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 전망 및 경제성 평가 부적정 수행 경고, 내부 반발…공사 “각성 촉구할 필요 있는 경우 처분 가능”
한국가스공사는 2021년 수소사업본부를 신설하고, 거점형 수소생산기지 구축사업을 시작했다. 사업의 주요 내용은 광주광역시와 경남 창원시에 각각 연간 1460톤(t), 3650t의 수소 생산 시설을 구축한다는 것이다. 한국가스공사는 기지 두 곳에 총 670억 원을 투자했다. 한국가스공사는 수소생산기지를 통해 수소 공급 안정성과 경제성이 높아지고, 수소차 및 충전소 보급 확대에도 가속도가 붙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한국가스공사에 따르면 생산 시설은 올해부터 본격적으로 가동될 예정이다.
#정책결정자들은 대부분 회사 떠나
한국가스공사는 최근 거점형 수소생산기지 구축사업 관련 실무진 직원들에게 징계를 내렸다. 한국가스공사는 관리 책임자 A 씨와 업무 담당자 B 씨에 대해 경고 조치했다. 거점형 수소생산기지 구축사업과 관련해 △경제성 평가 △시설투자비 산정 △적정투자보수 정책 마련 등을 부당하게 추진했다는 이유에서다. 한국가스공사는 또 수소생산시기 구축사업 기본계획안을 작성하고 투자의사결정 절차를 추진한 관리 책임자 C 씨와 업무 담당자 D 씨에게 경고 조치했다.
윤석열 정부는 2022년 12월 최연혜 전 미래통합당(현 국민의힘) 의원을 한국가스공사 사장으로 선임했다. 최연혜 사장 취임 후 한국가스공사는 이전과 다른 노선을 걷고 있다는 평가다. 일례로 한국가스공사는 최근 문재인 정부 시절 추진한 호주 그린수소 관련 사업을 전면 보류시켰다. 거점형 수소생산기지 구축사업과 관련된 징계 처분도 이와 같은 맥락에서 이뤄졌다는 해석도 나온다.
여당인 국민의힘은 지속적으로 문재인 정부의 수소 정책을 비판해왔다. 한무경 국민의힘 의원은 2023년 11월 “문재인 정부에서 전세계 최초로 시행한 수소발전 의무화 제도가 전기요금 급등의 요인이 될 것”이라며 “원전보다 5배나 비싼 수소발전 전기를 구입하는 것은 적자를 더 키울 수밖에 없다”고 비판했다.
한국가스공사는 적법한 절차에 따라 징계를 내렸다는 입장이다. 한국가스공사는 해당 실무진이 당시 권역별 수소 수요 전망을 부적정하게 검토했고, 경제성 평가도 불합리하게 수행했다고 지적했다. 지자체로부터 제출 받은 수소차 보급계획을 보수적 검증 없이 그대로 경제성 모델에 반영했고, 독립된 전문기관이 전망한 수소 수요를 반영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노동조합 등은 이번 징계를 두고 문제제기를 고려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공공운수노조 한국가스공사지부 한 관계자는 “수소생산기지 구축사업 관련 정책은 채희봉 전 한국가스공사 사장이 있을 때 일방적으로 진행한 사업이고, 당시 내부적으로도 반발이 있었고 문제제기도 많이 했다”며 “사장이 바뀐 후 해당 정책을 결정했던 사람들은 대부분 회사를 떠났는데, 이제 와서 그걸 이행한 실무진에 대해 징계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본다”고 지적했다.
이와 관련, 한국가스공사 관계자는 “거점형 수소생산기지 구축사업 부당 추진과 관련해 경고 조치한 것”이라며 “상벌규정에 따라 본인에게 각성을 촉구할 필요가 있는 경우, 주의 또는 경고 처분을 할 수 있다”고 밝혔다.
#거점형 수소생산기지 사업의 미래는?
직원에 대한 징계와 별개로 거점형 수소생산기지 사업의 앞날은 어둡다. 노용호 국민의힘 의원이 2023년 10월 한국가스공사로부터 제출받아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수소생산기지의 정상 가동을 위해서는 생산능력의 35% 이상을 생산해야 한다. 35%를 생산해도 광주광역시 기지와 창원시 기지는 매년 13억 원, 16억 원의 손실이 발생한다. 따라서 35% 이상을 생산해야 실질적인 이익을 거둘 수 있다.
