개발 모델인 스마트는 과거 모델로, 지금은 차세대 원전으로 i-SMR 개발 사업을 준비 중”이라며 “개발을 완료한 스마트100의 경우 사우디아라비아와의 PPE가 무산되면서 상용화되지 못했지만 개발 동력은 여전히 한국형 i-SMR로 이어지는 중”이라고 분석했다.
원전업계에서는 관련 기술 개발을 위해 정부 주도의 투자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해외 수주 활동에 있어서도 한전과 그 자회사는 기술력과 네트워크 측면에서 큰 도움이 된다. 실제 국내 원전 수출은 대부분 한전이나 그 자회사가 민간 기업과 컨소시엄을 구성하는 방식으로 수주를 진행한다. 이런 가운데 한전KPS가 지분을 매각하면 스마트파워로서는 공기업이나 공공기관과의 연결고리가 사라지게 된다. 스마트파워 주주 중 공기업이나 공공기관은 한전KPS가 유일하다.
특히 원전업계에서는 한전KPS의 스마트파워 지분 매각이 정부의 스마트원자로 투자 축소로 이어질 것을 우려하고 있다. 원전업계 한 관계자는 “한전KPS가 당장은 스마트파워 매각을 통해 재무 건전성이 좋아질 수 있겠지만 중장기적으로 스마트원자로가 상용화돼서 수출하게 되면 한전KPS는 할 수 있는 게 많지 않을 것”이라며 “원전업계 입장에서도 SMR 상용화를 위해서는 과감한 투자가 필요한데 현 경제 상황에서 민간의 투자는 한계가 있고, 결국 정부 투자가 필요한데 오히려 스마트파워 지분을 매각한다고 하니 안타깝다”고 지적했다.
다만 앞서의 한전KPS 관계자는 “스마트원자로 분야에서 손을 떼는 것은 아니지만 스마트파워 법인 관련한 사업은 정리를 하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공공성 측면에 대한 비판도 나온다. 전국전력산업노동조합연맹은 지난 11월 성명을 통해 “전력 산업의 공적 영역은 보장돼야 하고, 그 역할은 지금보다 강화돼야 한다”며 “공공자본의 민간 유입으로 각종 국가 보안정책 유출과 공공성 약화 우려가 크기 때문에 즉각 중단돼야 한다”고 비판했다. 스마트파워 한 주주사 관계자도 “오랜 기간 스마트원자로 기술 개발을 함께했는데 스마트파워 지분을 매각하면 인수자는 그간 쌓아온 경험치와 노하우를 손쉽게 가져가는 셈”이라고 말했다.
박형민 기자 gody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