한국가스공사 이사회는 2021년 광주광역시 기지와 창원시 기지가 2024년 각각 590t, 1600t의 수요가 있을 것으로 예상했다. 하지만 각 지자체가 2023년 8월 조사한 2024년 수요 예측치는 광주광역시 기지 462t, 창원시 기지 1005t이다. 지자체의 예상대로라면 광주광역시 기지는 생산능력의 31.64%, 창원시 기지는 27.53%만 생산하게 된다. 정상적인 가동이 어려운 수준이고, 가동을 하더라도 손실을 피할 수 없다.
추가 수요처 확보도 쉽지 않을 전망이다. 수소차에 대한 인기가 예전 같지 않기 때문이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전국에 등록된 수소차는 2022년 11월 말 2만 9032대에서 2023년 11월 말 3만 4046대로 1년 동안 5014대 늘어나는 데 그쳤다. 반면 같은 기간 전체 자동차 수는 2546만 1361대에서 2591만 7976대로 45만 6615대 증가했다. 전체 자동차 수 증가분에서 수소차 비중은 1.10%에 불과하다.
한국가스공사는 2023년 1~3분기 902억 원의 적자를 거두는 등 최악의 시기를 보내고 있다. 이런 가운데 야심차게 추진한 수소생산기지마저 당분간 투자 성과를 보이지 못하면 한국가스공사의 실적에 부담이 될 전망이다.
이와 관련, 앞서의 한국가스공사 관계자는 “2024년에는 산업용·발전용 대상으로 적극적인 수요 개발과 영업 활동을 통해 생산기지 정상 운영에 대비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수소에너지네트워크, 사업 강행이냐 숨 고르기냐
한국가스공사는 2019년 현대자동차, 효성중공업 등 12개 회사와 연합해 ‘수소에너지네트워크’라는 법인을 설립했다. 수소에너지네트워크는 수소충전소 ‘하이넷’을 운영하는 법인이다. 수소에너지네트워크 주주 구성은 2022년 말 기준 △한국가스공사 28.52% △현대자동차 28.05% △우드사이드 에너지 테크놀로지스 5.23% △효성중공업 4.75% △코오롱인더스트리 4.75% 등으로 구성돼 있다. 한국가스공사가 최대주주다.
현재 수소에너지네트워크의 실적은 신통치 못하다. 수소에너지네트워크는 2021년과 2022년 각각 47억 원, 84억 원의 적자를 기록했다. 2023년 1~3분기에도 104억 원의 적자를 거두는 등 적자폭이 확대되고 있다.
수소에너지네트워크는 지금껏 환경부로부터 매년 수백억 원을 지원받고 있다. 하지만 실적 개선의 기미가 보이지 않아 일각에서는 ‘세금 낭비’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또 수소에너지네트워크 대표이사가 지금껏 2억 원 이상의 연봉을 받았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비판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한국가스공사 대표이사의 연봉은 1억 3000만 원 수준으로 알려졌다.
한무경 국민의힘 의원실은 2023년 10월 “하이넷은 환경부로부터 그동안 국고보조금 1000억 원 가까이 지원받고 있어 실제 적자 규모는 더욱 큰 상황”이라며 “하이넷이 수소충전소 보급·운영 사업에서 대규모 적자가 나는데도 불구하고 대표는 2억 원 넘는 고액 연봉을 받아가는 것으로 드러났다”고 지적했다.
수소에너지네트워크의 실적 부진은 한국가스공사에도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 수소에너지네트워크가 그간 몇 차례 자본을 확충하는 과정에서 한국가스공사도 수백억 원을 출자했기 때문이다. 수소차의 판매 추이를 고려할 때, 단기간 내 실적 상승은 쉽지 않을 전망이다.
이와 관련, 한국가스공사 관계자는 “공기업으로서 정부의 탄소중립정책에 적극 부응코자 수소 사업을 추진 중에 있다”면서도 “수소 산업 전분야에 걸쳐 기술 수준 및 상용화 여건이 미성숙 상태임을 고려해 기존 액화천연가스(LNG) 인프라를 활용하는 등 저탄소에너지원 발굴 및 사업화에 주력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박형민 기자 godyo@ilyo.co.kr